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영

by 김지현

“웨얼 아 유 컴 프럼?” 타지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꼭 하게 되는 질문이다. 동네에서 못 보던 고양이를 만나도 그걸 물어보고 싶지만 알아듣게 물어볼 방법이 없다. “망치(슈퍼에서 밥 주는 고양이)가 주인이 있대. 용강교회 쪽이 집인데, 주인이 찾아서 데려가도 집에 안 있고 슈퍼로 도로 온대.” 가끔은 주위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답을 듣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소될 길 없는 궁금증을 견뎌야 한다.

고소영이 처음 야적장에 나타났을 때, 목사 사모가 구박하던, 그 집 지붕에서 울던 새끼가 아닐까 추측했다. 종일 울던 새끼도 고소영처럼 고등어 무늬에 까만 마스카라를 한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흔한 특징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새끼의 코에 까만 점이 있었다면 빼박 증거가 될 테지만, 그것까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쉬고 갈라진 고양이 울음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니 고소영이 울고 있었다. 고소영은 벙어리처럼 소리를 내지 않아서 만난 지 몇 달 만에 목소리를 듣는 게 처음이었는데 그 작고 예쁜 입에서 마귀 할멈처럼 쉰 소리가 났다. 울다가 울다가 나중에는 갈라진 소리로 울던 새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고소영이 정말 그 새끼 고양이가 맞는 게 아닐까. 이제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새끼가 무사히 지붕에서 내려가 동네를 떠돌다 야적장으로 흘러 들어온 거라고 믿고 싶었다.

겁 많고 조심스러운 성격 덕분이었을 것이다. 고소영은 긴코와 찰리 보다 오래 살았다. 오래 사는 게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나이 들면 병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소영도 흑두건처럼 구내염을 앓았다. 밥을 먹지 못해 살이 빠졌고 털 손질을 못해 꼴이 말이 아니었다.

몸이 아파서였을까. 고소영은 여름부터 마당에 들어와 지내더니 가을에 에어컨을 끄자 에어컨 실외기 위에 자리를 잡았다. 종일 그곳에 누워 있었다. 원래 가까이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도망치느라 정신없던 녀석이었는데 내가 마당을 쓸며 그 옆을 왔다 갔다 해도 다른 고양이들이 밥 먹으러 마당에 드나들어도 꼼짝하지 않았다.

요다 하나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기도 힘들어서 마당의 고양이들까지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건 안 할 결심이었다. 그런데 거실을 오갈 때마다 실외기 위에 누워있는 고소영을 보면서는 그 결심을 지킬 수가 없었다. 치료 방법을 알아보았다. 병원에선 전발치 즉 이를 다 뽑는 치료를 권했다. 전발치는 수술비가 비싸고, 수술해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치료를 위한 것이라지만 남의 이를 한 두 개도 아니고 몽땅 뽑는 게 잘하는 짓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빠지는 걸 지켜보기만 할 수도 없어서 망설이다가 수술 날짜를 잡았다.

병원에 데려가려면 고소영을 붙잡아 이동가방에 넣어야 했다. 고소영은 내가 다가가도 도망치지는 않았지만 붙잡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오전 내내 신경전을 벌인 끝에 간신히 고소영을 붙잡아 병원에 데려갔다. 대기실에서 수술을 기다리는데 의사가 불렀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마취된 고소영이 진찰대위에 길게 누워있었는데 털을 민 배의 색깔이 노란 약을 바른 것처럼 노랬다. 의사가 황달이 심하다고 했다. 문제는 그것 만이 아니었다. 검사 결과 담낭이 망가졌고 범백균이 발견됐으며 영양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의사가 잇몸 보다 그것들의 치료가 급한데 지금의 몸 상태로는 그 치료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수술을 포기해야 했다.

집에 돌아와 이동가방을 열자 고소영이 튀어나와 마취가 덜 깬 뒷다리를 질질 끌면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몰래 와서 밥을 먹고 갔다.

고소영은 마당의 겨울 집에서 그 해 겨울을 나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게 마르고, 까마귀가 친구하자고 할 만큼 때에 찌든 얼굴로 새 봄을 맞았다. 우리가 같이 맞는 6번째 봄, 아니, 고소영이 목사 집 지붕에서 울던 녀석이 맞다면, 우리가 같이 맞는 7번째 봄이었다.

개나리가 환하게 핀 아침이었다. 밥을 주러 나갔는데 앙상한 다리로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고소영의 눈빛이 흐렸다. 밥을 주니까 고소영이 갈지자로 휘청거리며 다가왔다. 하지만 냄새만 맡고 밥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물을 주니까 물그릇 앞에 한참을 서있었지만 물조차 거의 마시지 못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서 있는데, 고소영이 휘청거리며 다가와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고소영이 내 손에 몸을 맡기고 누웠다. 그처럼 무방비하게 내게 몸을 맡기는 건 처음이었다. 갈비뼈부터 고관절까지 툭 튀어나온 뼈들의 형태가 손끝에 고스란히 만져졌다.

이틀 뒤 고소영은 마당의 겨울집에서 죽었다.

사모의 화단을 없애고 바른 시멘트가 풍화돼 그 위에 찍힌 고양이들의 발자국이 흐릿하다.

(그림 설명-그 봄, 밖이 소란해서 나가보니 목사 집에 구급대원과 경찰이 와 있었다. 열린 현관문 너머로 어두운 마루 바닥에 잠옷 차림으로 누워 있는 목사가 보였다. 잠옷 바지 밖으로 나온 다리가 앙상했다. 며칠 전 길에서 마주친 목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못 보던 새 얼굴이 너무 마르고 창백하게 변해서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었다. 그의 집에 교회 사람이 와 있었다. 사흘째 연락이 안 돼서 와보니 그가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구급대원들이 그를 들것에 실어 구급차로 옮겼다. 구급차는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구급대원 한 명이 그를 받아줄 응급실을 찾아 문자를 보내는 동안 다른 한 명은 보호자 역할을 할 친척을 찾아 전화를 했는데, 어느 쪽도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목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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