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사실은, 이혼과 가족 이야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족은 생각보다 지난하다
계속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 영화였는데, 뒤늦게 보았다. 모두가 황금종려상과 오스카를 동시에 수상한 <기생충>에 열광하고 있지만, 뒤늦게나마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적는 건 아쉬움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그렇게 투자를 많이 했어도 <결혼 이야기>가 받은 상이 여우조연상 밖에 없다니, 아주 아쉽다. 봉준호 감독이 좋아했다던 그 영화, 개인적으로는 <기생충>보다 훨씬 좋았던 영화 <결혼 이야기>. 영화관에서 못 보고 넷플릭스로 본 게 한이라면 한이다. 이런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작년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말하다시피, 이 영화는 단순히 ‘결혼 이야기’가 아니다.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해온 부부가 갈라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혼이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스피디하고 간단하고 ‘사이다’처럼 끝나는 문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결혼 이야기>는 현실 속 이혼과 가족의 지난함과 지독함을 보여준다. 결혼은 단순히 사랑의 문제가 아님을, 그러나 결국은 사랑으로 갈라짐을 보여주는 영화다.
눈은 닿는데 마음이 안 닿네
<결혼 이야기>의 시작은 니콜과 찰리가 부부 클리닉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 공통점과 차이점, 빛과 어둠을 모두 아는 부부는 서로의 사소한 습관까지 모두 읊기 시작한다. 그래서 첫 장면에서 이들이 이혼을 결심하는 부부라는 걸 눈치채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서로를 잘 알면서, 그 모든 것을 떠올리기까지의 애정이 느껴지는 부부가 도대체 왜 이혼을 생각하게 될까?
니콜은 찰리와 사랑에 빠지면서 LA에서 뉴욕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촉망 받는 신인 영화배우였으나 찰리의 극단 배우가 된다. 모두가 잘 맞는 부부라고 생각했으며, 사랑하는 아들이 있는 두 사람이 어떻게 갈라졌는지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기란 쉽지 않다. LA와 영화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니콜, 찰리의 바람 등 나열할 수 있는 이유는 많다. 그러나 모든 걸 압축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은 서로의 세계를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콜은 LA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고, 찰리는 니콜이 LA에서 다시 정착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쉽게 믿지 못한다. 그래서 서로 눈과 손은 닿을 지라도 마음이 닿지 못한다.
서로 마음이 닿지 못하는 데는 이혼의 현실적인 요소들도 한몫한다. LA와 뉴욕의 거리, 재산과 양육권과 이혼 변호사 비용의 싸움, 아들과 가족과 극단 사람들의 개입까지, 니콜과 찰리의 마음을 막아서는 것은 너무나 많다. <결혼 이야기>의 진가는 그 요소들을 지독하게 보여주는 데에 있다. 극단과 이상과 사람 좋음에 좌우되던 찰리가 이혼 소송에 이기기 위해 악독한 이혼 변호사를 고용하는 장면, 이혼 서류를 건네는 과정에서 니콜의 가족과 찰리가 겪는 상황들은 보는 사람마저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찰리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니콜에게서 여전히 사랑이 느껴지는 건, 얼마나 지독한 아이러니인가.
This is who I am
많은 사람들이 <결혼 이야기>를 페미니즘적 영화로 분석한다. 어떤 이들은 노아 바움백 감독이 연인인 그레타 거윅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담아낸 영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천재 연극 감독 찰리와 뛰어난 배우 니콜의 관계는 얼핏 보면 안정적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더 많이 희생한 사람은 단연 니콜이다. 이는 니콜이 자신의 이혼 변호사와 이야기하는 롱테이크에서 여실히 보인다.
반복되는 일들이 있다. 잘난 여자가 잘난 남자를 너무나 사랑할 때 벌어지는 일들. 사랑하다 못해 자신의 모두를 바치며 사랑하는 일들. 내가 니콜에 더 공감하면서 이 영화를 본 데에는 나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사랑하는 방식이 비슷해서도 있다. 의외로 니콜처럼 뛰어난 여자들이 똑같이 뛰어난 상대를 만날 때,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숭배와 복종으로 사랑한다.
니콜이 자신의 고향인 LA를 버리고, 시작인 영화를 버리고, 사랑하지 않았던 뉴욕과 연극을 선택한 것은 사랑하는 찰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니콜이 선택한 일만 벌어지지는 않았다. 니콜이 아들을 낳고 연극에서 함께 찰리와 일을 하면서, 작업은 공동이었으나 스포트라이트는 모두 찰리의 차지였다. 그래서 니콜이 LA로 돌아와 드라마 현장에서 다시 배우로 활동하고, 찰리와 이혼하는 일은 곧 자신을 되찾는 일이다. 그래서 니콜은 그토록 눈물과 울분을 토하며 외친다.
“This is who I am!”
I felt in love with him in 2 seconds
가까운 이와의 관계로 힘들어할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랬다.
사랑이 없으면 싸우지도 않는다고.
그래서 사랑이 남은 두 사람은 이혼을 하며 때론 어설프게, 때론 치열하게 싸운다. 쏟아부을 수 있는 모든 저주를 던지며 싸우다가 울다가, 아들을 함께 돌보며 어색해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세계가 갈라진다. 찰리와 니콜은 각각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아들의 양육권은 적당히 나누어 가진다. 니콜은 LA에 자신의 가족과 함께 다시 자리 잡는 데 성공한다.
찰리는 UCLA 전담 교수로 니콜을 보러 LA에 오지만, 니콜의 옆에는 누군가가 있다. 그러고 나서 찰리는 아들의 방에 들어가 니콜이 자신의 장점에 대해 쓴 글을 뒤늦게 본다. 아직 단어를 다 알지 못하는 아들과 함께 글을 읽는 찰리는 읊조린다.
“I felt in love with him in 2 seconds.”
이혼한 두 사람은 여전히 사랑을 한다. 그저 거창하지 않을 뿐이다.
아들을 데리고 나가는 찰리의 신발끈을 니콜이 천천히 묶어줄 뿐이다.
그리고 아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차로 향하는 찰리의 뒷모습에는 삶이 있을 뿐이다.
PS. 사랑은 타이밍. 진작에 찰리가 LA로 갔으면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