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8파크의 자연법칙

미얀마 태국 여행 2018-2019 8화 방콕

by 김지현

짜오프라야강은 방콕의 중심을 흐르는, 한강만큼이나 큰 강이다. 한강은 저 혼자 흐르는데 짜오프라야강 위로는 물풀들이 따라 흐르고 배들도 같이 흘러 다닌다. 강에는 여러 종류의 배들이 오갔지만 나는 특히 바지선이 좋다. 바지선은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로 강에서 제일 큰 배다. 바지선에는 물건이 실려 있을 뿐 사람이 타고 있지 않다. 그 안에 사람이 없는 구조물은 가득 차 있어도 텅 빈 느낌이 드는데, 나는 늘 그 텅 빈 느낌에 마음이 사로잡힌다. 그런 느낌은 자칫 감상에 빠지기 쉬운데, 바지선의 소박한 외관은 감상에 빠질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 점도 마음에 든다. 바지선은 오직 물건을 실을 목적에만 충실하여 아무 장식 없이 단순하다. 탈 것의 디자인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동력기관인데, 동력기관조차 없다. 그래서 기계소음 없이 산처럼 고요하게 떠다닌다.

바지선은 떠다니는 네 개의 산봉우리처럼 네 척이 줄줄이 같이 다닌다. 그런데 동력기관 없이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가만 살펴보면 그 한참 앞에서 바지선의 1/10도 안 되는 통통배가 앞장서가는데, 그 통통배와 바지선이 밧줄로 묶여있다. 설마, 저 작은 배가 바지선들을 끌고 있는 것일까? 잘 믿기지 않지만 그렇다. 작은 배가 밧줄에 묶인 거대한 바지선들을 끌고 가는 모습은 괴력의 차력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는 육지의 차력사와는 달리 물 위의 차력사는 도무지 힘을 쓰는 기색이라고는 없이 한가롭기만 하다. 그 작은 배가 큰 배들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끌고 다니고, 큰 배들이 작은 배에 그리 순하게 끌려다니는 게 나는 보고 또 봐도 신기하기만 하다.

“저 배로 뭐를 운반하는 거야?”

어느 아침, 내가 바지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배는 빈 배야.”

피나가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배가 북쪽 공장에서 물건들을 싣고 남쪽 바다로 가는 거거든. 근데 저 배는 지금 남쪽 바다에서 오잖아.”

배가 바다에서 오는 거라고? 그러나 배는 물풀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물풀들은 바다로 흘러가는 것일 테니, 배는 바다에서 오는 게 아니라 바다로 가는 것이다.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 바다야. 물풀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봐.”

나는 피나의 착각을 일깨워주기 위해 말했다.

“아니 저쪽이 바다가 맞아. 강이 바다랑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거야.”

피나는 엉뚱한 소릴 했다.

“강이 바다랑 반대 방향으로 흐르다니?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르게 돼 있는 거 아니야?”

설마 피나는 강이 바다로 흐른다는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는 것일까?

“진짜야. 지금은 바다 반대 방향으로 흐르지만 있다는 바다 쪽으로 흐를 거야.”

피나의 주장은 점점 더 터무니없어졌다.

“강이 아침저녁으로 방향을 바꿔서 흐른다고?”

내겐 피나의 말이 아침에는 사과가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고 저녁에는 땅에서 나무로 떨어진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게 들렸다.

“응, 진짜야.”

피나가 대답했다. 농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녁에 다시 강가에 나갔다. 피나 말대로 수초들은 아침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피나가 위키피디아를 찾아가며 애써 설명한 것을 대충 이해한 바에 따르면 해수면이 높아지면 강이 역류했다 해수면이 낮아지면 바다로 흐른다는 것 같았다. 정확한 원리야 알 수 없지만 세상에는 바다와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강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른다는 법칙뿐이 아니다. 라마8공원에서는 내가 아는 자연법칙이 도통 통하질 않았다.

어느 저녁 피나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주위는 플루메리아 꽃향기로 가득했다. 플루메리아는 열대식물로 우리 꽃 중엔 목련과 비슷한 점이 많다. 꽃나무가 크게 자라고, 흰색과 자주색 꽃이 피며, 꽃이 핀 모습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곱고, 두툼한 꽃잎이 비로드처럼 보드랍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른 꽃이다. 플루메리아는 목련보다 꽃송이가 작고 향기가 짙으며 꽃이 통째로 떨어진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차이는 목련이 허무하리 만치 서둘러 지고 마는 데 반해 플루메리아는 영원히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희 나라는 겨울이면 나무에 나뭇잎이 없다면서?”

피나가 물었다.

“그럼 나뭇잎은 다 떨어지지.”

내가 대답했다.

“풀들은?”

“다 죽지.”

“다 죽어?”

“겨울엔 다 죽었다가 봄에 새로 나. 여긴 풀이 안 죽어?”

“안 죽어.”

“안 죽는다고?”

“안 죽어. 물만 주면.”

“그럼 저 꽃은?”

나는 플루메리아를 가리켰다.

“저 꽃도 언제나 피어있지.”

“언제나?”

“오늘 꽃이 떨어지지만 내일은 또 그만큼 피어.”

“저 꽃이 12월에도 피어있고 1월에도 피어있고 2월에도 피어있고 6월에도 피어있고 7월에도 피어 있단 말야?”

“응. 물만 주면.”

“365일 피어 있단 말이야?”

“응.”

그때까지 나는 꽃이 지지 않고 영원히 피는 곳은 천국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상에 그런 곳이 있고, 내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영원히 지지 않는 플루메리아를 바라보았다. 이야기 속에서 천국의 정원에 들어간 사람들은 꽃나무 사이를 거닐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내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경악과 혐오였다. 단아한 자태에 그윽한 향기를 뿜는 그 꽃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지는 만큼 다시 피어난다는 그 꽃이 칼로 베고 총을 갈기고 화염방사기로 불태워도 다시 살아나는 에이리언을 보듯 징그러웠다. 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건 꽃이 피었다가는 지기 때문이고, 그 꽃을 다시 보기 위해서는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 아니던가.

나는 화무십일홍을 자연의 법칙으로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구상에는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 지역이, 그것도 매우 넓은 지역이 있는 것이다. 나는 화무십일홍을 자연의 법칙으로 믿었던 것만큼이나 꽃이 질 때 느끼는 슬픔 비슷한 감정을 인간의 기본 정조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의 법칙 바깥에 사는 사람들은 그 감정을 알지 못했다.


“꽃이 지질 않으면 너는 꽃이 질 때의 슬픔을 모르겠네?”

내가 물었다.

“꽃이 지는 게 슬퍼?”

피나가 되물었다.

“한국에서는 꽃이 폈다가 일주일에서 열흘이 지나면 지거든.”

“꽃이 일주일에서 열흘 밖에 안 가?”

“날씨가 계속 바뀌니까.”

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네는 계절을 어떻게 나눠?”

내가 물었다.

“계절이 하나지. 덥다가 비가 오고 비가 오고 나면 덜 덥지만 여전히 더운.”

피나가 대답했다.

“일 년 내내 계절이 하나고, 일 년 내내 똑같은 꽃이 피면 너는 자연의 변화를 어디서 느껴?”

“비가 올 때, 비가 오고 나서 덜 더워질 때 변화를 느끼지.”

“나는 여름이 가을이 되고 가을이 겨울이 될 때 슬픔을 느끼는데, 너도 비가 오거나 비가 그치면 슬픔을 느끼니?”

“너무 더우면 슬프지. 너무 더워서 슬퍼.”

“그건 화나는 거고. 너는 여름에 무성하던 잎이 가을에 떨어질 때 느끼는 슬픔을 모르지?”

“나뭇잎이 떨어지면 슬프다고?”

“한국에서는 봄에는 꽃이 피고 잎이 나서 여름에는 무성하다가 가을이면 꽃과 잎이 다 떨어져. 그렇게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슬퍼져.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질 때 슬픈 것처럼.”

“나도 관계에선 슬픔을 느껴. 근데 왜 자연에서 슬픔을 느끼지?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래?”

우리는 언제나 자연으로부터 인생을 배운다. 봄·여름·가을·겨울은 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인생의 은유다. 그런데 여름만 계속된다면, 사계절이 없다면 말이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인생을 배울까? 이른 봄 환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지고 마는 꽃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생의 무상함을 배우고, 늦가을 꽃처럼 떨어지는 낙엽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무상의 아름다움을 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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