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할 결심

by 김지현

현관 천장으로 비가 샜다. 원래 실외 공간이던 현관을 실내로 만들면서 생긴 문제였다. 합판으로 허술하게 이은 천장이 벌어져 그 사이로 맑은 날은 쥐가 고개를 내밀고, 장마 지면 물이 쏟아졌다.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있었던 문제인데 나는 그것을 집주인에게 말하지 않았다. 전 세입자의 당부 때문이었다. 전세 계약하던 날, 집주인 없이 집주인을 대리하는 부동산에서 전세입자와 만났다. “천만원이라는 싼 전셋값에는 집주인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어 있는 거예요.” 내가 자신의 통장으로 보낸 천만원을 확인하고 나서 전세입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그 집에 사는 6년 동안 집주인에게 한번도 연락한 적 없다면서 내게도 웬만한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고 살라고 당부했다. 나는 그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장마철이면 현관에 양동이를 받쳐놓고 조용히 지냈다. 문제가 집 안에서만 발생했다면 집주인에게 연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 아저씨가 문을 두드렸다. 밖으로 나가 그가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보니 낡아 허물어진 추녀 끝에 기와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그가 떨어지는 기와에 맞을 까 봐 그 아래를 지나다니기 무섭다면서 집주인에게 연락해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그때까지 집주인의 연락처를 몰랐던 나는 집을 계약했던 부동산에 연락처를 물어 집주인에게 전화했다. 며칠 뒤 집주인이 보낸 인부가 와서 추녀 공사를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옆집 아저씨가 또 문을 두드렸다. 나가보니 오래 된 외벽의 시멘트가 껍질 벗겨지듯 벗겨지고 있었다. 그가 또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집주인에게 연락했지만, 집주인은 더는 집에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았다. 옆집에서 구청에 민원을 넣었고, 놀란 집주인이 집에 한번 와보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집에 오기로 한 날 약속 시간이 다 돼서 집주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집까지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역 근처에서 보자고 했다. 나는 싼값에 집을 빌려준 그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집을 잘 쓰고 있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청소를 깨끗이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실망스러웠다. 집에 오지 않은 건 그 집에 연루되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역 근처 스타벅스에서 그를 만났다. 길지 않은 대화를 하면서 나의 집이 그에게 부동산 문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이해했다. 그런 취급을 받다니, 아이가 없는 자리에서 아이에 대한 부모의 냉담한 속내를 엿본 것처럼 마음 아팠다.

며칠 뒤 인부가 와서 벽에 시멘트를 발랐다. 그러나 낡아 헤지기 시작한 옷이 여기를 꿰매면 저기가 찢어지고 저기를 꿰매던 또 다른 곳이 찢어지는 것처럼 낡은 집은 계속해서 무너져 내렸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날 아침, 옆집 아저씨가 또 문을 두드렸다. 나가 보니 태풍에 날라간 기와가 골목 여기저기에 떨어져 박살이 나 있었다. 다시 시작된 갈등은 지붕을 방수포로 싸는 것으로 종료됐다.

처마를 새로 했고 벽의 시멘트를 새로 발랐고 지붕을 방수포로 쌌으니 더는 떨어질 게 없고, 더는 민원에 시달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요다가 자라 혼자 나다니게 됐을 때, 옆집 아저씨가 또 문을 두드렸다. 고양이가 지붕을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으니 조치를 취해달라는 거였다. 다른 데는 다 가도 좋은데 옆집 지붕에만 올라가지 말라는 말을 요다가 알아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저씨는 나와 마주 칠 때마다 나를 불러 세워 요다에 대한 불만을 말했고, 나는 그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집안에서 죽은 듯이 지냈다. 그러나 집안에서도 그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나의 집 앞을 오갈 때마다 같이 있는 아내에게 또는 혼잣말로 고양이 운운했고, 그 소리는 얇은 벽을 통해 내 귀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눈 오는 날 대문 앞에 앉아 있는 요다. 중성화수술을 한 직후라 목에 넥카라를 하고 있다.

(그림 설명-발정 난 고양이들이 괴성을 질러대는 밤이면 옆집 아저씨가 뛰어나와 고양이들에게 돌을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요다가 그 무리에 섞여 있는 걸 보게 된다면 그가 정말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요다가 6개월이 됐을 때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수술하고 얼마 안 돼서 집 앞에서 옆집 아저씨와 마주쳤다. 아저씨가 걸음을 멈추고 요다를 쳐다봤다. 요다의 넥카라를 보는 줄 알고 나는 큰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중성화 수술을 했어요.” 그 말에는 ‘아저씨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수술했어요. 잘 했죠?’ 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내 말에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짜증 섞인 어투로 말했다.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지, 시끄러워 못 살겠어요.”)


집주인이 나가달라고 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그 집에 살 작정이었는데,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 근처의 전셋집을 알아보게 됐다. 동네를 산책하며 눈여겨보던 집이 나와있었다. 진우와 돈을 합쳐 그 집을 계약했다.

이사 간다고 했더니 옆집 아줌마가 내 눈치를 살피며 왜 이사를 가냐고 물었다. 집이 좁아서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옆집만 문제는 아니었다. 혼자 살던 집에 요다와 진우가 들어와 살게 되면서 좁은 집은 바늘 하나를 새로 꽂을 자리가 없었다. 친구의 동생에게 그 집을 넘겨주고 나왔다.

이사하고 얼마 안 지나 마을버스에서 옆집 아줌마를 만났다. “자기 나가고 나서 그 집에 새로 들어온 총각하고 아는 사이라면서요? 그 총각 성격이 보통 아니죠?” 아줌마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 총각이 좁은 골목에 자전거를 세워 놔 가지고, 우리 아저씨가 밤에 들어오다가 몇 번이나 부딪칠 뻔했어요. 위험하니까 치워야 될 거 아니야. 우리 아저씨랑 그런 얘기를 하는데, 그 총각이 창문을 벌컥 열고 자기 들으라고 하는 얘기냐면서 큰 소리로 막 뭐라하더니, 창문을 탁 닫는 거예요. 무슨 그런 사람이 다 있어요?” 아줌마의 볼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속이 시원했다.


이전 09화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