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다 제 38화
2022년 1월 2일 일요일 <신년기도>
설날 J가 요다의 건강을 빌고 싶다면서 절에 가자고 했다. 걸어서 길상사에 갔다. 법당에는 사람이 많았다. 시주함에 만원을 넣고 기도하는 사람들 틈에 앉았다. 엎드려 절하는 J를 보고 있으니 몇 해 전 태국에서 보낸 설이 떠올랐다. 그때 태국인들을 따라 절을 돌아다니며 소원을 빌었는데, 그곳 절은 외관이 밝고 화려해서 기도하는 마음까지 덩달아 가볍고 즐거웠다. 그런데 한국 절은 어둡고 무거운 데다 날씨까지 을씨년스러워 기도하는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J를 재촉해 밖으로 나왔다. 태국에서처럼 절 순례를 하고 싶었다. 길상사를 나와 근처 정법사로 향했다. 정법사에 가까워질수록 전동드릴 소리가 커진다 했더니 절 마당엔 공사하는 인부들 말고는 아무도 없고 법당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절을 한두 군데 더 들러보고 싶었는데, J가 빨리 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요다가 기다린다는 거였다.
“요다가 얼룩소랑 싸우다 다쳤어. 빨리 와. 피가 너무 많이 나. 빨리.” 전화를 받으니 J가 소리쳤다. 그날 오후에 요다와 얼룩소가 밭에서 엉겨 붙었다. “내가 쫓아갔더니 요다가 밑에 누워있는 거야.” J가 말했다. 요다는 덩치로 보나 싸움 실력으로 보나 얼룩소의 상대가 못 된다. 내가 갔을 땐 얼룩소는 도망치고 없고 요다의 뒷다리에 피가 빨갰다. “어떡해. 피가 너무 많이 나. 얼룩소 이 새끼 내가 가만 안 놔둘 거야.” J가 이를 갈았다. 요다는 피가 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집에 안 들어가려고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만 했다. 한참을 쫓아다닌 끝에 요다를 붙잡아서 살펴보니 피는 거의 멈춘 것 같았다. “빨리 택시 불러.” J가 말했다. “병원에 안 가도 되지 않을까.” 내가 말했다. 고양이들이 싸워 그 정도 다치는 건 흔한 일이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 것이다. “피를 이렇게 많이 흘렸는데 병원에 안 가도 된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빈혈이 뭔지 몰라?” J가 말했다. 요다는 신부전으로 인해 얻은 빈혈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피를 이 정도 흘린 게 빈혈에 영향을 미칠까.
병원 대기실에서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J는 얼굴이 흙빛이 돼서 안절부절못했다. 대기실에는 다른 가족이 같이 있었다. 70대 부부와 40대의 딸. 그들은 16살 된 고양이 방울이의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스마트폰을 하는 딸 옆에서 할머니는 내게 말을 시키고 싶어 했다. “이쁜 건 어릴 때 잠깐이지, 아유 골치 아파. 키우지 말아야 돼요.”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지만, 의사와 상담을 하고 나오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방울이가 많이 아프대.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대. 얼마나 아팠을 거야.” 할머니가 밖에 있던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입원을 시킬지 우리가 정하라는데 방울이를 어떻게 여기 혼자 두고 가.” 할머니가 울자 J가 덩달아 훌쩍였다. “요다 보호자님!” 우리 차례였다. 검사결과 요다의 빈혈 수치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다음 날 낮에 요다가 웅크리고 있는 걸 보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깨보니 요다가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웅크리고 있었다. 잠을 자지도 못하고 눈만 천천히 껌벅이는데 코끝이 창백했다. 빈혈이 심해진 것이다. 서둘러 병원에 갔다. 검사결과 요다의 빈혈 수치는 최악이었다. 수혈하는 걸 보고 병원을 나왔다. 전철역까지 걷는데 설 연휴의 불 꺼진 거리가 젖은 재처럼 보기 싫었다.
22. 1. 17 <회복>
요다의 코가 복사꽃 봉오리처럼 빨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