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이래서 추천하는 건가요?

무료여서 시작한 독서가 끄적이며 읽다 보니 참 재미납니다.

by 꼬빙


초등학교 시절에는 밥도 안 먹으며 책을 읽었었는데, 중학교 입시가 시작되고부터는 책이 싫어졌다. 당장 영어 단어 외우는 게 중요하고 잠자는 시간마저 모자란데 느긋하게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더 심해졌다. 정말 목숨 걸고 공부를 했고 논술이라는 시험 때문에 진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요약본을 봤다.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고 일을 하면서 놀 거리가 많았다. 악기도 배우고 춤도 배우고 영화도 보고 전시회도 갈 수 있고, 맛집 탐방, 그리고 빵집 투어, 여행 등등 놀거리는 풍부했다. 1년에 책 한 글자 보지 않는 날이 많았다. 결혼 후에도 신랑이랑 노닥거리며 또 심심하면 카페를 가면서 영화를 보면서 책을 멀리했다.


지금은 신랑과 카페를 가기도 맘 편히 영화관을 가기도 살림이 넉넉하지가 않다. 그래서 처음에는 TV를 봤다. 올레티브이를 연결해 둔 덕분에 무료로 볼 수 있는 드라마와 영화가 많았고 영화관 대신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집에서 내가 원하는 장면에서 멈추기도 하고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편하고 재미도 있고 시간도 잘 갔다. 그런데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멋있고 예쁘고 좋긴 하지만 내 삶과는 좀 다르게 유난히 화려하고 반짝여 보이는 모습들, 동화 같이 현실의 부분들이 생략된 그 모습들이 좀 재미가 없었다. 예능도 시큰둥해졌다. 남이 하는 여행 구경, 남이 먹는 거 구경이 신나지가 않았다. (사실 내가 여행 가고 싶고 내가 직접 먹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돈은 없고 밖에 나가면 다 돈이어서 마땅한 선택지가 없을 무렵 문뜩 도서관이 생각났다. 여름이면 쾌적한 에어컨이 잘 나오고 깨끗하고 겨울에도 따뜻한 편이며 게다가 공공기관이라 책 대여가 무료다. 그리고 컴퓨터도 무료로 사용이 가능하다. 카페 갈 돈이 아깝기도 하고 드라마나 예능도 지겨워지면서 도서관을 찾았다. 그리고 책장을 쭉 둘러보고 관심이 가는 책들을 슬슬 빌려왔다. 처음에는 욕심에 가득 차서 읽지도 못할 책을 잔뜩 빌려오고 다 읽지 못하고 그대로 반납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뭔갈 쓰면서 공부해야 머리에 들어오는 타입이었는데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좀 쓰기가 귀찮기도 하고 노트에 기록해도 다 쓰면 버리게 돼서 그냥저냥 몸만 도서관에 왔다 갔다 했다.


2020년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아이패드를 구매하고 집에서 사용하면서 용량이 허락하는 한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전자노트를 구매했다. 내 맘대로 스티커도 만들 수 있고 사진 이동도 자유롭고 내 글씨체가 그대로 화면에 구현되는 것도 좋았다. 그냥 아이패드를 가지고 노는 거 자체가 흥미로웠다. 일상을 기록하는 건 한계가 있어서 아이패드로 독서 노트를 만들었다. 앞에 책 표지를 붙이고 뒤에는 책에서 인상 깊은 내용이나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들을 적기도 하면서 천천히 책을 씹어 먹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모르는 용어는 하나씩 찾아 내 노트에 붙여 넣기를 하며 읽었다. 재밌다! 어려워서 다 읽지도 못하는 경제 관련 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었다. 지금은 더 두꺼워 보이는 책을 붙잡고 또 아이패드로 끄적이며 읽고 있다. 간간히 모르는 사람이 나오면 검색도 해보고 용어들도 찾아서 복사-붙여 넣기도 하며 즐겁게 책이 읽힌다.


돈이 없는데 할 게 없어서 시작한 독서다. 그런데 재미있어서 뭔가 좋다. 고작 책 한 권 끝까지 읽었을 뿐인데 정말 뿌듯하고 내가 1cm는 성장한 느낌이다. 쾌적한 도서관이 근처에 있는 것도 또 무료로 책을 빌릴 수 있는 것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데 영화관, 전시회를 못 가는 대신(물론 갈 수는 있다만 그렇게 까지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독서가 시작되었다. 외벌이 시절을 버티며 한 번 독서의 세계에 푹 빠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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