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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번도 소개팅을 해본 적이 없다

by La Verna


지금까지 단 한번도 소개팅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 회사에서도, 운동모임에서도 주변인들에게 소개팅 후기를 거의 매일같이 듣고있다. 별로 재미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은데, 내가 잘 들어주는 편이라 그런지 아님 얘기할 때가 없어서 그런지.. 여튼 거의 결론은 똑같다. "그냥 그랬어.."

소개팅이 생각보다 잘 성사되지 않는다는 공식이 생기기 시작하니, 괜히 나까지 심드렁해졌다.

최근에 아는 언니가 나에게 소개팅 썰을 풀었는데, 이건 좀 강렬했다..


"나 요즘 한 달에 10번은 소개팅 나가는 것 같아... 진짜 힘들어.."


"우와, 그럼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겠는데여? 어땠어여?"


펀드매니저로 일하는 내가 너무나 선망하는 멋진 언니라, 혹시나 연예인이나 희귀 직업군의 사람이라도 만났나 싶어 오랜만에 소개팅 썰을 기대하게됐다.

그런데 언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만나면 만날수록 진짜 다 별로야.

얼마전에도 소개로 한명 만났는데…"


"어우, 뭔데여~? 얘기해보세요!"


나는 경청을 시작했다.

"그분이 사업을 여러개 하시는데, 서울에 자가 두 채에 자기 명의의 건물도 있대.

키 170 넘고, 성격도 인성도 좋고, 부모님 노후 준비도 다 되어 있고..."


나는 이미 마음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거 아닌가 싶었지만,

듣고있다보니 그 또한 '별로였다'고 한다.

성격도 인성도 훌륭하고, 재력도 있고 부모님께도 잘하는 완전체같은데.. 자세히들어보니,

"근데

얼굴이간디야....;;"


.......?;;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간디요? 마하트마 간디?"


(끄덕끄덕)


순간 너무 웃겨서 정신을 못 차리겠어서 거의 주저앉을 뻔했는데 티나면 너무 비매너같아서 예의상 꾹 참고 있었다. 머릿속엔 온통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간디'가 떠올랐다..

수트를 빼입은 간디가 강남 빌딩앞에서 나와 온화한 미소로 "방금 전세계약, 아주 좋았습니다^ ^"라며 엄지척(thumb-up)하는 자애로운 얼굴이 아른거리고 있는데

웃음을 꾹 참고 침착함을 유지하며 듣고 있다가 반사적으로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아, 왜요.!

간디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데! 비폭력에 일조한 사람이잖아요."


".......;;"


난 왜 간디를 옹호하고 있었을까. 계속 간디가 강남 스벅에서 앉아 "분노는 약자의 무기입니다^^"라고 합장하면서 미소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간디의 인류애와 위대함을 늘어놓고 있던 찰나

또 말이 헛나와버렸다.

"너무 외모지상주의 아니에요?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밸런스를 맞춰야져. 너무 완벽하면안좋잖아요~

사람이 너무 완벽하니까… 살짝 간디 버튼 눌렀나보져!!"


"야,.. "


"대머리세요?"


"아니 그건 아닌데.."


"외모는 각자 취향이니,

언니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야져! 어쩌겠어요.. 그분과는 인연이 아닌가 봐요..."


"좀... 시대를 초월한 느낌이랄까?"



어렵다.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앞으로도 난 소개팅은 하면 안되겠다. 나랑 정말 안맞겠다.. 소개팅.. 뭔가를 심사관이 된 것 마냥 스펙도 다 따지고, 마지막에 "혹시 얼굴은 간디인가요~??" 이런 것까지 확인해야하는 게 정말 아닌 것 같다. 하늘아래서 뭔가 인간이 해선 안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무섭다.

오디션 심사도 아니고, “모든 조건이 완벽한데… 얼굴이 간디라서 탈락입니다.?!”라고 하면 너무 슬플듯..

누군가를 저울질하고, 평가하는 건 뭔가 죄책감이 든다. 그냥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싶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젠 소개팅이라고하면 고층 빌딩 앞에서 합장한 양복입은 간디가 떠오를 것 같다. -2월21일 thread에 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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