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자기전, 작은 관(棺)같을걸 준비한다.
오늘 하루의 나를, 곧 뉘울 시체로 정중히 대우하며 침대를 정돈하고,
잠옷을 세탁한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는다.
머리맡에 하루에 쌓인 수많은 ‘짜증’과 '화', ‘아픔’을 유품으로 정리하고 오늘의 내가 죽고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작은 '죽음'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를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숨막힘 대신, 더 가볍고 간결한 느낌의 'Z'(Zookum =죽음)로 부르려 한다.
이렇게 Z는 나의 밤루틴 한가운데에 있는 약간의 의식같은 것이다. Z를 실행하면서 오늘은 끝난다.
눈을 감고, 유서를 쓰듯,
"오늘 나를 괴롭힌 모든 상황과 사람, 감정을 여기에 내려놓습니다.
상처도, 분노도, 후회도 이곳에 묻어,
내일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를 지켜주소서.” 라고 말하면 (기독교아님×) 침대는 관이 되고, 이불은 흙이되어 하루의 시신을 묻는다.
그리고 내일아침 나는 다시 태어난다.
그러다보니, 잘때는 되도록 방에 널브러진것은 모두 정리한다.
밤에 죽어 앰블런스가 와서 내일 누군가 나의 시체를 발견하더라도 부끄러운 모습이 아닌 상태로 있고 싶은 이유이고, 마지막 인간의 품위를 지켜야할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 Z를 반복할수록 성격은 냉소적이고 시니컬해진다. '어차피 다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웃음뒤에 가려진 이 냉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이 나를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내안에 대문자 Z가 들어있다. 그치만 이것이 나쁜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상황이나 감정에 굴복하지 않고, 중용과 아픔에 무감각해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 Z야말로 삶의 떫음 속에 단 맛을 찾아준다. 즉, 실패도, 성공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텁텁한 죽음의 케이크'위에 올라온 '체리'와 같다. 쓴맛나는 커피 한 잔 마실때, 뒤에오는 단맛이 있다. Z는 그렇게 차갑지만, 세상을 한 입 베어 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내게 Z의 최후는 사실 L(Love:사랑)이다.
매일 나를 죽이는것은 내일의 나를 사랑하기때문이다.
사회의 기준과 타인의 기대.. 이 모든 것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은 자기에 대한 사랑이자, Z의 완성과 같다. 사랑(L)은 타인을 위한것이든, 자신을 향한 것이든 때때로 잔인하다.
오늘의 나를 죽여야(Z) 내일의 내가 숨 쉬고, 부모의 살과 피가 깎여야 아이가 자란다.
그런의미에서 L과 Z는 같은 선상에 있다.
인생은 대문자 Z(죽음)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는 소문자 zzzzzz(작은 죽음)들의 행진이다.
죽음과 탄생의 무한루프. 그속에서 우리는 zzz로 잠들었다가 Z로 깨어난다.
Z는 좋고 행복한 것들을 꿈꾸는 희망을 향한 조롱이자, 허무를 견디는 법이다.
매일 밤, 나는 죽음(Z)을 연습하고, 다음날 살아난다.
오늘을 묻힌 자리에서, 내일의 새벽이 태어난다.
내일의 태양은 시체 위에 핀 꽃이 된다.
-3월3일 thread에 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