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나름 신념을 가지고 해왔던 봉사활동이 생각난다.
십대들에게 영어 수학을 가르치며 나름 신념을 다졌던 시간들.
나는 아이들과 잘 지낸다고 믿었고, 누구보다 열렬히 십대의 감성을 사랑하는 어른이었다.
'정신연령이 십대에 멈췄으니, 내 정신은 이들과 늘 동급'이라는 자기위안을 하며.
덕분에 주변 아주머니들에게 "우리 중딩 좀 만나서 돈까스 먹으며 상담(?) 좀 해달라"는 제안을 종종 받았다.
나는 아이들을 단독으로 만나, 기꺼이 그 아이들과 돈까스를 썰며 부모욕을 맞장구쳤다.
한때 부모의 지나친 관심을 피해 이불 속을 헤매던 사춘기가 나도 있었기에 그 심리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나를 좋아해줬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어느 화창한 토요일, 중1들과의 수업이 무사히 시작되었다고 믿는 찰나,
칠판에 평화로이 글자를 쓰다가 손을 툭툭 털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웬 중지가 공기중에 고고하게 떠 있었다.
교실 한가운데를 유영하고있는 아름다운 중지 하나.
마술쇼인줄 알았다. 스파크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것.
당황해서 자세히 쳐다보니 순식간에 그것이 홱 사라졌다. 아이들은 이미 폭소 직전, 숨을 참으며 안절부절 내 눈치를 살폈다. 범인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CHAN!잘지내냐!
유일하게 나를 탐탁지 않아하는,
어쩌면 가장 정직한 영혼이었다.
차분히 상황을 무마하려 했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CHAN은 곧이어 모든 종류의 중지를 꺼내 들었다.
왼손 중지.
오른손 중지.
더블 중지.
교차 중지.
360도 스핀 중지.
그야말로 중지쇼 컬렉션. 모든 화려한 중지를 꺼내들어 난사했다. 입꼬리를 올린 그의 반응 속도에 순간, 내 안에서 이상한 승부욕이 치솟았고, 잠자던 내안의 십대가 깨어났다.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으며
조용히 나도 양손 중지를 날렸다.
고요한 정적.
...0.3초
곧이어 아이들의 폭소가 천둥처럼 교실을 뒤흔들었다.
아이들은 "선생님 미쳤다!"를 외치며 책상을 두들기며 숨넘어가듯 웃어댔다.
CHAN은 아이들의 반응에 희열을 느끼며 무아지경으로 책상 위로 드러누웠다.
배영을 하듯 양손 중지를 우아하게 휘저으며
"Fuc-k you~ fu-ck you~!" 리드미컬한 노래를 부르기시작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생각했다.
'봉사활동와서 애랑 중지 배틀이라니., 으..내인생…' 하지만, 나중에 CHAN의 부모님을 만나면서 이유를 알게 됐다. 나를 좋아해주셨지만, "저는 촨을 절대 경쟁시키지 않아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어머니의 눈동자엔 불안이 아른아른.
단톡방에 "중1때 고1 수학의정석 수II까지 끝낸다더라"는 누군가의 폭탄 발언이 떨어지자, 극단적 긴장 속에 "아로마 테라피"까지 튀어나왔다. 정서 안정조차 힐링 테라피라는 경쟁속에서 갈망되는 세상이라니, 참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정서의 소유자들이여..부모의 불안은 끝없이 확대되어 아이에게 “이 학원도 갈래?”로 전달되는 듯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불안을 본능적으로 그대로 흡수한다. 그리고는 "싫어."라고 시크하게 대답한다. 그러니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압박과 통제, 불안한 세상에 대한 커다란저항을 중지(Fu*kU)에 싣는다.
CHAN의 중지. 그 중지의 진정한 의미는, 수업이아니라 세상을 향한 진심 어린 저항이었다.
어쩌면 반항이 아닌 구원요청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으휴.
그렇게 철학적으로 깨닳음을 얻고 감동에 젖은 나는 나의 양손 중지를 내려다보며 되물었다.
'그래도... 이걸 왜 애랑 맞불 놓냐?' 나는 애들의 세계에서 철저히 '지는 게임'을 하고 있었던거다.
하지만 이 중지 발사로 CHAN과의 벽이 허물어졌고, 동지애가 나를 연결해 줬던 것 같다.
아이들은 불안한 세상, 최소한 중지 한두 개쯤은 허공에 날릴 권리가 있다.
CHAN이 당당히 쏘아 올린 중지는 어른들이 강요하는 삶에 대한 반격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향한 작지만 당돌한 자유의 손가락, 양손중지. ㅗㅗ
-3월16일thread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