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운 기차의 종착지

기차가 누워버렸다, 꿈을 잃은 누운기차의 최후

by La Verna

기차는 달리고 있었다.
10년짜리 선로 위였다.

바퀴가 철길을 두드리며 경쾌하게 내달렸다.
규칙적으로 철길을 두드렸고, 차창 너머 풍경은 속도를 따라 길게 늘어졌다.

다른 기차들도 보였다.
다들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떤 건 더 빨랐고, 어떤 건 느렸지만, 모두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앞만 보며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선로가 이상했다.

조금 흔들렸다.
기차는 중심을 잃었다.
바퀴가 선로를 붙잡으려 했지만, 어딘가 끊어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기울었다.

강풍이 기차를 치고 갔다.

균형을 잃었다.

...기차는 넘어진다.

천천히, 하지만 돌이킬 수 없이.

쇠붙이가 거칠게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철길이 보이지 않는다.
철길 대신 낯선 땅이 있다.
바퀴가 공중을 향해 들렸다.

선로 밖이다.

그렇게 멈췄다.

선로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기차들이 지나간다.
기차는 누운 채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아무도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선로는 그런 곳이다.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다들 선로를 따라가고, 넘어지면 끝이다.


비가 내렸다.
창문을 적셨다.
가늘고 투명한 실들이 유리를 타고 미끄러졌다.
그러다 이내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세차게 부딪히고, 부서지고, 마구 엉키고, 고이고 흩어지다가
길을 잃은 듯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차가운 빗방울이 끝없이 떨어졌다.
기차는 그저 누워, 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바라보았다.

눈이 내렸다.
눈은 소리 없이 내려와 철판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져 기차를 눌렀다.
수북히 쌓였다.

차창 위로 얼음꽃이 피어났다.
모든 게 얼었다.
기차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시간은 지나갔다.


3년...
5년......
10년.......



기차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바퀴는 녹슬고, 차체에는 이끼가 끼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물었다.


“저 기차는 왜 저기 누워 있는 거야?”
“넘어진 거야.”
“다시 못 일어나?”
“못 일어나.”

누군가는 손가락으로 녹슨 철을 긁었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기차1.jpg



기차는 말이 없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오래전에 알았다. 나는 방치되었다.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대로.


기차는 여전히 그곳에, 누운 채로 존재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차체에는 이끼가 덮이고, 금이 간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고났다.

사이사이로 잡초가 자랐다. 흙냄새가 나는 금속덩어리가 되었다.

어떤 잡초는 차체를 감싸 안으며 얽히고 설켜 있었다. 철판은 녹이 슨 채로 바스러졌다.

틈새로 벌레들이 기어 나왔다.

기차는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알았다.

'나는 선로 위에서만 달릴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나의 종착지는

이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10년. 영원할 것처럼,

누운 채로 그곳에 남아있다.











“끼이이익—!”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가 다가왔다.





기차는 희미하게 남은 감각을 동원해 귀를 기울였다.
바람 소리, 녹슨 철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야, 이거 아직도 여기 있네?”

목소리였다.


기차가 심장이 있었다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을 것이다.
아무도 오지 않던 이곳에, 드디어, 누군가가 나타났다!

기차는 기대했다.
내가 기적적으로 복구될까?
다시 선로 위로 올려지게 되는 건가?
드라마틱하게, 드디어 구조되는 걸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어우, 이거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데?”
“야, 우리 이걸로 피자화덕 만들자.”

...뭐라고?

기차는 순간 꿈틀거리며 바퀴라도 돌리고 싶었지만, 이미 녹이 슬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일단 저 앞쪽 엔진실 쪽을 톱으로 잘라서 오븐처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와, 미친..ㅋㅋㅋㅋ 그러면 진짜 빈티지 느낌 쩔겠다. 감성 오지는데?”


“그치? 그리고 여기 창문 있는 부분 있잖아? 이거는 바 테이블로 개조하면 장난 아니겠다.”


“야, 맞아. 여기 의자도 다 뜯어내고 크래프트 맥주 기계 넣으면 아주 감성 터지겠어.”


“ㅋㅋㅋㅋ 기차에서 피자 구워 먹는 거 상상해 봐ㅋㅋㅋㅋ”




기차는 경악했다.

'나는 철마다 달리는 존재다.
내가! 화덕이라니!'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기차는 바퀴도 녹슬었고, 창문도 금이 가 있었으며,
내부는 온갖 잡초로 덮여 있었다.


“이야~ 이거 완전 감성인테리어 그 자체잖아?”


“야 근데 이거 어떻게 옮기냐?”


“몰라. 어차피 누워 있잖아. 그냥 여기서 바로 개조하자.”

“야ㅋㅋㅋ 그러면 기차에 타는 게 아니라 기차에서 먹는 거네ㅋㅋㅋㅋ”

“ㅋㅋㅋ ‘누운 기차 피자’ 어때, 가게 이름?”

“아 ㅋㅋㅋㅋ 미쳤다ㅋㅋㅋ ‘누운 기차 화덕피자’ 좋다!”




기차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철판을 긁고, 길가에 있던 돌을 주워다 쌓고,
기차의 과거와는 1도 관련 없는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철판 화덕 완성 !! ------------

기차는 눈을 감고 싶었지만,
창문도 부서져서 그럴 수도 없었다.
그날부터 기차는 피자를 굽기 시작했다.





10년 후...................




* SNS에서 터지는 감성핫플!

:Train: :Pizza:〈누운 기차 화덕피자〉:Pizza: :Train:


"헐 여기 진짜 그 기차였던 곳 맞음??"

"분위기 대박… 기차 위에서 먹는 갬성 완전 대박임!"

"피자 진짜 미쳤다!! 화덕에 구워서 그런가 존맛탱!!"

"사장님이 옛날에 여기 버려진 기차였다고 설명해줌ㅋㅋ"

"가끔 기차 세워놓을때 사진찍으면 역대급감성

인스타샷 건질 수 있음ㅋㅋ"

"기차야 고마워! 덕분에 인생샷 건짐!"

기차2.jpg

그리고 기차는 드디어 깨달았다.
비록 선로를 따라 달려가지는 못했지만...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피자 화덕이 되었다는 것을.

기차는 눈물을 흘릴 수 없었지만,
치즈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며

나름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굽는다.”


— THE END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러닝'아니고 감정청소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