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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그 '죄인의 왕좌'

The Game of Teeth

by La Ver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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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 가면, 거대한 의자가 입을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숨죽이고 치과의 문턱을 넘어 데스크로 다가간다.


"어제…......... 예약한 자입니다."


치과 진료실로 들어간다.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왕좌처럼 놓인 의자. 그곳에 있다. 일반 의자와 달리, 나를 드러눕히고, 나는 저항없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이 왕좌에 오르는 순간, 나는 무방비한 죄인이 된다. 죄의 무게를 재는 자리.

누운자세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고백의 자리, 수치의골짜기.


이곳에 앉는다는 것은, 지난 6개월간 모든 치아 관리 실적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이다.

간호사는 말한다. "편하게 누우세요~"

편하게? 이곳에서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6개월간 치실을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인간일 것이다.

다른 병원에서는 크게 별말 안하고,

"아, 감기 걸리셨어요?"

"네."

"약 이거이거 드세요." 끝.


하지만 치과는 다르다.

내 삶의 모든 나태함과 타협, 게으름과 방종의 흔적이 백일하에 드러내는 고해성사의 장소이다.

이곳에서 입을 여는 순간,

내 모든 과거의 기록들이 펼쳐진다.

진료 의자는 뒤로 젖혀지고, 나는 무거운 질문을 마주한다.


"이 잘 닦으셨죠?"

나의 뇌는 이미 풀가동을 시작한다. 여기서 정직하게 대답할 것인가? 아니면 적당히 둘러댈 것인가?

양심을 만져보지만 치과의사앞에서 내 새빨간 거짓말이 무슨 소용일까.

그는 이미 내 치아 표면을 보면 거짓말 탐지기처럼 거짓과 진실을 볼 수 있다.

치아 엑스레이를 열면, 내 삶은 4K 해상도로 생중계될 것이다.. 나의 모든 죄가 기록된 치아.

태만한 자의 관리기록들이 고해성사처럼 낱낱이 드러난다.


"아, 치실은 가끔 쓰시죠?"

"네,.. 가끔이요..."

"가끔이 언제죠?"

"아마....."


공기가 얼어붙는다. 죄책감이 온몸을 휘감고, 눈앞이 흐려진다. 재판장에서 유죄 선고 받은 기분으로 나는 그렇게 누워있다. 치과 의자는 고해소이고, 치과의사는 내 죄를 낱낱이 캐묻는 심판관이다.


나는 의자에 누운채, 존재의 근본적 질문을 마주한다.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 있는가. 그리고 왜 치실을 쓰지 않았는가..

치약이 닿지 못한 그늘진 골목,

치실이 안아주지 않은,

사랑받지 못한 외로운 구석.

닿을듯 닿지 못한 칫솔의 끝을 원망하며 그 공백이 허무하게 울고있다, 검은 상처를 남기고.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내 양심, 동굴 속에서 치아들이 아우성친다.

"치약과 치실없이 우리는 얼마나 나약했던가!"

마침내 무거운 굴레가 내려앉아 백색왕국을 돌처럼 굳혀버렸다.

사랑도, 희망도 그안에서 질식해버리고 이제 치석만 남았다.

아, 애달픈 치아의 사랑이여..

단 한번의 치실의 포옹이 있었더라면.

단 한번 칫솔이 닿았더라면..

나는 후회했다.

치과는 심판의 장이다. 도망칠까, 아니면 정직하게 고백할까?

하지만 도망칠 곳은 없다. 이미 무기력한 입은 벌려졌다.

정적 속에 두 눈알이 내 입속을 할퀴듯이 응시한다.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이 분은 내잇몸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보고 있다..'

눈앞이 흐려지고, 속으로 기도를 외운다.

" 제발, 가벼운 판결을 주소서…"

" 안 아프게 해주소서… "


혹시라도 의사가 "충치가 몇개있네요" 라고 하면, 나는 벌을 받아야만 한다.

충치 치료? 무절제한 간식 섭취에 대한 형벌.

스케일링? 나태한 삶에 대한 심판.

잇몸 통증? 자기 관리를 하지 않고 영양제를 게을리한 자의 업보.

마취 주사? "참으세요~"라는 말과 함께 내려지는 징벌.

"아프면 손 드세요~" 라고하는 다정 목소리. 하지만 "죄값 치르세요!"라고 외치고있는 서늘한 눈빛. 으!


그렇지만, 치과 치료는 왠지 내 모든 죄악을 씻어주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속죄인가. 치료를 받고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인간이 된다.

Smile~^^

치아가 빛나며, 마음까지 새로워진 나.

새 인간으로 다시 출발한다.

그리고 계산대 앞,

"3만원입니다."

이건.. 금전적 보속이다. 나는 기꺼이 카드를 건넨다.

계산을 끝내면, 그렇게 속죄를 마치고, 난 또다시 깨끗한 한 인간이 되어 치과 문을 나선다.

....하지만, 이 평온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나약하므로 치과에 간다.

6개월 후, 나는 또다시 이곳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죄의 무게를 재는 왕좌에 앉게될 것이다.



나는 예전에 사랑니를 세 개나 뽑았다!

첫 번째, 두 번째 사랑니는 순순히 떠났다. 하지만 세 번째 녀석. 그는 달랐다.

잇몸 속에 누워 완전히 땅굴을 파고 숨어 있었다.

"많이 누워있네요." 의사가 말하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제 내 얼굴은 내 것이 아니다."


치과의사는 준비를 마쳤고, 나는 얼굴이 압착될 준비를 마쳤다. 의사는 도구를 들었고,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비웠다. 이것은 의사와 사랑니의 싸움.

나는 그저... 얼굴을 내어줄 뿐이다.

그리고 전투 개시.

의사는 내 턱을 잡고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느꼈다. 지금 내 얼굴은 반죽이 되고 있다. 턱이 이리저리 휘청이고, 압박이 올라갔다. 내 안면 근육은 혹독한 수련을 거쳤다.

세번째 사랑니는 생각보다 훨씬 강적이었다.

결국 펜치등장.


철컥!


무언가가 내 치아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리고...

↗︎↖︎↘︎↙︎↑↓↗︎↖︎↘︎↙︎↑↗︎


나는 마리오네트가 되었다...


어라, 지금 내 눈 위에 팔꿈치 올라온 것 같은데?

인간에게 할 행동이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 너무 힘들어하고 계신거같은데??

'이건 치료가 아니라, UFC다.'

나는 이미 매트 위에 깔린 패배자. 질기고 질긴 사랑니. 의사는 내 턱을 잡고, 전신을 실으며 마지막 테이크다운을 시도했다. 흐릿한 정신속에 실눈을 뜨고 조명 사이를 바라보았다.

이를 악무는 듯한 그.

- 눈빛 : '~~~누가 이기나 해보자.~~!!!!'


나는 눈을 감고 온몸의 힘을 빼며, 순순히 항복하기로 했다.

내가 패배를 인정할 준비를 하는 순간,


뚜두둑

.............

"됐어요~"


긴 싸움이 끝났다. 결연한 투사의 눈빛, 표정은 승자의 여유. 의사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쳤다. 마침내 내 눈에서도 눈물 찔끔 나왔다.

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힘들었던거야? 나는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혹시… 제 이빨 주시면 안돼요?"


치과 의사는 멈칫했다.

"…이거 가져가려고?"


"네...가지고 싶어서요"


의사의 어이없는 눈빛은 말하는 듯 했다.

"이 녀석, 지금 이걸 기념품으로 가져가겠다는 거야?" 그는 한숨을 쉬며 내 사랑니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것을 손에 쥐고

"고집쟁이 스티브"라고 이름 붙였다.


"스티브, 왜 이렇게까지 고집 부렸어? 너때문에 내가 반신불수가 됐잖아. 넌 사랑니면서, 왜 그렇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은거야.? 이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잖아!! 우리 평화롭게 헤어질 수 있었잖아!"


스티브를 품에 안고 결심했다.

"다음엔 양치도 열심히 하고, 치실도 잘 쓰고, 정기적으로 치과 가야지^^"

..... 인간의 나약함, 그 순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6개월 후, 나는 또다시 죄를 읊는 왕좌에 앉아 기도하고있겠지.

"제발, 가벼운 판결을 주소서...."하고.


-3월10일 thread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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