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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더라도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by La Verna

가끔 인생이란, 단단히 쥔 주먹처럼 야무지고 옹골차게 다가온다. 살다 보면 그 주먹이 예고 없이, 때로는 무자비하게 뒤통수를 가격하는 듯한 순간이 있다. 어떤 날은 그냥 '툭!'하고 가볍게 치고 가는 정도라 '어라? 별거 아니네' 싶다가도, 어떤 날은 장장 삼십몇년간 역량을 갈고닦아 날린 완벽한 각도로, 정확한 타이밍에, 정말 죽을 힘을 다해 후려친다.

한대 맞으면 "으아~내가 정말 부처가 되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세상이 그토록 혹독해 보인다.

인간이란 본래 "정기적인 충격파를 통해서만 제대로 작동하는 존재"인지라, 일정 주기마다 정신이 아작나는 사건을 겪으며, 이상한 방식으로 성장한다. 심장이 탈골될 정도로 놀라거나, 정신이 분자단위로 부서지는 일도 있고, 그냥 "이건 정말 굳이 살면서 겪을 필요 없지 않나?" 싶은 일도 있다. 그런데도 계속 살아간다. 뭐하러 이렇게까지...? 몸은 부서지고, 멘탈은 부스러기인데, 인간은 신기하게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음 날 출근하고, 밥먹고, 심지어 우스갯소리를 한다.

나는 인간을 세상이 가지고 노는 도자기잔이라 생각한다. 던지고 놀다가 떨어뜨리고 어느새 다시 주워온다. 새하얗고 견고해 보이지만, 떨어지면 금이 가고, ‘패인’ 부분이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충격이 밀려와 균열이 쌓여 깨지기직전까지 가다 결국 쨍그랑 깨져버린다. 보통 잔이 깨지면 버려야 하지만, 깨진 인간 조각은 다시 모아 독창적이고 기괴한 모양으로 이어 붙인…다?가 아니라, 대부분 그저 깨진 채로 살아간다. 조각난 걸 주워서 붙여볼까 하다가도 귀찮아서 "그냥 이렇게 살지, 뭐"라는 체념과 수용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서, 애써 붙여놓으면 또다시 와장창 깨진다. '복원'이 아닌 '망가진 상태의 체화'를 경험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부서진 채로 살아가는게 더 익숙해졌다. 다만, 그 과정에서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무언가가 되어가는 건 맞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긴 게 정상인가?’싶은 이상한 형태지만, 나중엔 오히려 개성이 된다. 애초에 완벽한 원형따위 없으니, 드러난 허점들은 그저 우리의 진짜 모습일 뿐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는 운명체이다.

'존재의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의 독창성'을 매일 기념하는 조용한 축제 같은 것이 인생(人生)이다. 그러니 오늘도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깨지고, 또 붙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거울을 보며 내 모습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와,, 나 진짜 예술이네?” 고흐의 걸작, 르네상스의 정교한 조각상이 아니라, 술취한 자가 만든 도자기 작품같은 게 문제겠지만, 완벽한 형태란 애초에 없었으니, 이렇게 망가진 채로, 기괴하지만 독창적 존재로, 살아간다.

어차피 난해한 예술일수록 비싸다.


나는 어제도 그제도 "망가진 채로도 의연하게 살아남는 법"을 6가지 정도 연마했다. 물론, ‘우아한 몰락’ 같은 건 없다. 몰락은 몰락일 뿐이다. 그래도 부서질 거면 기품있는 부서짐과 함께, 멘탈이 모래처럼 쓸려내려가는 중에도 최소한 대칭적으로 곡선미를 살려 우아하게 흩어져야한다.


① 미(美)적 체념

어떤 일이 터진 순간, 일단 가만히 있어 본다. "이걸 해결해야 해!"하고 움직이는 순간, 내가 먼저 가루가 될 수도 있다. 인생은 때때로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와 함께 내가 예술작품처럼 품격있게 박제되어 남아야 하는 순간이있다. 그러기에 나는 흔쾌히 인생이 날린 주먹 앞에 낭만적 포즈를 잡아본다.예컨대, 내 인생이 바다 한가운데서 성대하게 침몰 중이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구명조끼를 찾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그러나 나는 그 한가운데서 "음, 내가 가라앉는 모습이 이토록 고귀하다니. 늠름한 한 시대의 폐막이라… 진정한 비극미(悲劇美) 아니겠는가. 휘청이지도, 비명 지르지도 않으리니. 이것은 침몰이 아니라, 장엄한 퇴장이다." 하며 차분하게 차 한잔을 들고 서있다.

"왜 도망치지 않아요?"


"아.. 도망쳐도^^ 어차피 바다입니다.

그래서 그냥… 감상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적 체념'의 본질이다. 지금 즉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 문제와 함께 분쇄될 수 있다.


② 의미 없는 위로

"괜찮아!"라는 말이 현실을 바꿔주지 않고, 사회적으로 남용되고 있으며, 기계적인 반응에 가깝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래.. 안 괜찮긴 한데, 그래도 완전 끝장난 건 아니다."싶은 사무치는 울림이있다. 진짜 끝장난 사람에게 아무도 ‘괜찮아’라고 하지 않는다.

내 집이 눈앞에서 장엄하게 불타고 있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괜찮아^_^;;"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회적 예술이다.

실제로 끝장났더라도, 듣는 동안은 아직 내면적 엔딩이 오지 않았다. 그 효과의 지속성은 짧고, 부작용으로 "뭐가 괜찮다는 거야?"라는 절규와 함께 철학적 혼란이 동반될 수 있지만, 비장한 침묵과 함께 때때로 유일한 생존장치가 되기도 한다.


③ 웃을 수 있는 능력

인생이 내게 정성스럽게 주먹을 날릴 때, 나는 선택해야 한다.


1) 비통해하며 자기연민속에 무너질 것인가.

2)"이거.. 좀 심하게 쎈데?" 하고 미소로 응수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후자다. 인생은 때때로 너무도 정교한 타이밍에 비극을 선물하는법.

얼마전, 갓 개봉한 나의 MSI노트북 위로, 커피 가득 찬 텀블러가 장엄하게 기울었다. LED 키보드는 운명의 끝을 고하며 마지막 축배를 들고, 이내 종말의 깜박임과 함께 장엄한 정적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키보드의 고요한 죽음. 찰나의 침묵. 그리고 마침내, 나는 미소를 머금고 속삭인다.

'아하하~^^;;'이 순간에도 웃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나는 비극 속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웃지 못한다면? 나의 품격은 추락한다.

•품격있게 웃는다? 키보드는 죽었지만, 나의 체통은 더욱 기깔나게 상승한다.

속으로는 온갖 욕을 하면서도, 입술끝을 살짝 올려본다. 이 미소는, 비극속에서도 나를 무너지지않게 하는 최후의 왕관이다.


④ 타이밍 맞춘 전략적 도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사라지는 자가 살아남는다.회사에서 정치적 대화가 점화되는 순간,나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깊이있는 기침을 한 번 내뱉는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우아하게,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잠시 후, 나는 화장실 거울앞에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씻는다. 그사이 누군가는 논쟁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나는 ‘우아한 후퇴’를, 그는 '의인'이 된다. 이것은 비겁한 도망이 아니다. 이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기술’이며, 역사는 이런 자들을 ‘생존자’라 부른다. ...그리고 대화가 끝날 무렵, 다시 기품있게 등장한다.


⑤ 기가 막힌 한 끼

나는 깨달았다. 철학적 고민과 위대한 결론 사이에는 언제나 하나의 법칙이 존재한다."일단 먹고 생각하자."지금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어도, 한 그릇의 뜨거운 국물은 찢어진 멘탈을 봉합한다. 황폐해진 정신도 국물 한 모금 앞에서는 잠시 숨을 고른다. 나는 묵묵히 숟가락을 뜨고, 사라져 국밥을 내려다보며 속삭인다.

"이 국물의 깊은 풍미를 마지막으로 추억해야겠다."

폐허 속에서 먹는 이 한 끼... 참으로 기가 막히다.

시련은 끝나지 않는다.

출근길 도로는 오늘따라 가관이다. 차는 밀리고, 지각은 확정되었으며, 상사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든다.


"이따 저 좀 봐요."


"……아, 이제 내 운명도 끝이로구나."


나는 깊은 통탄과 함께 천천히 창밖을 바라본다. 그렇다면..오늘 내 마지막 만찬은 아메리카노로 한다.

장엄한 표정으로 커피를 들이킨다. 쓰디쓴 액체가 목을 타고 흐를 때, 나는 이 비극적 운명 앞에서 품위를 잃지않기위해,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나는 늘, 최후의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숙명을 향해 나아간다.


⑥ 인간이 주는 미세한 온기

진짜 고통스러울 때, 사람을 살리는 건 위대한 조언도, 감동적 격려도 아니다.

그냥 옆에서 "야, 너 망했냐? 나도 망했다ㅋㅋ" 하고 같이 한숨 쉬어줄 누군가다.

"다 잘될 거야." 같은 형식적인 말보다는, 그 순간 진짜 필요한 건 오히려 이런 것이다.


"오늘 술이나 한잔할래?"

"와인어때?"

"\\(현금)$$ 이거부터 받아"

"등이나 두드려줄까?"


술을 마셔본 적 없지만, 사이다를 소주잔에 따라 같이 짠하며 그자리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참담한 운명은 잠시 유예된다. 가벼운 취기가 오를때쯤, 한숨과 웃음이 뒤섞이고, 조금은 나른한 분위기 속에 농담과 진담 사이의 애매한 말들이 흘러나온다.

"오늘 너.. 좀 괜찮아 보인다."

"그래? 사실 너도…" 눈이 마주친다. 술기운 때문인지, 서로의 눈빛이 살짝 촉촉해 보인다. 느려진 대화, 낮아진 목소리. 평소보다 조금 더 가까운 거리.

잔을 들고 있던 손끝이 스칠 듯 말 듯 머뭇거릴 때, 그 순간, 머릿속이 살짝 하얘지며

'…어? 이거 뭐지?'

"야, 너 사실 좀…"

"응....?"

묘하게 뜸을 들이며 이어지는 말. 대화속에 알 수 없는 긴장이 감돈다. 이 분위기, 어쩌면...혹시..?

야! 꿈깨!둘 다 여자잖아! 으!손사래를 치며 술잔을 부딪친다. "으-, 여자끼리! 이런 건 꿈에서나 하자!" 환상의 조각은 바스라지고, 소주잔은 더욱 현실로 돌아온다.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운명도, 비극도, 피할 수 없다면 일단 술 한잔 먼저.

그러나 인간이란! 이렇게 달아오르다가도 갑자기 온기를 빼앗아 가는 능력이 있다.

"근데 이건 니가 잘못했네!" 온기는 순간 차갑게 식어버리고, 눈앞에 있던 소주잔이 단두대로 변해버린다.

한순간에 분위기는 ‘내적 친밀감 OFF/ 거리두기ON!' 그러니 온기는 적당히, 너무 깊이 기대지 않되, 적절한 타이밍에 한 모금씩 따뜻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 같다. 온기는 순간이고, 현실은 영원하다. 마시는 동안만 따뜻하면 된다. 이렇게 적당히 체념하고, 의미없는 위로라도 받고, 가끔은 헛헛한 웃음을 터뜨리며, 타이밍 좋게 사라져 맛있는 걸 먹고, 인간이 주는 온기를 흡수하다 보면..이상하게도, 또 하루가 지나간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살아진다. 이것은 품격있는 생존이다. 아니면, 아주 고급스럽게 망가지는 방법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내일도, "망가진 채로도 의연하게 살아남는 법" 여섯 가지를 연마할 것이다.

멘탈이 부서져도 대칭미를 유지하며, 추락하더라도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무너져도 최소한 '예술이다'라는 감탄을 자아내도록.

이왕 망가질 거라면, 비싸 보이게 망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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