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을 할 때면,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ㅡ.
딱히 어떤 페이스를 목표로 하지도, 마라톤을 위한 것도 아니다.
평이하게 발에 시동을 걸고, 숨을 들이마신다. 있는 힘껏 뛰자고 생각하고 달리기 시작하면
더이상 나는 ‘뛰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뛰게 된 무언가’가 된다.
속도를 올린다. 땅이 빠르게 지나간다. 바닥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밟았던 자리들은 순식간에 뒤로 던져진다. 바람은 얼굴을 때리고, 나는 더 빠르게 내달린다. 강풍이 가로막으면 가를 뿐이다. 주변 사람들이 흐릿해진다. 익숙한 얼굴들이 형체만 남기고, 희미하게 전속으로 지나간다. 같은 속도로 살던 이들이, 형체만 보인다.
'힘듦의 구간'이 찾아온다. 전력질주.
있는 힘껏 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이 무언가를 알리기 시작한다. 안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온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뛰쳐나온다. 머리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것들. 하루에 밀려 미뤄두었던 것들. 언젠가 풀어야 했던 말들. 가슴 깊숙히 꾹꾹 눌려 있던 것들.
장막이 걷히고 모든 게 쏟아져 나온다.
"이때다!"
그간 쌓였던 것들이 마구 쏟아진다. 하고 싶었던 말들, 속에 쑤셔 넣고 있던 감정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인내했던 것들, 모른 척했던 것들이 터져 나온다.그리고 모든 게 폭발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진다.멈출 수가 없다. 멈출 이유도 없다. 내달릴 때는 몸이 알려주는 것 같다. 뛰면서 토해내라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 거야?'
달리는 동안, 나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억울했던 것, 화가 났던 것, 서러웠던 것, 미뤄뒀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있는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뛴다고 감정이 해결되는 게 아닐 텐데도, 뛰다 보면 어느새 해결된다. 흔적이 없다. 감정들은 땀과 함께 흘러내려 사라지고,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그저, 원래 그래야 했던 상태로 돌아온 회복된 인간일 뿐이다. 눈물과 가빠른 호흡이 뒤섞여 내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를 상태로 내달리다 보면,
어느새 감정들이 다 바닥에 떨어져 있다. 나는 달리면서 울고, 달리면서 비워낸다. 그래서 혼자 뛰는 걸 즐긴다. 러닝하다가 눈물콧물 범벅이 된 꼴을 누군가에게 보이기 창피하다.이게 '러너스 하이'인가?
나는 러너스 하이를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
마라톤도 나가봤지만 아직이다. 그냥 나의 묵은 감정을 달리는 걸로 승화시키고 있다. 러너스 하이는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든다던데, 나는 황홀하기보다 뛰면서 깊숙한 곳의 응어리를 어디론가 던져버리고 무언가를 크게 치른다. 그리고 다시 멀쩡해진다.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남아야 할 것만 남기고, 쓸데없는 건 다 흘려보내기 위해 계속 뛴다. 내 안의 것들은 다 바닥에 뿌려지고, 나는 새것이 된다.나는 뛸 수 있다. 다리가 있다. 다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쓸 수 있다'. 숨이 차서 쓰러질 때까지, 감정을 토해낼 때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새삼스럽게 소중하다.
가끔은 다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고는 멈춰 서,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도 감사하다.
나의 다리는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뜻으로, 혹은 어딘가에서 허락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잠시 빌려서(?) 쓰고 일지도. 그래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기꺼이 허락할 것이다.
언제든 다리를 잃게 될 수도 있고,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수도 있다.
내 다리를 거두어 가신다면, 그때는 또 새로운 다리가 되어야 할 무언가를 내가 찾아낼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달린다. 내 몸이 기억하는 한, 내 감정이 흘러가는 한, 나는 다리로 모든 것을 토해내고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그리고 다시 나는 멀쩡해진다.
-3월 thread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