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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비를 키운다

2050년 대한민국 여름

by 유녕

2050년, 나는 좀비를 키운다.


2010년대의 사람들은 <워킹 데드>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좀비를 무서워했대. 그러나 현재는 2050년, 좀비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좀비는 편안한 애완동물이다. 2040년대에 이미 좀비를 반려동물로 제정하자는 법이 통과될 정도였으니까.


시작은 2020년대의 폭염이었다. 미세먼지, 쓰레기, 배기가스에 녹아버린 지구는 여름마다 이상한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그렇게 좀비는 탄생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좀비는 강한 불멸의 몸이 아니었다. 뼈와 살이 문드러진 좀비는 약하고 수명이 짧았다. 기껏해야 1년 정도? 좀비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너무나 약해서 불태워버리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끈질긴 여름과 바이러스였다. 인류가 아무리 인공 구름을 만들어도 폭염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좀비 바이러스는 폭염과 함께 피어났다. 그동안 전 세계 사람들이 여름에 제일 귀찮아하는 게 모기였다면, 이제는 좀비였다. 그러나 좀비를 완전히 없앨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빈약한 좀비를 만드는 바이러스는 쓸데없이 강력해서 완벽한 백신은 현 기술로 만들 수 없었다. 이를 어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빠른 해결책은 정부도 아니요, 정의도 아니다. 바로 돈을 밝히고 흐름을 읽는 자본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좀비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그의 이름 김대용이었다. 김대용의 모토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였다. 뻔한 모토였지만 그 대상이 좀비라면 말이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좀비를 없앨 수 없으면 써먹자”였다. 원래 쓰레기 소각장 사업을 하던 김대용은 우선 좀비를 대거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용으로 좀비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음식물 쓰레기도 처리하면서 보신탕용 개도 전부 다 풀어주었으니 일석이조였다. 귀여운 개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는 것보다는 자아도 없고 흉하게 생긴 좀비에게 먹이는 게 낫잖아? 정부 역시 두 팔 벌려 김대용의 사업을 지지했다.


의외로 김대용의 다음 선택지는 반려동물 산업이었다. 좀비가 반려동물이라니, 옛날 사람들 같았으면 기절초풍했겠지. 그러나 김대용은 영리했다. 작은 몸집의 좀비는 공격성이 강하지 않으며 얌전하여 충분히 반려동물로 키울 수 있었다. 한편 큰 몸집의 좀비는 다른 용도로 팔았다. 작은 좀비를 키우는 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자랑했고, 큰 좀비를 소유한 자들은 각자의 좀비를 ‘좀비 리그’로 이끌고 나왔다. 작고 귀여운 좀비를 SNS에 자랑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고, 좀비 리그의 큰 상금을 모두가 선망했다. 원래 공격성이 크지 않은 좀비에게 각성제를 꽂고, 리그 실적이 좋은 좀비는 조금이라도 수명을 늘리는 게 주인들의 사명이었다. 암암리에 좀비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곳들도 생겼다고 한다. 자아가 없는 좀비는 인간만큼, 개만큼만도 존중받지 못한다. 그래서 김대용은 오늘도 조용히 돈을 번다. 누가 남의 시체를 묘지에서 털어오건, 주인이 좀비에게 물리던 말던 그건 알바가 아니다.


그럼 그 많은 좀비들을 관리하고 키우는 사람은 누구일까? 수많은 관리자들이 있다. 좀비 관리자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지만 천대받는 직업이라, 주로 고아 출신이나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 떼돈을 벌기 위해 지원한다.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 혹독한 훈련을 거친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중 하나가 나, 관리자 47번이다. 매년 여름마다 좀비를 포획하고, 급을 나누고, 관리하다가, 팔아먹는다. 가끔 내가 24시간을 보내는 좀비 농장 앞에서 시위하는 ‘좀비권자’들도 있지만, 이내 경찰들이 잡아간다. 그래도 꿋꿋이 외친다.


“좀비를 학대하지 마라! 백신 개발해야 한다!”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가끔 그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좀비들도 아파할 때가 있긴 하다. 결혼반지가 있는 손가락을 만지다 반지를 떨어뜨리고 두리번거리는 좀비, 입을 뻐끔거리다 “엄마”를 부르는 작은 좀비, 장난감을 좋아하는 강아지 좀비. 그러나 손님이 보는 좀비는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주인들은 굳이 그런 걸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면 간단한 방법이 있다. 손님에게 팔기 전, 좀비를 냉동고에 한번 얼리고 나면 그런 반응까지 완전히 없어진다. 처음에는 ‘해동’ 이후 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오싹하고 슬펐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통장 잔고와 감정을 바꿔 먹은 것 같다. 그래도 난 좀비가 되기 싫어.


아니, 이미 좀비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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