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근본적으로 고상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신생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순수하고, 깨끗하고, 위엄까지 있다.
작은사이즈의 인간은 연약함과 완전함까지 갖췄다. 태어난 지 몇초안에, 어른들을 침묵시키고 시선을 집중시키고.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사실 태초부터 이렇게 고상했다.
고상함이라기보다, 차라리 성스럽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원형이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원형이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된다.
흙탕물에 뒹구는
처절한 깎임과 갈림의 여정.
인생... 그 고상함의 ‘사포질’이 시작된다.
순수한 인간이 현실이라는 사포 위를 미끄러지며 흙탕물 속에서 뒹굴고, 닳고, 깎이고, 모나고, 부서진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울었다.
본능적으로 아기는 안다.
"아, JOT됐다" → 뜻 : 망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미친듯이 갈리고, 깎이고, 닳아 없어질 것이다.처음에는 젖을 달라고 울고, 배고프다고 울고, 그러다 금방 배운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만 먹을 수 있어."
"공공장소에서는 배고프다고 떼쓰지 않아야해!"
이렇게 사회의 룰을 익혀가며, 인간의 원초적인 자유가 서서히 사라진다.
조금 더 크면,
말도 못하던 아기 시절보다 한층 덜 고상해진다.
유치원에서는 코를 후비지 말라고, 바닥에 눕지 말라고 배우고, 초등학교에서는 뛰지 말라고 혼난다. 그러면서 점점 인간으로서의 야성이 사라지고, 사회가 원하는 ‘적절한 형태’로 다듬어진다. 사춘기 때는 억눌렸던 본능이 폭발하며 마그마처럼 끓어오르지만, 그것조차 결국엔 식어간다. 아니, 어쩌면 식힘질 당한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겨우 통과하면, 이제 인간은 거의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드디어 사회에 나온다. 사회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인간을 '매끈한' 부품으로 만드는 대형 공장아닐까.
사회생활, 그 상사의 썩은 농담에 웃어주며 한 조각 깎이고,
실수 하나에 눈치 보며 한 번 더 깎인다.
내가 '숫자’로 환산될 때 깎이고, 아이를 키우며 닳아버린다. 물론 미혼이지만 부모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 나는 거울을 본다. 그 안의 사람이 낯설다. "이게… 나였나?" 한때는 순수하고 우아했던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삶에 찌들고, 표정이 굳어버린 병자가 있다. 헐. 그리고는 생각한다.
"내가 너무 닳았다. 원래 나는 안 이랬는데."ㅡ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며, 사람은 본래의 품격을 되찾기 시작한다. 노인이 되면, 다시 자유로워진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듣기 싫으면 그냥 안 듣고, 거리에서 춤을 춰도 뭐라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본능에 충실해지는 것 같다.
인생은 처음과 끝이 비슷하다. 다만, 중간에 너무 멀리 돌아가기에 그 사실을 망각할 뿐이다.
인간은 늙어가면서 점점 더 본연에 가까워진다. 다시 고상해진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방식이 좀 다를 뿐이다.
점심시간 가끔 벤치에 앉아 있는 80대노인이 말을 건다.
그는 이미 세상의 모든 풍파를 겪었다.
더이상 깎일 것도 남아있지않다.
그의 백발이 곧 그의 영광이다.
그리고 그는 기품 넘치는 한마디를 내뱉는다.
"이 X같은 세상!!"
그런데 이상하다. 왠지 품위 있어 보인다.
이게 바로 완성된 인간인가?
망할 세상을 지나온 그가 여전히 앉아있다는 것, 그것은 가장 고결한 품격이다.
세상은 여전히 고된 곳이다. 고상한 삶이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망할 세상 인간은 끝끝내 고귀하다.
-3월5일 thread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