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언어

by 김지현

“야옹(문 열어줘).” 요다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이다. 처음부터 소리 내서 말하는 일은 없고, 문 앞에서 문을 바라보고 앉아 몸짓으로 말을 하다가, 한참 기다려도 내가 반응을 안 하면 그제야 작고 가느다란 소리로 “야옹” 한다. 끈질기게 조르는 걸 보면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지만, 막상 문을 열어 줘도 곧바로 튀어나가지 않고 나한테 할 말이라도 남아있는 것처럼 미적거리면서 느릿느릿 나간다. 몸이 위아래로 긴 사람은 문을 통과하는 데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몸이 옆으로 긴 고양이는 몸통이 문을 빠져나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겨우 몸통이 나가고 나면 꼬리가 나가는 데 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문을 닫고 앉으려고 문고리를 쥐고 선 나는 허공을 미끄러져 나가는 꼬리가 문틈을 완전히 벗어나길 기다리며 매번 인내심을 쥐어짜야 한다.

야옹 소리는 크기와 고저장단을 달리해 여러 의미를 전달한다.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 창문에서 뛰어내리며 정답게 야옹하는 건, ‘나 왔어’ 라는 뜻이고, 내가 만질 때 손을 가볍게 깨물면서 짜증스럽게 야옹하는 건, 손 치우라는 뜻이다. 목욕할 때 화장실이 떠나가게 큰소리로 아웅아웅하는 건 그만 하고 나가겠다는 뜻이고. 야옹 소리는 아웅, 우어웅, 이잉 등 여러 발음으로 변형 가능하고, 때로는 ㅇ 이외의 발음까지도 소화한다.

“테레비에서 보니까 말하는 고양이가 다 있대. 목욕시키니까 ‘나갈래, 나갈래’ 하고 말을 하더라니까.” 마을버스에서 할머니들이 주고받는 얘기를 들으며 노인들이 가짜 뉴스에 진짜 취약하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검색창에 ‘고양이 나갈래’를 치니 관련 동영상이 떴고, 동영상을 플레이하니 화장실에 갇힌 채 물을 뒤집어쓴 고양이가 ‘나갈래, 나갈래’하고 소리치는 게 아닌가. 정확한 발음으로 한국말을 구사하는 그 고양이는 미국 고양이였다.

고양이에겐 야옹 소리 외에도 여러 소리 언어가 있다. 그중 하나는 골골송으로, 목을 진동시켜서 내는, 오토바이 시동 걸리는 것 같은 소리를 말한다. 원래는 새끼가 젖 먹을 때 내는 소리인데, 젖을 뗀 뒤에도 응석 부릴 때 이 소리를 낸다. 골골송은 웃음과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특정 감정을 표현하고, 주된 소리(사람은 입말, 고양이는 야옹 소리)와 구분되는 소리를 내며, 온 몸을 쓰는 일정한 동작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람이 기쁠 때 입을 크게 벌리고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몸을 흔들고 양손바닥을 빠르게 마주치면서 숨이 가쁜 소리를 낸다면, 고양이는 다정한 감정이 차오를 때 눈을 감고 발톱을 세운 앞발로 어미의 젖을 꾹꾹 누르는 시늉을 하면서 골골 소리를 낸다. 붙임성 있는 고양이들은 쓰다듬을 때는 물론이고 눈만 마주쳐도 골골대지만 요다는 부탁이 있을 때만 골골댄다. 웬일로 요다가 다가와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달라붙어서 골골댈 때면 비어 있는 밥그릇을 확인하게 된다.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고양이들은 야옹 소리와 골골 소리를 달고 지낸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그런 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다. 자기들끼리는 주로 냄새와 신체언어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람과도 그런 언어로 소통해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고양이의 냄새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읽어내는 건 고양이가 안나 카레리나를 읽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신체언어는 그보다는 난이도가 낮다고 할 수 있지만, 역시 쉽지 않다.

내 경우에 고양이의 신체언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얼굴에 주목하는 습관이었다. 나는 요다와 있을 때도 사람에게 하듯 얼굴에서 표정을 읽어내려고 애썼다. 요다는 매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좌절시켰지만, 나는 찾는 물건이 거기 없다는 걸 수없이 확인한 뒤에도 뒤진 곳을 다시 뒤지는 미련함으로 요다의 얼굴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얼굴 저편에서는 언제나 긴 꼬리가 나의 시선을 잡아 끌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고양이의 신체에서 표정이 가장 풍부한 부위는 꼬리다. 넓적한 표면의 잔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이는 게 고작인 얼굴에 비해 꼬리는 360도에 가까운 회전부터 느낌표 물음표 물결 무늬 모양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감정을 표현한다. 요다의 꼬리가 그토록 눈에 띄는 동작으로 끊임없이 내게 말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집을 향해 가다 보면 요다가 뛰어와 내 다리를 툭 쳤다. 식구를 밖에서 만나면 더 반갑기 마련이라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띄고 큰 소리로 요다를 부르며 기뻐했다. 그런데 요다는 자기가 먼저 아는 척을 해놓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앞장서 가며 딴청을 부려 나를 서운하게 했다. 고양이가 높이 세운 꼬리로 반가움을 표현한다는 걸 나중에 책에서 읽고 알게 됐다. 그 뒤에 살펴보니까 앞장서 가는 요다의 꼬리는 항상 꼿꼿하게 서 있었다. 높이 세운 꼬리에서 깃발처럼 펄럭이는 반가움을 알아채지 못하다니. 내가 온 얼굴의 근육을 일그러뜨린 채 하이 톤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반가움을 요다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나처럼 서운해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사람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꼬리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바뀐다. 내가 만져서 잠을 깨우면 그 끝이 신경질적으로 흔들리고, 그래도 계속 만지면 채찍처럼 휘둘러 바닥을 내리치고, 옆집 개와 마주치면 너구리 꼬리처럼 두껍게 부푼다. 내가 말 시키면 대답도 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꼬리를 흔들어 대답하는 것이다.

“요다야!”

(꼬리를 흔들)

“요다!”

(흔들흔들)

“무슨 생각해?”

(흔들흔들)

“자?”

(흔들흔들)

나는 얘기를 더 하고 싶은데, 요다는 금세 싫증을 낸다.

“요다!”

(........)

“요다!”

(........)

“귀찮아?”

(........)

“말 시키지 마?”

(흔들)

“알았어.”

(........)


나와 얘기하다 잠든 요다. 창 너머로 성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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