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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다,착하다는 말은 '습기'와 같다

by La Verna

창문을 열면 늘 무언가가 슬그머니 들어온다. 빛처럼 쨍하지도 않고, 바람처럼 경쾌하지도 않다. 신비롭게도 물렁물렁하고 애매하게 물컹하고 능청스러운, —이름하여 습기.

남몰래 스며들어와서는,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익살스러운 친화력으로 "나 또 왔지롱~?" 하며 슬쩍 눕는다. 초대받은 적도 없으면서, 그런 내색 하나 없이, 무심한 척 제자리를 잡는다. 그 사회성에 감탄하며 나는 곧 제습기를 꺼낸다.


도대체 이 습기는 어디서 오는 거지? 어디 물기 하나 없는 바스락거리는 건조한 기운 속에서도 제 존재감을 슬쩍 끼얹고 간다. 미세하게 열린 창, 살짝 벌어진 문틈 사이로 능청스럽게.

창문을 조금 열면

“나 또 불렀어?” 하고선 낯도장을 찍고 간다. 습기는 모든 틈이란 틈은 온통 뒤지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침투한다. 특히 곡선이 흐르는 문틈, 창문 사이사이를, 구석까지 들어간다.

"어머, 날 위해 환기해주다니? 스윽~ 들어가볼까?"

문틈만큼만 들어오면 좋으련만, 안쪽까지 스며든다. 기름인지 습기인지 구분되지도 않게 침투해 한 방울이면 될 걸, 기어이 이불에, 벽지에, 공기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이들은 공기를 변형시킨다. 나름 산뜻하게 유지해온 평화, 고요하고 바짝 마른 공기를 눅눅한 소음으로 바꾸고, 마른 기분은 갓 빨랫감을 건져 올리듯한 축축한 공기로 바꿔 방 안에 뚝뚝—떨어뜨린다. 빛을 들이고 바삭하게 말려내고자 했던 곳에 고약한 습기가 침투할 때 나는 당혹스럽다. 사람이 한 번 머물다 간 체온 위에 재빨리 끈적한 습기를 덧입힌다. 그 축축함은 여운인가 미련인가.


반쯤 증발된 감정 같은 걸 떨구지 마라. 그 미지근한 '묵은기'는 사양한다. 나는 그것을 ’불쾌‘라고 부른다.


처음엔 잘 몰랐다. 이게 촉촉함인가 눅눅함인가. 끈적함인가 질척함인가. 왜 이 습기는 자주 들락거리며 그럴싸한 무드를 가장한 불청객이 되는 걸까. 향기도, 냄새도 아닌, 기분도 아닌 감각으로 느껴지는 어렴풋한 퀘퀘함과 곰팡이의 씨앗.

왜 그것을 뿌리고 가는 걸까.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자 말없이 정서에 들러붙는 종류의 피로.


그 피로는 말의 형태로도 존재한다.

가령, “너 참 착하다”, “너는 참 선한 사람이야.”

그 말들, 훈풍처럼 들리는 척하지만 은근하게 눅진하다.

처음엔 칭찬인 줄 알았지만,

그 말이 남긴 건 언제나 정해진 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사람’이라는 울컥한 강요였다.

습기처럼 스며들고, 퀘퀘하게 눌러앉는 말.

그런 말 대신 차라리 말해줬으면 좋겠다.


“난 널 되게 좋아하나봐.”

"사랑해.”

"감동인걸?"


감탄보다 감정으로, 기대보다 진심으로 다가오는 말.

사람을 틀에 넣지도, 규정하지도 않고, 그냥 바라봐 주는 말.

그런 말에는 습기가 없다.

그런 말에는 곰팡이도 자라지 않는다.


나는 '선한 사람' '착한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표현을 쓰는 사람을 피한다.

그 말이 불러오는 묵은 기대와 온기 가장한 구속이 싫다.

나는 그저 '충실한 사람'이고 싶다.

애매하게 스며들고 싶지 않으며,

습기가 될 바에야, 차라리 소나기가 되겠다.

눅눅하게 구는 다정함보다, 쏟아져버린 감정 하나가 더 낫다.

한 번 울컥하고 지나가더라도, 남는 건 맑은 공기이다.

무심해 보이더라도, 그렇게 바짝 마른 채로 내 감정을 선명히 드러내고 싶다.

감정을 번지게 하는 말은 삼가고, 군더더기 없는

필요한 것만 남기고 싶다.


나는 공기가 흐르길 바란다.

감정도 통풍되듯 흐르고, 섞이고, 말려내는 공기.

햇살과 숨이 뒤섞이고, 공간이 쨍하고 소독되듯 정화되는 그런 환기를 바란다.

하지만 습기는 늘 먼저 찾아온다.

“엇, 창문 열었네? 나왔지롱~”

익숙한 얼굴로 살갑게 다가오고, 나는 또다시 인상을 찌푸린다.

가차없이 창문을 닫고, 제습기를 켠다.

시끄럽지만 솔직한 기계.

말 없이, 추근대지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그냥, 쿨하게 자기 할 일을 한다.

감정도, 관계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선하다’, ‘착하다’ 대신, 쿨하고 명확한 것이 좋다.

무심한 듯 제 역할을 하는, 제습기 같이 행동하고 싶다.

늘 건조한 정리를 택한다. 감정은 감정으로만. 관계는 관계로만.


습기는 늘 사적인 듯 다정하게 접근하지만,

그 다정함은 언제나 무단침입같을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습기는 포근한 척하는 곰팡이를 남긴다.

정이 아니라, 진균을 뿌린다.



나는 뽀송한 삶을 원한다. 눅눅한 삶을 원치 않는다.

물기 섞인 접근보다, 선명함을.

질척한 위로나 칭찬보다, 바삭한 공기를 원한다.


제습기처럼 쿨하게, 무심하게 ‘수분 박멸’이라는 임무를 수행하고, 바짝 말리고, 조용히 떠나는 존재.

시끄럽지만 존재감이 확실하고, 친하지 않아도 늘 함께할 수 있다.

예의 바르고, 자기 할 일을 마치면,

빈자리에 시원한 공기의 청량함을 남기고 떠난다.


그 공기,

나는 그걸 만끽하고 싶다.


그럴싸한 친절함과 애매함보다, 선명한 정직함이 낫다.

나는 감정을 오래 묻히지 않고, 습한 말을 오래 머금지 않는다.

매트하고, 청량하고, 칭찬은 자로 잰 듯 명확하게.



이제는 피한다. 나는 더 이상 젖지 않는다.

다정한 얼굴을 한 강요에도, 훈풍처럼 다가오는 질척한 칭찬이나 기대에도 흡수되지 않는다.

마음까지 눅눅하게 만드는 그것과 조용히 명확한 거리를 두며,

바람이 흐르고, 햇살이 닿는 쪽으로 조용히 몸을 뺀다.

뽀송한 마음 하나 들이고, 바삭하게 정리된 감정 위에서,

바람처럼 청량하게

선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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