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다 제41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날이 추워지는데 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몇 주 째 찰리가 보이지 않았다. 하니 때문이었다.
하니는 흑두건의 새끼다. 흑두건은 새끼를 목사 집 지붕 위에서 낳아 길렀는데, 새끼가 생후 널 달쯤 됐을 때 혼자만 지붕에서 내려갔다. 그때부터 새끼가 울면 내가 지붕에 사료를 날랐다. 새끼는 두 달 가까이 지붕에서 혼자 지내다가 어느 날 골목에 나타났다. 새끼는 지붕에 있을 때는 내가 다가가면 후다닥 도망쳤는데, 이제는 나를 봐도 도망치지 않았다. 새끼를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새끼가 고독한 유년기를 보낸 탓에 어둡고 내성적인 성격일 줄 알았는데 새끼는 뜻밖에 형광등 백 개를 켠 듯 밝은 성격이었다. 찰리와 고소영을 쫓아 팔랑팔랑 뛰어다니는 새끼의 모습이 나비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자마자 하니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달려라 하니’의 하니. 그건 새끼가 나고 자란 집의 목사가 기르던 셰퍼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니라는 이름과 참 안 어울리는 개였는데, 그 이름이 마침내 제 짝을 만난 것이다.
나는 더는 하나에게 밥을 주지 않을 결심이었다. 하니가 제 갈 길을 가길 바래서였다. 그런데 찰리와 고소영에게 밥 줄 때마다 하니가 득달같이 나타났다. 나는 하니를 빼고 다른 고양이들한테만 밥을 줬는데, 하니는 밥 먹는 고양이들의 머리를 제 머리로 밀치고 밥을 뺏어 먹었고, 고양이들이 안 비키고 버티면 고양이들이 머리를 박고 있는 그릇 가장자리 틈으로 앞발을 넣어 밥을 꺼내 뺏어 먹었다. 결국 나는 하니에게 밥을 주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하니는 제 걸 놔두고 꼭 남의 것부터 뺏어 먹었다.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짓이 찰리랑 똑같았다.
찰리와 하니는 일 년 터울의 남매인데, 하니는 일 년 전 찰리가 했던 행동을 고스란히 되풀이했다. 하니는 찰리를 쫓아다녔고, 찰리는 하니를 피해 마당을 떠났다. 언젠가부터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찰리 대신 하니가 야옹거리며 나타났고, 장독대를 지키는 것도 하니였다. 다른 집 마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천안 사는 엄마와 구파발 사는 친구도 마당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데, 나이 어린 고양이가 들어오자 원래 있던 고양이가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고 했다. 엄마와 친구는 그 일에 대한 해석이 달랐는데, 엄마는 군식구가 늘어나자 나이든 고양이가 자기까지 밥을 달래기가 염치가 없어서 떠난 거라고 했고, 친구는 먹고살 능력이 있는 쪽에서 양보한 거라고 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찰리가 떠난 게 하니 때문인 건 분명했다. 하니를 끝까지 마당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찰리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창가에 와서 나를 불렀는데,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떠난 뒤 나를 그렇게 불러주는 친구는 처음이었다. 나는 찰리가 부를 때마다 부리나케 뛰어나갔고, 찰리도 내가 부르면 열 일을 제치고 왔다. 우리는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돼 붙어 지냈는데, 추운 날에는 옷을 껴입고 마당에 나가 찰리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었고, 여름에는 옥상 평상에 같이 누워 노을을 보며 팟캐스트를 들었다. 우리는 같이 골목을 걸었고 인적이 드문 깊은 밤이면 멀리 성곽까지 걷기도 했다. 그런 날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런데 찰리가 떠나버린 것이다. 찰리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을까 봐 추운 날씨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지냈지만, 찰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찰리가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앓고 있는 모습이 자꾸 떠올랐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요다와 산책하는데 계단 밑으로 검정고양이가 지나갔다. 자세히 보니 찰리였다. “찰리!” 소리쳐 불렀다. 찰리는 나를 보고 야옹거리며 아는 체를 했지만, 내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내가 부르는데 찰리가 오지 않는 건 처음이었다. 찰리는 내게 다가오는 대신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더니 풀밭에 드러누웠다. “찰리!” 나는 철조망에 매달려 몇 번이고 소리쳤다. 찰리는 볕을 쬐다가 가끔씩 야옹거리며 대꾸했지만, 몸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찰리는 한참 만에야 일어나 철조망을 나와 계단을 올라왔는데 내게 오지 않고 나를 비켜 저만치로 가서 어슬렁거렸다. 찰리를 놓치면 안 됐다. 나는 요다를 번쩍 안아 들고 일어나 찰리를 어르고 달래가며 집으로 데려왔다. 마당에 하니가 있어서 찰리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밥을 줬다. 찰리는 밥 먹고 물까지 마시고 나서야 내가 아는 다정한 성격으로 돌아와 코 고는 것처럼 큰 소리로 골골댔다. 찰리 옆에 누웠다. 중성화 안 한 수컷 특유의 노린내가 코를 찔렀다. 참고 누워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였다. 택배를 가지고 들어가니 찰리가 일어나 창가로 갔다. 나가겠다는 거였다. 창문을 열어줬다. 찰리가 창문으로 나가자마자 하니가 달려들었고 찰리는 또 어딘가로 가버렸다. (2021년 11월)
돌아온 찰리
마을버스를 타러 나갔다가 노인정까지 한 정거장을 걸어 올라갔다. 아랫집 할머니가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산책 나왔다가 거기 앉아 쉬고 있는 거였다.
“까만 괭이 찾았어?” 할머니가 물었다. 할머니에게 찰리가 없어졌다고 찰리를 봤냐고 물은 뒤로 할머니는 나만 보면 찰리의 안부를 물었다.
“아니요.” 내가 대답했다.
“못 본 지 벌써 두세 달 됐어. 어디 가서 죽은 거 아녀?”
“그건 아니에요. 제가 저 밑에서 한번 봤어요. 근데 저를 모른 체하더라고요.”
“문 열어 놓으면 우리 마루까지 들어와 돌아다니고 고기 먹으면 마당에 와서 이러구 쳐다보고 그랬어. 우리 막내가 고기 먹으면 한점씩 주고 그랬거든. 근데 싸가지 없이 모른 체 한디야?”
몇 시간 뒤 진우에게 카톡이 왔다. ‘아랫집 할머니가 저 위에서 찰리 봤대. 노인정 근처 통장이 밥 주는 곳에 있대.’ 할머니가 정류장에 있다가 통장이 밥 주는 고양이 무리에서 찰리를 봤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십중팔구 할머니가 잘 못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매일 그 앞으로 지나다니는데 찰리가 있다면 못 봤을 리 없었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노인정 근처를 한 바퀴 둘러 보았지만, 찰리를 찾지 못했다.
며칠 뒤 다시 노인정 근처에 가서 찰리를 불렀더니 어딘가에서 야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나뭇더미 사이에서 찰리가 기어 나왔다. 할머니가 잘 못 본 게 아니었던 것이다. 찰리는 나지막이 야옹거리며 예의 느린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는데, 찰리가 우는 소리를 듣고 근처에 있던 고양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통장이 밥 주러 온 줄 안 것이다. 고양이들이 모두 잘 먹어 토실토실했다. 통장은 캔사료를 주는데, 찰리가 그걸 얻어먹으려고 거처를 옮긴 걸까. 내가 집에 가자고 앞장섰더니 찰리가 졸졸 따라왔다. 우리는 150여 미터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찰리의 환심을 사려고 캔 사료를 줬다. 찰리가 게걸스레 밥을 먹는데 숨소리가 거칠어서 살펴보니 코에서 콧물이 흘렀다. 감기에 걸린 것이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안아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현관문을 닫으니 찰리가 겁을 집어먹고 악을 쓰면서 바닥에 오줌을 줄줄 쌌다. 찰리는 전에는 못 들어와서 안달하던 집안을 이제는 오줌을 쌀 정도로 무서워했다. 도로 데리고 나가서 양지바른 대문 앞에 앉았다. 찰리가 내 옆에 앉았다가 동네 할아버지가 지나가자 지붕 위로 도망쳤다. “너 왜 도망가냐? 얘가 저 위에 노인정 앞에 있더라고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얘를 거기서 보셨어요?” 내가 물었다. “거기 할머니들이 얘가 그 근처에 안 가는 데 없이 다 간다고 하더라고요.” 찰리가 윗동네에서 지내는 걸 나만 빼고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틈나는 대로 찰리를 데려다 캔사료를 먹였고, 찰리는 내가 데리러 가지 않아도 하루에 한두 번은 마당에 들렀다. 밥도 밥이지만 하니 때문이었다. 찰리는 밥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있을 때 빼고는 하니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찰리는 예전의 찰리가 아니었다. 덩치가 훌쩍 커졌는데, 머리가 크고 목이 두꺼운 게 다 큰 수고양이가 돼 있었다. 찰리에게서 ‘큰바위얼굴’이 보였다. 큰바위얼굴은 매일 우리 집 근처를 순찰 돌던 고양이다. 나는 그가 찰리 아빠가 아닐까 짐작했는데, 그가 찰리 엄마와 친한 데다 찰리와 털 색깔이 같아서였다. 그러나 까만 털을 제외하면 둘은 닮은 점이 없었다. 찰리는 생긴 거며 하는 짓이 귀염성 넘치는데, 큰바위얼굴은 무뚝뚝 그 자체였다. 그런데 사자처럼 커다란 머리를 하고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찰리의 모습이 영락없는 큰바위얼굴이었다. 찰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느릿느릿 동네를 돌아다니며 스프레이했는데, 스프레이할 때마다 눈을 지긋이 감고 치켜든 꼬리를 부르르 떠는 모습이 여간 느끼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동네에서 큰바위얼굴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가 순찰하던 곳을 이제 찰리가 순찰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여기저기서 고양이들 우는 소리가 들렸다. 파티가 시작된 것이다. 일 년 전 겨울이 떠올랐다. 그때 찰리는 암고양이를 쫓아다니다가도 내가 부르면 쪼르르 와서는 내 무릎에 올라앉아 골골댔다. 나는 찰리가 암컷보다 나를 더 따르는 게 흐뭇했는데, 그때 찰리는 성에 제대로 눈뜨기 전이었던 것이다. 이제 찰리는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하니에게 집중했다. 하니는 밭에 누워 눈을 감고 바닥을 뒹굴었는데 그 모습이 80년대의 토속 에로물에 나온 정윤희처럼 농염했다. 찰리는 수시로 하니의 등에 올라타 목덜미를 물었고 하니는 여러 날을 목덜미가 젖은 채 돌아다녔다.
어느 날 아침, 요다와 대문을 나서는데 찰리와 하니가 따라왔다. 찰리는 더는 하니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지 않았다. 길고 긴 파티가 끝난 것이다. 찰리는 살이 많이 빠지고 피곤해 보였다. 요다와 하니는 줄곧 장난치며 다녔는데, 찰리는 느릿느릿 걷기만 했다. 우리는 언덕을 돌아다니다 긴 계단을 내려가 우물처럼 깊고 고요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바람 한 점 없는 그곳엔 햇빛이 두껍게 고여 있었다. 찰리와 요다는 바닥에 길게 누워 눈을 감았고 나는 축대에 머리를 기댔다. 몸이 나른해 꼼짝도 하기 싫었다. 하니만 가만 못 있었다. 하니는 찰리에게 장난치다가 찰리가 짜증을 내자 혼자 팔랑거리며 돌아다니다 멈춰서서 뭔가를 지켜보았다. 하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막 잠에서 깨어났을 벌레 한 마리가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2022년 2월 초)
내 친구 찰리
화상회의를 하는데 모니터에 사진이 떴다. 원드라이브에서 제공하는 추억의 사진. 사진 속에서 찰리가 누워있는 내 배 위에 올라와 엎드려 있었다. 우리는 옥상 평상에 누워있었다. 나는 발치에 누워있는 찰리를 굳이 끌어다 내 배 위에 올려놓았는데, 찰리의 적당히 무거운 무게와 온기가 좋았다.
윗동네에서 찾아 데려온 뒤 찰리는 처음 얼마간은 살갑게 굴었다. 아침저녁으로 밥 먹으러 왔고 내가 찾아가면 나를 반겨 같이 골목을 걸었다. 그런데 찰리의 태도는 빠르게 냉담해졌다. 찰리는 원래 나와 눈만 마주쳐도 골골 소리를 냈는데, 내가 쓰다듬어도 골골 소리를 내지 않았다. 멜로 드라마에서 연인들이 등장할 때마다 흐르는 테마음악처럼 우리 사이에서 어김없이 울려 퍼지던 그 소리가 들리지 않다니, 나는 시끄러워 못들었나 싶어서 찰리 몸에 귀를 바싹대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찰리는 나를 본체만체하고 하니를 쫓아다녔는데, 하니에 대한 관심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하니의 발정기가 끝나자 찰리는 더는 집에 오지 않았다. 길에서 몇 번 마주쳤는데, 찰리는 이번에는 다른 암컷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집 앞에서 찰리와 마주쳤다. 찰리는 나를 반가워하지 않았고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얼른 대문을 열며 찰리에게 들어오라고 했는데 찰리는 선뜻 들어올 생각을 않고 문밖에 서서 망설였다. 찰리는 내가 캔 사료를 가지고 나오는 걸 보고서야 마당으로 들어왔는데, 밥을 먹는 동안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불안해했고, 내가 옆에 앉자 흠칫 놀라 물러섰는데 나를 바라보는 눈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나는 찰리와 놀고 싶어서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는데, 찰리는 밥을 먹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그게 찰리를 본 마지막이었다.
사진 속의 찰리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찰리는 어미 젖을 먹는 새끼고양이처럼 앞발로 내 가슴팍을 누르며 꾹꾹이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찰리는 내게 안겨있을 때는 물론이고 멀리서 나와 눈만 마주쳐도 허공에 대고 꾹꾹이를 했다. 그런데 이제 그처럼 다정하던 찰리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가슴 아팠다. 사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 게 목요일인데, 토요일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찰리가 산 아래 도로에서 차에 치어 죽었다고 했다. 나는 찰리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어디 가서 죽은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차에 치일 거라는 걱정을 한 적은 없다. 우리 동네는 차선이 하나밖에 없고 차들이 천천히 다녀서 일부러도 차에 치이기 힘들다. 산 아래 도로에선 차가 빠르게 달리지만, 찰리가 거기까지 내려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익숙하고 안전한 산동네를 놔두고 뭣 때문에 거기까지 내려간단 말인가. 전화를 받고 산 아래 도로까지 수백 개의 계단을 내려가면서 찰리가 왜 거기까지 내려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화했던 캣맘이 산 아래 도로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열흘 전 카페에서 찰리를 처음 봤다고 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길 건너 카페를 가리켰다. 2층 양옥집을 개조한 카페였다. 찰리는 그 후로 매일 밥을 먹으러 왔고 카페에선 찰리를 히틀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날 오전에도 찰리는 카페의 주차된 차 밑에 있었다. 그런데 손님으로 온 어린아이가 찰리를 보고 달려들었고 찰리가 놀라 도로로 튀어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발렛 기사가 찰리를 도로변 화단에 묻었는데, 캣맘이 도로 팠다고 했다. 찰리가 하고 있던 목걸이가 떠올라 그걸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게 불편할 것 같아 가는 길이라도 편하게 보내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찰리의 목걸이를 머리 묶는 얇은 고무줄로 만들었다. 돌아다니다 어딘가에 걸렸을 때 목걸이가 족쇄가 되는 일이 없도록 쉽게 늘어나는 고무줄로 만든 것이다. 그 얇은 줄이 불편할 것 같아 파묻은 걸 도로 팠다니 그 마음이 잘 헤아려지지 않았다. 캣맘은 목걸이를 자르다가 팬던트가 몸 사이로 들어가 꺼내기 힘들었다고 했다. 찰리는 흰 천에 싸인 채 다이소 상자에 들어있었는데, 나는 무서워서 상자 안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찰리에게 열흘간 밥을 줬다는 캣맘은 죽은 찰리가 배길까 봐 딱딱해진 몸을 뒤져 팬던트를 찾아낸 것이다. 그는 팬던트를 꺼내 보고서야 거기 전화번호가 적힌 걸 발견했다. 그는 팬던트를 찾기 힘들어 포기할까 했는데 포기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면서 찰리가 엄마 아빠를 찾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던 찰리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찰리가 살아 있었대도 내가 자기를 찾아 데려가는 걸 반가워할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또 찰리가 아무 데나 묻히지 않고 자기가 태어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했는데, 찰리가 나에 대해서나 떠나온 동네에 대해 무슨 미련이나 애착이 있었을 것 같지 않았다. 죽은 뒤에 어디에 묻히든 그게 찰리에게 무슨 의미이겠는가. 그러나 우리에겐 그게 중요했고 나는 찰리를 안고 수백 개의 계단을 거슬러 올라와 찰리를 집 앞에 묻었다.
다음날 그 도로에 다시 내려가 보았다. 일요일인 데다 날씨가 좋아 도로에는 차가 많았다. 찰리는 어쩌자고 이런 곳까지 내려온 것일까. 나는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거대한 포식자처럼 느껴져 오금이 저렸다.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는 빈자리가 없었고 주차장은 들락날락하는 차로 붐볐다. 토요일인 전날도 그랬을 것이다. 발렛 기사에게 찰리에 관해 물었다. 기사는 자기는 전날 출근을 안 했지만, 사고 소식을 들었다면서 찰리를 안다고, 두 달 전부터 찰리를 봤다고 했다. 두 달이면 하니의 발정이 끝났을 즈음이다. 찰리는 아마 또 다른 암컷을 쫓아 도로를 건넜을 것이다. 주차장에서 건너편 산 위를 올려다보았다. 꼭대기까지 150m나 될까. 산꼭대기에서 초목으로 뒤덮인 산비탈을 지나 집 한두 채만 건너면 바로 도로였다. 산비탈을 맴돌던 수고양이들이 자꾸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찰리는 어릴 때부터 줄곧 무언가를 쫓아다녔다. 나와 만나기 전에는 제 엄마인 흑두건을 쫓아다녔을 텐데, 찰리가 처음 야적장에 온 것도 제 엄마를 쫓아서였다. 찰리는 야적장에 자리를 잡은 뒤로는 요다를 쫓아다녔는데, 요다가 싫다고 피하고 화를 내도 막무가내로 쫓아다녔다. 찰리는 조금 크자 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는데 나는 찰리가 쫓아다니는 걸 좋아라 했고 우리는 친구가 됐다. 찰리에게 요다와 나는 엄마 대신이었던 것 같다. 찰리는 다 크고 나자 더는 엄마가 필요 없어졌고, 암컷을 쫓아 떠나버렸다. 전문가들은 고양이와 안전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중성화 수술이 필수라고 한목소리로 주장한다. 그들이 권하는 대로 찰리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면 찰리는 암컷을 쫓아 도로를 건너는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찰리는 언제까지나 다정한 소년의 모습으로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렀을 테고, 우리는 매일 저녁 옥상에 누워 같이 노을을 바라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찰리를 위하는 일이었을까.
찰리를 처음 만난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찰리는 야적장의 사료를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나는 찰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쭈그리고 앉아 길목을 막았다. 찰리는 나를 무서워하면서도 뒤돌아 도망치지 않고 내 눈치를 보며 주춤거리다 내 옆을 가로질러 후다닥 뛰어갔다. 찰리의 대담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새끼 고양이들이 사람 그림자만 봐도 도망치는 통에 좀처럼 친해질 수가 없는데, 찰리와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렇게 됐다. 찰리는 야적장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한동안 나와 거리를 뒀다. 그런데 어느 날 찰리가 수줍게 다가오더니 내 종아리에 몸을 비볐다. 내가 손을 내밀자 찰리는 놀라 도망쳤다가 잠시 후 다시 다가왔고 이번에는 내 손에 머리를 맡겼다. 그때 나는 찰리가 그처럼 가까이 다가오는 게 두려우면서 반가웠고, 찰리의 털이 내 몸에 닿는 게 꺼림칙하면서 좋았다. 찰리도 그랬을 것이다. 찰리가 산비탈을 내려가 도로와 마주쳤을 순간을 상상해본다. 찰리는 나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뒤돌아 도망치는 대신 두려움을 무릅쓰고 도로를 후다닥 가로질렀을 테고 그 너머에는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2022. 3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