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을 한 번 봤더니, 내 뇌세포들이 모조리 “어어어?” 하면서 서로 부딪히고
넘어지고 아주 우당탕탕 아수라장이 돼버렸습니다.
처음엔 그저 “누가 솔로인지 알아보는 평범한 연애 관찰 예능이겠지?” 싶었는데, 웬걸.
"엥, 이게 뭐죠? 제가 왜 이 꼴을 봐야 하죠?! 누가 시켰어요, 이거?!"
TV에서 초고화질 1080p로 재생되는 건, "보세요, 이게 사람입니다,카캬캬컄”라고 외치는
미디어의 '잔혹쇼'그 자체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민망한 영혼의 스트립쇼를 왜 즐길까요.
얼마 전, 주말에 본가에 들렀을 때,
소파에 나란히 내 어머니, 내 언니—너무도 사랑하는 두 여인이, 앉아서 그 ‘나는 솔로’를 보고 계시더라고요.
근데 볼륨이 너무 크더군요.
엄마가 저 보더니, 아주 귀엽고 익살맞은 미소를 띠며
“이거 재밌는데~ 같이 보지 그래~^^?” 하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셨어요. 으어어어.
그래서
제가 정색하면서 말했죠.
“그거 너무 낯 뜨거워서 못 보겠어요. 그 남사스러운 걸 어떻게 그렇게 태연히 보시는 거예요?
볼륨 좀 낮춰주시면 안 될까요? 그 방송을 보면, 누가 제 바지를 훅! 벗긴 채로 전 국민 앞에 저를 세워놓는 기분이에요."
하지만 엄마는 “뭘 그렇게 오바해~ 재밌기만 하구만~ 케케” 하시면서 팔짱 끼시고는 태평양보다도 더 넓은 마인드로 그걸 평온하게 보시는 거예요. 으으어... 엄마 쎄다...
전 그 방송을 딱 한번 보고, 제 감정의 피부가 한 꺼풀씩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TV에서는 친절하게 너무 고화질로 '타인의 서투름'을 송출되고, 그 앞의 두 시청자는 그걸 아주 평화롭게 감상 중이셨답니다.
저는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았는데요? 밤이라 일찍 자려고 하는데 방 문을 닫아도 나는 쏠로의 소음이
방을 뚫고 기어 들어오더라고요. 이상한 목소리들이 고막을 가차없이 찌르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화면 속 사람들,
저보다 훨씬 괜찮은 인생 사는 멋진 분들일 텐데—방송 편집진이 그걸 아주 교묘하게 어설픔이 수십 배 증폭시키는 ‘코미디’로 치환하는 재주가 있더군요.
방송은 그걸 ‘무력화된 서사’로 압축 편집하고, 시청자는 그걸 HD고화질로 소비하고,
저도 그 소비의 일부가 되어버렸던거죠. 한마디로 그 방송.. “너무 아찔합니다.”
어설픈 멘트, 민망한 버벅임, 동공지진, 진땀 나는 제스처 — 친절하게도 고품질 화면으로 제 눈앞에 슝슝 날아들어오는데, 저도 모르게 자꾸 “으아악!!! 제발 멈춰!! 으아아!!"라고 속으로 비명을 지르게 되던거죠.
왜냐고요? 제가 다 부끄럽고 창피해서요...
제 심리적 바지가 훅, 내려가는 기분이 들거든요.
뜨어엉! 누가 내 정신적인 바지 좀 잡아줘요.....!! 훌러덩훌러덩!
그걸 보며 누리는 이상한 쾌감이 제 자존감을 좀 먹어요.
저는 결심했습니다^_^.
“나는 솔로? 안녕~ 아니, 안녕도 하지 말자. 그냥 꺼져!!!” 하고요.
한 번 본 뒤로, 그걸 영영 피하기로 했지요.
'사람의 어설픔을 보고 낄낄 비웃는 건요, 나 자신을 묶어놓는 족쇄가 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민망하고, 죄책감도 들고, 남사스럽고,
저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못 해주는 더러운 기분.
미안함과 창피함이 온몸을 휘감고, 맨몸으로 광장 한가운데에 던져진 느낌이었어요. 으헝헝헝..
특히 남성 출연자분들.. 카메라가 너무.. 너무 무례하단 말이에요!!!
카메라는 너무 정직했고, 그래서 너무 잔인했습죠.
분명 다들 사회적으로 괜찮은 지위에, 은근 ‘순수한 매력’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편집이란 게 뭔지… 기묘한 조작과 함께 빵!터지는 찰나의 조준,
어째 “이건 진짜 막장 코미디인가?” 싶을 만큼 ‘알 수 없는 개그 장르’더라고요.
그런 화면을 보면서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괴롭고,
계속 어디엔가 “으휴~ 제가 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하고 고개숙여 사과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내가 뭔가 대신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부끄러움이... (이거 보셨나요? 이 민망한 광경을 목격한 이상, 당신은 제 수치심에 연대 책임이 있어요! 제발 저 좀 구해줘요, 같이 책임져주세요...으어억!)
저는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그 어설픔의 파편을 감당할 만큼 강한 '감정 근육'이 없었나봐요.
어설프다 못해 처참한 멘트, 돌연변이처럼 등장한 세기말 감성 패션 테러, 자아를 잃고 우왕좌왕 방황하는 동공과 표정들까지—모두 제 정신적 피부를 찢고 들어와 마구 헤집으며 절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핀트에 어긋한 행동을 할 때, 저는 화면 밖의 시청자란 게 고통스러웠습죠.
무력하고 '과잉된 보호욕'이 슬며시 그러나 폭력적으로 올라오면서요.
저는 사실 그걸 '보는 나 자신'이 싫었어요.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보면 내가 어느새 '질 나쁜 인간'이 되어있더라고요.
화면 속 누군가가 긴장한 얼굴로 요상한 멘트를 날리면,
순간 저는 ‘으아아아..!!!’ 하면서 고개를 돌리면서 시선을 피하면서도,
화면 속 사람을 해체하고 재단하고 있었어요.
"헐... 저래서 연애를 못 하지..."
"으악, 선 넘었지 저건..."
"으, 패션 뭐야..옷을 왜 저렇게 입었담....?"
"나였으면 안 저랬을 텐데..."
이러면서요..
아, 내가 지금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고 있구나.?
그리고 그게 너무 끔찍했다구요. 정말로 자존감이 아니라, 제 존엄과 품격이 줄어드는 기분이었어요.
누군가의 버벅거림을 보며 스스로를 더 나은 인간이라고 느끼는 그 찰나의 감각이
제정신을 얼마나 오염시키는지를 똑똑히 체감했습죠.
“어우, 나 자신... 진짜 싫다.”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내 안에 있던 ‘격 떨어지는 시선’이 번쩍! 하고 튀어나오는 걸 본 거죠..
타인을 해체하면서..
그때부터 제 자존감이 스르르 줄고, 나는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점점 누군가를 ‘판단하는’데 능숙한 인간이 되고 있다는 걸 너무 깊이 느껴버렸습니다.
누군가의 어설픔을 보며 “그래도 나는 낫지~” 하고 상대적으로 내가 괜찮다고 느끼는 은근한 쾌감과 그런 태도로 제 자존감을 메우지 않고 싶어요. 그건 인간 전체에 대한 제 품격있는 태도를 훼손하는 것이지요. 보편적 인간 존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저의 품격을 보호하길 선택했어요!
저는 인간을 그렇게 '소비'하고 싶지 않그든요.
그런 류의 연애프로그램들? 그건 정말 인간에 대한 왜곡이라고 생각해요.
정해진 편집 방식에 맞춰, 사람을 '서툴고 이상한 캐릭터'로 전락시켜 버리잖아요.
자기 폭로인 양 리얼리티로, 그만큼 사람을 발가벗기고 까발리는 게 어딨나요. 괴상한 음악과 자막으로 아아주 코미디쇼로 편집해서요. 으악~! 내 눈! 내 마음! 돌려줘!내놔! 뜨앗! 봐버렸어...!!!
어설프고, 찌질하고, 버벅대는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에요.
그걸 왜 박제하고, 웃기다고 하고, 소비할까요..허허허.
‘있는 그대로'의 날것.
그 모습을 비정상적 존재로 가공하고, 진심은 찢기고, 남는 건 짤방과 밈뿐이었죠.
서툴게 말하고,
뚝딱거리며 고백하고,
도망치듯 회피하는 장면들을 “웃긴 장면”이 아니라 “지켜주고 싶은 장면”으로 보고 싶어요.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이걸 보는 시청자들 스스로의 존엄에 금을 내는 셈인걸요.
나중에 그 화면 속 모습처럼 살고있는 나를 마주하게 될까 봐, 저는 무서워요!! 으허허흐야흐으헉!!!
그게 현실이 될 수도 있잖아요?
날 것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서툰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순수한 것들일 테죠.
방송에서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 ‘특이한 결함’='애처로운 존재'라는 공식으로
축소하는 아주 고약한 재주가 있어요.
결혼한 사람들이 ‘나는 솔로’를 그렇게 열심히 본다더군요? 이미 소중한 임자가 있고, 잃을 것도 없으니,
남들이 어설프게 사랑을 찾아 헤매는 걸 지켜보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한 수 배우는 셈일까요.^^
그런데 저는, 그 프로그램 화면만 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책감과 찝찝함이 미끄덩하게 기어오릅니다. 단지 구경꾼으로 머무르기엔, 그 안에 너무 많은 민낯과 날것이 있어서요.
그래서,
저는 결심했어요!
‘나는 솔로’, ‘환승연애’, ‘짝’— 그런 류의 프로는 제 인생에 절대 들이지 않기로요!!
요즘 저만의 ‘존엄’ 기준이 생겼습니다.^0^
그런 방송을 보다 보면요. 이상하게도, 제안에 '괜찮다고 믿어온 결'이 부식되는 소리가 들려요.
질감이 흐려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제가 저 자신을 소비하는 기분.
저렴한 자극에 노출된 저의 시야와 감정이, 물에 뜬 기름막처럼 미끄덩 미끄덩하게 번져가요.
그러고는 말하겠죠.
"아, 지금 내 존엄 이렇게 아주 우아하게 망가지고 있구나.. 스스로를 얼마나 싸게 팔아넘기고 있었는지, 나는 우아한 척 감상하고 있었구나.."
누구는 예민하다할지 몰라요. 하지만, 전 알아요!
예민함이야말로 인간의 품격과 우아함을 지켜주는 고귀한 센스라는 걸.
사실.. 이런 예능의 원료가 너무 저질이에요. 그건 포맷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왜곡이자, 존엄의 철저한 '격하'이기 때문입죠.
‘인간’을 발가벗기고, 그 존엄을 시청자 각자의 협소한 프레임 안에 욱여넣은 뒤,
해부하듯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저는 그게 서로에게 아주 나쁜 관행을 습관처럼 주입하는, 일종의 사회적 작태라고 생각하거든요^0^
누군가의 어설픈 감정이 그대로 노출되고, 그 민낯 위에 웃음이 덧칠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으흐흐흐.
아니, 그건 제 몫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 기류에 섞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해한 듯 흐르는 잔인함엔,
웃지 않기로요.
그거 아세요? 타인의 어설픔은 곧 '내 얼굴'이기도 하다는 거요.
사실 나쏠에서 조롱당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라는 사실..
누군가를 보며 재단하고 웃는 그 장면 속에, 항상 ‘언젠가의 나’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아요.
모든 인간은 버벅이고, 깨고, 말이 꼬이고, 뻘짓하고, 제스춰가 엉킵니다. 안그런 척 할뿐이죠.
그때 누군가가 날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면— 나는 평생, 그 순간을 잊지 못할거라서요.><
타인의 어설픔을 묘한 쾌감으로 들여다보면... 그 어설픔이 저에게도 쓱- 다가오는 법.
감옥에 갇힌다고 하죠.
패놉티콘의 감시자가 되어 자신이 언제든 같은 어설픔으로 감시당하는 죄수가 될 수 있어
불안에 떨고 사는 꼴이죠.
그래서 전...
이제 누구의 어설픔에도 판단과 웃음을 가하지 않기로 했어요.
니체가 오늘날 살았더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타인의 어설픔을 들여다보며 비웃는 자, 곧 자신이 그 어설픔이 된다."
그런 거 보고 웃는 사람 근처엔 저도 있고 싶지 않어요. 으어어어어. 상상하기도 싫네요.
그래서 언니랑 엄마랑도, 그다음날 철저히 저는 선긋기를 하며 상종 안 했어요. ----☆
누군가의 '있는 그대로'가 왜 상품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설픈 진심이 낱낱이 드러나는 장면이 왜 '꿀잼'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보는 내가 왠지 나쁜 사람 같고,
나 자신도 모순에 빠지게 만들거든요.
이렇게 나쏠 방송의 윤리를 신나게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이거 그냥 제가 '윤리적 고급형 인간'처럼 보이고 싶어서 헛기침 몇 번 하고 있는 건가 싶거든요. 어차피 이 방송은 누군가를 빡치게 하거나 눈살 찌푸리게 하는 게 주특기거든요. 방송 자체가 문제인 건지, 아니면 제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은밀한 '혐오 본능'이 은근히 튀어나온 건지, 둘 다 섞여서 그냥 난장판인 거죠.
허허허.이제 그만해야겠어요. 비판할수록 더 깊이 연루되니까요.
이 정도 자각이라도 하니, 이게 저 나름의 '소심한 반항' 정도는 되는것 같다라고 정신승리해봅니다.
인간성이 절단난 듯한 편집된 웃음 속에 누군가의 진심이 찢겨나가는 걸 보고
'재밌다'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그거 미래에 당신일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겨요...
그 어설픔, 긴장, 망설이고 버벅대는 모습—그 모든 게 소중한 인간의 조각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진심은 콘텐츠가 아니에요.
그걸 짤방으로 만들지 말아요. 그건, 진심에 대한 예의가 아니에요.
인간의 어설픔(세련되지 못한 모습)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의 흔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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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해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존엄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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