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가지않는 날 증상
오늘, 눈을 감고 잠시 깊은 명상 비슷한 기도같은걸 해봤다.
나는 원래 소비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다.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고, 꼭 필요한 물건만 사는 편이다.
그런데…오늘 운동을 안갔더니 잡생각이 이런 확고한 의지를 흔들었다. 눈에 밟히는 것들.
자꾸만 이 세가지가 나를 유혹한다.
1. 기타
2. 러닝화
3. 청축 키보드
"하느님, 부처님, 저 기타가 제 운명이라면 사게해주시고, 아니라면 사고싶은 마음이 떠나가서 영영 돌아오지않게 해주세요~! 무소유하게해주세요!"
잠시 기도같은걸 해봤다.
그리고 다시 감정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기타 Guitar!
나는 클래식 기타를 오래 쳐왔다. 이미 앙상블에서 쓰던 기타와 다른 기타도 몇 개 있다.
잘 관리된, 아직도 상태 좋은 기타들이다.그런데 요즘 자꾸 또 새 기타가 눈에 들어온다.
뭔가 톤이 더 아름다운것 같고 … 디자인이 세련되고…
무엇보다 이 기타를 사면 연주실력이 더!더! 급상승할 것 같은..
거짓말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내 연주 실력이 정체된 거같은 이유는 순전히 연습 부족 때문이다.
새 기타를 산다고 해서 카르카시 악보를 마스터 할만큼 손가락이 갑자기 더 빨라질 리 없다. 그런데도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려한다.. 너무 힘든 감정적 소비다.
나는 감정을 흘려보내야 한다.
이성을 찾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결심했다.
"안 돼. 기타 대신 운동을 하자! 러닝이나 가자!"
운동복을 입고 신발장을 열었다. 갑자기 러닝화가 새로 사고 싶어졌다.
이제 보니 내 러닝화, 왜 아직도 멀쩡하지?
얼마나 관리를 잘한거야?! 쿠션도 살아 있고, 왜 아직 튼튼한거지?!
그런데도 유튜브에서 본 신상이 떠오른다. 더 가벼운 카본에, 더 좋은 반발력으로 새 러닝화를 신으면 내 러닝 페이스가 0.03초 단축될 것만 같다. 나가던 길을 멈추고, 폰으로 나이키를 검색했다.
계속 내 머리는 "새 신발 = 실력 향상"이라는 구라를 장렬히 치고 있었다.
!! Lier !!
" 난 휘둘리지 않아. 러닝 실력은 신발보다 꾸준함이야."
Deep Breath! Deep Breath!
감정을 흘려보내야 한다. 나는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되내이며 결심했다.
맞춤 광고 기록을 다 삭제하자.
클릭!클릭! 삭제 완료!
이걸로 끝이다. 나에게 이제 더이상 관련 광고도 뜨지 않을 것이다.
내눈앞에서 유혹이 사라졌다! 나는 소비 유혹에서 벗어났다.
…라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얼마전 유튜브에서 본 청축 키보드 타건음 ASMR이 떠오른다.
"이 소리~~~이 생산성있는 소리.~~~..!"
찰칵, 찰칵, 찰칵!
청축 키보드를 두들기는 리드미컬한 소리~~
그 청량감에 황홀경에 빠진다. 내 도파민을 직접 두드리는 듯한 맑은 소리..
내 생산성도 높여줄 것만 같고, 손목도 안아플 것 같았다. 타자 몇번 치지 않아도 뭔가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을 것 같은 상상. 지금 내 키보드가 청축인데... 유튜브 속 키보드는 더 예쁘고, 카메라 셔터 소리를 연상시키는 청량함. 찰칵, 찰칵!
"한 번사면 몇년쓰니 괜찮잖아?"
..(타협해봄) ..
나는 유튜브 기록을 삭제했다.
알고리즘을 리셋한다 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relax
…라고 다짐했다.
그러고는 또 봄이 올것이라며 특정 브랜드의 재킷을 찾아보고싶은 마음.. 눈을 감고 멘탈을 잡았다.
쳐다도 보지 않아야 한다. 나는 감정을 흘려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래, 나는 감정을 소유하지 말자. 난이제 자유야!!"
이성을 되찾는다.절제!
"이제 됐다. 나는 감정의 주인이야!"
자제력 vs. 감정의 끝나지 않는 배틀은 운동가지않을 때의 증상이다.
나는 무소유와 중용을 원하는데, 특히 월급이 들어온 날 며칠간 이 증상이 심해진다. 다시금 다짐해보았다. "세상에 중용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건, 단 두 가지뿐이야!!!".
1. 가족에게 쓰는 돈
2. 선크림
가족을 위한 지출은 절대 아끼지 않는다. 부모님 선물, 가족 건강식품, 필요한 물건들은 OK!
선크림.
선크림은 양 조절없이
"더! 더! 더!"
더 많이, 아주 쭉쭉, 완전 듬뿍 여러번 덧발라야한다..이것만큼은 절제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기타도 안 사고, 러닝화도 안 사고, 청축 키보드도, 재킷도 안 샀다. 성공했다.
다만, 얼굴에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뿌듯해했다.
>_< 이게 바로 자제력인가!
-2월16일 thread에 쓴글.
오랜만에 언니와 러닝........이라 말하고 싶지만
러닝을 완전 싫어하는 언니라 그냥 산책을;;::
걷기 산보..!? 흐흐흐.
그냥 밤공기나 마시러 나왔다!
난 답답하지 않다!
-2월18일 thread에 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