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태국 여행 2018-2019 7화 방콕
방콕의 두 번째 숙소는 짜오프라야 강변에 있었다. 숙소 지붕 위로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지나가고 다리 밑에는 공원이 있었다. 라마8 다리와 라마8 공원. 그리고 공원 앞에 R8 coffee란 이름의 커피숍이 있었다. R8은 물론 라마8의 약자고, 라마8은 태국 국왕의 이름이다. 한국의 커피전문점들과 별다르지 않은 친숙한 모습의 카페. 저녁 무렵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카페 문이 닫혀 있었다. 문 여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매일 그 카페에서 아침을 먹어야지 생각하며 마음이 설렜다.
다음 날 아침 7시. 잠이 깨자마자 세수도 안 하고 집을 나섰다. 카페 문이 닫혀 있었다. 유리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안을 들여다보는데 작은 체구에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자전거에서 내려 다가왔다. 카페 점원이었다.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네다섯 평 크기의 작은 카페. 통유리로 된 창가에 바 테이블이 놓여있고 벽에는 테이블 하나와 소파 세 개가 놓여있었다. 그런데 테이블과 소파의 배치가 이상했다. 보통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의자를 마주 보게 놓는데, 여기는 소파 세 개가 벽을 등지고 나란히 놓여있고, 그 사이에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그중 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카페에서는 식사 거리를 팔지 않았다. 커피와 과자를 시키고 점원에게 근처에 마사지숍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가 메모지를 가져와 옆에 앉으며 마사지숍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오전 내내 이어졌다. 그녀의 이름은 ‘나’. 나보다 두 살 위라서 ‘피’나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 말로 ‘나’ 언니.
피나는 카페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서 보낸다고 했다. “카페 손님들이 다 내 친구들이야.” 피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님이 들어왔다. 활달한 인상의 40대 여자였다. “내 친구가 왔네.” 피나가 말했다. “여기는 걔, 관광 가이드야. 여기는 내 친구 지현, 한국에서 왔어.” “안녕하세요!” 걔가 한국어로 말했다. 걔는 한국에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다면서 서울, 평창, 부산, 제주 같은 한국 지명들을 줄줄이 읊었다. 잠시 후 경찰 제복을 입은 손님이 들어왔다. 그는 창가 자리에 앉아 피나와 이야기를 했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걔도 간간이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제야 의자의 배치가 이해가 됐다. 그 카페에선 일행이 아니더라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연스러웠다. 동네미장원 분위기에 동네미장원식 의자 배치.
카페에 7시에 갔다가 11시가 다 돼 일어났다. 피나가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점심시간에 만나 피나가 자주 간다는 국수집에 가서 국수를 먹었다. 헤어지면서 다음 날 아침 카페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피나를 따라 공원으로 아침 운동을 다니게 됐다. 방콕의 아침은 해뜨기 전부터 후덥지근했지만, 강가에선 시원한 바람이 불고 공원은 늘 운동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피나는 아는 사람이 많고, 인사하길 좋아했다. 피나가 인사하는 걸 보고 있으면 인사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나고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피나는 마주치는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멀리 지나가는 사람도 굳이 큰 소리로 불러 인사를 하고, 자기만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못 보고 지나치면 둘 모두를 불러 세워 인사를 시켰다. 나한테도 인사를 시켰다. “사와디카(안녕하세요) 해야지 사와디카” 나는 엄마에게 인사를 배우는 아이처럼 따라했다. “사와디카!” 피나는 그들이 지나가고 나면 그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일일이 설명해줬다. 미국에서 온 의사, 백만장자 사업가, 은퇴한 군인, 학교 선생님, 길 건너 피자가게 주인, 길 건너 일식집 주인 등등. 다들 커피숍 손님들이었다.
백만장자 사업가와 은퇴한 군인은 피나의 걷기 운동 파트너이기도 했다. 피나가 그들과 공원을 도는 동안 나는 정자에 매트를 깔고 요가를 했다. 강물을 바라보고 앉아서 요가를 하노라면 강물이 수없이 많은 붉은 색으로 붉어지다가 강 건너로 붉은 해가 쑥 올라왔다. 해가 빌딩 위로 성큼성큼 올라가고 나면 매트에 누웠다. 누워서 자전거 타기를 하고 있으면 강물 쪽에선 파도 출렁이는 소리가, 공원 쪽에선 새들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고, 머리 위론 정자의 천장 위에 꼼짝 않고 달라붙어 있는 도마뱀 두 마리가 보였다.
주말 저녁에는 공원에서 요가 강습이 있었다. 탁 트인 강변에 매트를 깔고 요가를 하다 보면 강물 위로 해가 졌다. 야외에서 요가를 하는 건 나의 오랜 바램이었다.
나는 15년 넘게 요가를 하러 다녔다. 처음 요가를 시작한 곳은 헬스클럽이다. 지하에 있던 헬스클럽 한구석, 유리로 칸막이를 한 방에서 요가 강습이 있었다. 유리 칸막이가 있다고는 해도 헬스장에 크게 틀어놓은 음악이 그 안에도 웅웅 울렸다. 공기도 나빴다. 강사는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 쉬라고 했는데, 숨을 들이쉴 때마다 사람은 많고 창문 하나 없는 지하의 공기 질이 오죽할까 싶어 숨이 답답해지곤 했다. 몇 년 후 3층에 있는 요가학원으로 옮기며 지하는 벗어났지만, 거기도 시끄럽고 공기가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건물이 육 차선 도로변에 있다 보니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벽이 흔들렸다. 또 공간은 작은데 수강생은 많아서 팔다리를 뻗을 때마다 옆 사람과 부딪칠까 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나는 눈앞이라도 한갓진 게 나을 것 같아서 맨 앞에 자리를 잡곤 했다. 그런데 맨 앞자리에서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벽을 보고 있노라면 어찌 숨이 막히는지 수인이 탈옥을 꿈꾸듯 자꾸만 탁 트인 곳에서 요가를 하는 상상을 하게 됐다. 그 상상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조차 없이.
그런데 그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근사했다. 요가를 하는 동안 강물 위로 해가 지고 달이 떴다. 바람은 서늘하고 공기는 향긋했다. 나는 양껏 숨을 들이쉬었다. 이것이 나의 현실이라니, 나는 왕자의 옷을 입고 궁궐에 들어간 거지처럼 눈앞의 현실이 황송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