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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Sep 04. 2022

고양이 신부전 간병기11-우리들의 언덕

요다 제40화

2022년 2월 28일 월요일

요다의 영토는 멀리 롯데타워까지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다. 언덕의 높은 쪽에는 집들이 서 있고 낮은 쪽에는 계단식 밭이 이어진다. 집들과 밭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는데, 집이 몇 채 안 되는 데다 한 집 걸러 빈집이라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언덕을 순찰하는데, 요다의 최대 관심사는 고양이다. 요다는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내려다보는데, 요다가 목을 쭉 빼 레이더를 세우고 기민하게 움직이면 근처에 고양이가 있는 것이다. 겨울 산에서 고양이의 정체가 노출되는 건 주로 발소리 때문이다.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다니는 고양이라 해도 마른 풀숲을 지날 때는 소리를 안 낼 도리가 없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맨날 요다를 따라다니다 보니 나도 고양이가 겨울 풀숲을 지나가는 소리를 식별할 줄 알게 됐다. 독서실에서 옆 사람 눈치 보며 과자봉지를 뜯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불규칙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 거기 고양이가 있는 것이다.      


종마다 생김새만큼이나 발소리가 다르다. 깊은 밤 골목에 있는데 어느 집 마당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에 거침이 없어 그 집주인이 쓰레기 봉지를 버리러 나온 줄 알았다. 그러나 집주인이라면 진작에 도망쳤을 요다가 도망칠 생각을 않고 냄새를 맡으며 골목을 왔다 갔다 했다. 잠시 후 그 집 대문 밑으로 고양이가 한 마리 나타났다. 우리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고양이가 앞발을 들어 상체를 곧추세웠는데 목이 뱀처럼 길고 털은 아일랜드인 머리칼처럼 붉은색이었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가 아니라 족제비였다. 3초쯤 마주 보고 있었을까. 족제비가 맞은편 집으로 쏙 들어갔다. 그 집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마당에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담 너머에서 시체라도 끄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낙엽을 쓸고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따라 족제비의 동선이 눈으로 본 듯 선명하게 그려졌다.  

   

언덕에서 제일 자주 마주치는 건 새다. 고양이는 새를 두 종류로 나눈다. 높은 가지에 앉은 새와 낮은 가지에 앉은 새. 낮은 가지에 달린 열매가 사람을 유혹한다면 낮은 가지에 앉은 새는 고양이를 유혹한다. 요다가 급히 몸을 낮추고 어딘가를 주시하면 그 시선이 닿는 낮은 나뭇가지에는 새가 앉아 있기 마련이다. 그 새는 딱새일 경우가 많다. 딱새는 참새만 한 작은 크기에 노란 배를 가진 새로 낮은 가지에 앉기를 좋아한다. 요다는 새를 노리며 빠르게 이를 부딪쳐 딱딱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새를 잡고 싶어서 죽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요다는 포복 자세로 몸을 낮추고 몇 걸음 전진하다 멈추고 몇 걸음 전진하다 멈추며 새에게 다가간다. 요다의 동작은 기민하고 신중하여 흠잡을 데가 없지만, 문제는 나를 달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멍석 하나로 옷을 해 입은 흥부네 아이들처럼 그런 순간에도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나는 덩치가 전봇대처럼 커서 눈에 너무 잘 띄는 데다 몸이 무겁고 둔해서 아무리 조심해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쿵쿵 소리가 난다. 딱새가 낮은 가지에 앉는 건 겁이 없어서일 것이다. 딱새는 진작부터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을 텐데도, 여유 있게 제 볼일을 보다가 날아간다.      


우리가 순찰도는 밭은 두 집과 면한다. 왼쪽 집에 사는 중년 부부는 흔한 등산복 차림에 마스크까지 하고 다녀서 나는 좀처럼 부부를 알아보지 못한다. 요다가 인기척이 나도 도망치려 날뛰지 않고 침착하게 몸을 숨기면 나는 그제야 그 집 부부인가 보다 하는데, 지켜보면 그들은 과연 그 집으로 들어간다. 그 옆집에는 아랫집 할머니가 산다. 할머니 집은 대문도 담장도 없어서 고양이들이 마당에 수시로 드나들며 수돗가에서 물 마시고 틈틈이 밥도 얻어먹는다. 할머니는 고양이들과 친하고 나하고도 친하다.      

“안녕하세요?”

“괭이는 나섰어?”

“안 낫는 병이에요.”

“나서야지 안 낫는 게 어딨어.”

“그냥 아픈 채로 살아요.”

“환장하겄네.”     


“야옹!” 어딘가에서 다정하게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나면 하니가 우리를 부르는 것이다. “하니!” 나는 곧바로 응답하는데 그러면 하니가 언덕을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달려온다. 요다랑 나는 같이 다녀도 말 한마디를 안 하는데 하니가 합류하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다. 하니는 이꽃 저꽃을 오가는 나비처럼 요다와 나 사이를 오가면서 나한테는 몸을 비비며 아양을 떨고 요다랑은 장난치며 논다. 요다는 풀숲에 잠복하고 있다가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하니를 덮치고, 하니는 비닐봉지나 돌멩이를 굴리며 논다. 둘만의 놀이기구도 있다. 밭에 엎어놓은 대형 고무 다라이가 그것이다. 다라이를 엎어놓은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 다라이가 바닥과 닿는 면이 들떠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다라이 안으로 들어가 그 틈으로 앞발을 내밀면 밖에 있는 고양이가 거기 달려들어 쥐잡기 놀이를 한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까 싶은데, 고양이들은 중간중간 술래를 바꿔가며 싫증을 모르고 논다.      


언덕을 자신의 영토라고 여가는 건 요다만은 아니다. 나도 매일 이곳을 드나들다 보니 이곳이 내 집 마당 같다. 종일 많은 것들이 이곳을 드나들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이곳을 지키는 것도 있다. 광대나물은 언덕 전체에 퍼져 사는데 땅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녹색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났다. 요다와 언덕을 맴맴 돌다 집으로 향하는데 광대나물이 봄도 되기 전에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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