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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Apr 21. 2022

고양이 신부전 간병기7-요다가 물에 빠지면

요다 제 36화

2021년 11월 22일 월요일 <요다가 물에 빠지면>

“나랑 요다랑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할 거야?” 내가 물었다. “요다는 내 자식이야.” J가 대답했다. 요다를 구하겠다는 뜻이었고 진심이었다. 나는 놀랐다.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무조건 J를 구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J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다와 전두환이 물에 빠져도 아마 나는 전두환을 구할 것이다. 전두환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은 귀하지만, 동물의 목숨은 그렇지 않다. 나는 수많은 경로를 통해 그것을 배웠는데 거기에는 옛날이야기가 포함된다. 옛날이야기에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초개처럼 바치는 동물이 많이 나온다.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지네와 맞서 싸우는 두꺼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종에 자기 머리를 부딪치는 까치 등등. 반면에 옛날이야기에는 동물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사람도 동물을 구하는 경우가 있지만, 제비 날개를 고쳐준다거나 잡은 잉어를 놔주는 식으로 큰 수고를 들이지 않는 선에서 그렇게 하는 거지,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동물을 구하는 사람은 없다. 귀하디귀한 사람을 위해 하찮은 동물이 희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거꾸로는 바보짓인 것이다. 사람을 구하고 죽은 동물은 이야기 밖 현실에도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오수의 개인데, 사람들은 의견비까지 세워 개의 희생을 기린다. 그런데 이야기 밖 현실에는 동물을 구하고 죽은 사람도 있다. 나 어릴 적엔 겨울철이면 얼음물에 빠진 개를 구하고 죽은 아이들 기사가 신문에 실리곤 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오수의 개를 대할 때와 180도 달랐다. 누구도 아이들을 의인이라 칭송하지 않았고, 아이들의 죽음은 개죽음으로 여겨졌다.  

    

나는 사람과 동물이 물에 빠지면 당연히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다와 내가 물에 빠지면 요다를 구하겠다니, 나는 J의 대답에 크게 놀랐다. 주위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내 또래는 대체로 나와 같은 선택을 했는데 나이가 어린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한테 더 소중한 존재를 구할 거 같아요.” 서른한 살의 S는 말했다. “그래도 사람을 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되물었더니 S는 “요다를 안 구하고 전두환을 구하겠다니 너무해요.”라고 대답했다. 처음엔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기에게 더 소중한 존재를 구하겠다는 그의 선택 기준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으며 무조건 사람이 우선이라는 나의 기준보다 그의 기준이 좀 더 자연스럽고 합리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더니, 짧은 대화가 끝났을 땐 요다가 아니라 전두환을 구하겠다는 좀 전까지의 나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즈음 ‘무인도그’라는 유튜브를 보게 됐다. 유튜버 덕곡은 스물아홉 살의 청년으로 11마리의 개와 같이 남해안의 무인도에 살고 있었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청년이 그러고 사는 까닭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튜브 대문에 사연이 적혀있었다. 그의 집에서 키우던 암캐 두 마리가 동시에 새끼를 낳았는데 도저히 집에서 다 키울 수는 없고 분양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개들을 데리고 있을 곳을 찾아 무인도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가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뭍에서의 삶을 포기했다면 훌륭한 청년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강아지들을 돌보겠다고 무인도로 들어가다니, 나는 그의 선택이 이상하기만 했다. “젊으나 젊은 사람이 생산적인 일을 해야지 고양이만 끼고 시간 낭비해서 되겠니.” 엄마가 맨날 나한테 하는 잔소리다. 엄마는 자신도 동네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고 고양이들 밥 시간에 늦을까 봐 어딜 가든 집에 들어가기 바쁘면서도, 동물을 돌보는 건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고양이를 끼고 시간 낭비’ 운운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참 듣기 싫은데 그게 그렇게까지 듣기 싫은 건 나 역시 엄마와 같은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엄마와 똑같은 시선으로 덕곡을 보고 있었다.  

    

덕곡과 개들은 어린왕자의 소행성만큼이나 작은 섬에 산다. 섬 생활은 빡세다.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섬이라 생필품 일체를 배로 실어와야 하고, 실어온 물건은 섬 꼭대기의 텐트까지 져 날라야 한다. 일은 덕곡 혼자 도맡아 하는데, 덕곡은 운반해온 닭을 삶아 일일이 뼈를 발라 개들에게 먹이고, 텐트를 수선하고, 밤에는 자는 개들의 옷을 꿰맨다. 개들은 일하는 덕곡을 쫓아다니며 장난치고 훼방만 놓는데, 그런 개들을 타이르는 덕곡의 경상도 말씨가 다정하다. 덕곡은 개들과 사는 게 행복하다고 한다. 정말 그래 보인다. 개를 구하려고 얼음물에 뛰어들었던 아이들이 30년 후 다시 태어난다면 덕곡과 같은 모습일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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