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언덕

by 김지현

요다가 황급히 머리를 낮추고 어딘가를 주시한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대추나무의 낮은 가지에 노란 배를 가진 딱새가 앉아 있다. 낮은 가지에 달린 열매가 사람을 유혹한다면 낮은 가지에 앉은 새는 고양이를 유혹한다. 딱새를 주시하며 이를 빠르게 부딪쳐 딱딱 소리를 내는 요다의 표정이 새를 잡고 싶어서 죽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요다는 포복 자세로 몸을 낮추어 몇 걸음 전진하다 멈추고 몇 걸음 전진하다 멈추며 새를 향해 다가간다. 흠잡을 데 없는 기민하고 신중한 동작이다. 문제는 멍석 하나로 옷을 해 입은 흥부네 식구처럼 어딜 가든 나를 달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전봇대처럼 덩치가 커서 눈에 잘 띄는 데다 몸이 무겁고 둔해서 아무리 조심해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쿵쿵 소리가 난다. 딱새는 진작에 우리 존재를 알아챘을 텐데도 여유 있게 볼일을 보다 날아간다.

멀리 롯데타워까지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은 요다의 영토다. 언덕의 높은 쪽에는 몇 채 안 되는 집이 있고 낮은 쪽에는 계단식 밭이 이어진다. 요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곳을 순찰한다. 요다가 몇 걸음 가다 멈춰서 기둥에 뺨을 비비고, 몇 걸음 가다 발라당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며 자기 채취를 남기는 동안 나는 사철나무 울타리 너머로 마당을 기웃거린다. 아랫집 할머니가 양지바른 곳에 앉아 볕을 쬐고 있다. 나는 큰소리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괭이는 나섰어?”

“안 낫는 병이에요.”

“나서야지 안 낫는 게 어딨어.”

“그냥 아픈 채로 살아요.”

“환장하겄네.”

요다는 정해진 코스를 따라 언덕을 한 바퀴 순찰한다. 담벼락 위에 앉아 사방을 주시하던 요다가 목을 쭉 빼서 레이더를 세운다. 가까이에 고양이가 있는 것이다. 겨울 산에서 고양이의 정체가 노출되는 건 발소리 때문이다.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다니는 고양이라 해도 마른 풀숲을 지날 때는 소리를 안 낼 도리가 없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요다를 따라다니면서 나는 겨울 숲을 지나는 고양이 소리를 식별할 수 있게 됐다. 독서실에서 옆 사람 눈치 보며 과자봉지를 뜯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불규칙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 거기 고양이가 있는 것이다. 풀숲에서 검정고양이 한 마리가 나와 지붕을 타고 사라진다.

종별로 생김새 만큼이나 발소리도 다르다. 골목을 어슬렁거리는데 어느 집 마당에서 비닐 버스럭대는 소리가 난다. 거침없는 소리에 집주인이 쓰레기 봉지를 버리러 나왔나 보다 한다. 그런데 담 너머에 있는 게 사람이라면 진작에 도망쳤을 요다가 도망칠 생각을 않고 냄새를 맡으며 골목을 왔다 갔다 한다. 잠시 후 그 집 대문 밑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나온다. 우리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본다. 녀석이 앞발을 들어 상체를 곧추세운다. 목이 길고 털이 붉은 게 고양이가 아니라 족제비다. 족제비가 맞은편 집으로 쏙 들어간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다. 담 너머에서 보따리라도 끄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낙엽을 쓸고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 족제비의 동선이 눈으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고무 다라이에서 노는 고양이들. 이번 차례는 하니가 술래다. 요다가 다라이 밖으로 앞발을 내밀고 있다.

다시 조용해진 골목을 어슬렁거리는데 어디선가 야옹 소리가 들린다. 하니 목소리다. “하니!” 내가 소리쳐 부르니 하니가 할머니집 계단을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뛰어내려온다. 요다와 나는 같이 다녀도 서로 말 한마디를 안 하는데, 하니가 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하니는 요다와 나 사이를 팔랑팔랑 오가면서 내게는 아양을 떨고 요다에게는 장난을 건다. 밭에 엎어 논 고무 다라이는 둘의 놀이기구다. 요다가 다라이 바닥의 들뜬 틈으로 들어가 밖으로 앞발을 내밀자 하니가 거기 달려들어 쥐 잡기 놀이를 한다. 둘은 술래를 바꿔가며 논다.

언덕을 제 영토로 여기는 건 우리 만이 아니다. 광대나물은 언덕의 양지바른 곳을 모조리 차지한 채 녹색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났다. 우리는 광대나물로 뒤덮인 밭에서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볕을 쬐다가 집으로 향한다. 갈 때는 요다와 둘인데 돌아갈 때는 하니까지 셋이다. 하니를 앞세우고 샛길을 오르는데, 키 작은 녹색들 사이사이에 보라색이 섞여 있다. 광대나물이 봄도 되기 전에 꽃을 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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