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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멋있고 근사한 사람 되고 싶었다

아직은 멀었다

by La Verna

나는 멋있고 근사한 사람 되고 싶다.

근데 그러긴 글렀다.


나는 일단 머리카락 끝 윤기 하나에 하루 기분이 좌우된다.

물미역 트리트먼트, 식초, 클리닉 검색해서 본 헤어 관련 글들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준으로 지식을 무장한 채 머릿결 관리를 다시 시작한다.

머리카락 끝이 “서걱” 하며 윤기가 사라지는 순간, 나의 존재가 흔들린다.

나는 멋있고 근사한 사람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글렀다.


나는 멋있고 근사한 사람 되고 싶다.

근데 그러긴 글렀다.

패션은 ‘꾸안꾸’를 추구하며, 나름의 컨셉추얼 내추럴 무드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이 정도 브랜드는 곁들여야 눈치 못 채겠지'라는 무척이나 '신경쓴' 무드로써

‘안 꾸민 척’이라는 코디의 거대한 패션의 서사를 2시간반 동안 숙고하고 숙고하며 가장 자연스럽고 안꾸민것 처럼 보이는 "나? 바로 나왔는데 >0< ?"와 같은 스타일을 입는다. 너무나 공들여 눈이 퀭해지며 다시 입고 벗고, 핏을 고치고 거울 앞에서 머뭇머뭇거리기는 2시간 이상하고 "헉, 진짜 꾸안꾸다~" 소리를 듣고싶어

‘무심함’을 수시간이나 연출하는.. 이런 나는 멋있고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글렀다...


내 커피는 꼭 핸드드립이다.

이유는 단 하나.

하늘을 뚫고 내려오는 물줄기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래 이 정갈한 물줄기는 나다ㅡ."

내 인생도 이렇게 우아하고 정갈하게 허무를 다려주는 듯 펼쳐질 것이다..라고 최면을 걸며,

혼자 웅장해져 폼 잡으며 드립을 내리지만

어느새 텀블러에 옮겨담다 뚜껑이 열려 하얀 옷에 커피가 튄다.

그래, 이 장면... '삶'이다.

나는 아직 아마추어같이 덜익은 멋과 고상함을 흘리고 다닌다.

멋있게 살고 싶었고, 근사한 인간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나는 글렀다.


나는 야망이 있었다. 욕망도 넘쳤다.

누구보다 티안나게,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세상과 겨루고 싶었다.
내 미래의 배우자, 사랑하는 사람을 언젠가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세우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정치가 싫다고 말하면서도, 그를 중심으로 역사의 서사를 다시 쓰겠다는, 다소 오만하지만 순정한 열망이었다.

권력을 좇고 싶었다기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서사가 필요하다 여겼으며, 그 속에 그가 서 있길 바랐다.

내 사람이 판을 제대로 뒤집고 세상을 바꾸는 짜릿한 순간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목격하고 싶었다.

나는 그런 사람, 한때 그런 야망을 품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걸 아는 사람은 없다. 왜냐. 철저히 숨기기 때문이다.

야망을 드러내는 것은 멋이 없다고 믿었으며,

나는 그 멋없는 걸 경멸하던 멋쟁이였으니.

속에서 욕망과 야망의 고래처럼 회전하며 뛰고 있음에도,

겉으로는 선비 코스프레를 하며 어깨에 뽕은 없지만,

내 자의식엔 벨트처럼 솟구치는 허세를 압박붕대로 꽁꽁 감싸고 다녔다.

들킬까 봐 조심했고,

들킬 때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내 안에서는 늘 뭔가가 부글부글 일어났다.

나는 멋있고 근사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 글렀다.


겉으로는 하루라도 열두 번, 가장 담백한 얼굴로

속으로는 이 세상에서 욕망을 가장 우아하게 숨기는 사람처럼 군다.

스스로 만든 '품위'의 틀안에 몸을 억지로 욱여넣고,

튀어나올까봐 들킬까 봐 조심조심 치열하게 다듬는다.

그렇게 고요 속에 모든걸 해내고 있는 내가,

정말 근사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나만 아는 망상을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믿었다.

남모르게 무너지고,

남모르게 자랑스러워하며.

그렇게 나는 허상으로 만든 멋과 근사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글렀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부자가 될 것이며, 왠지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백에서는 내 취향도, 기품도 담기지 않는다.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도

주름 하나없이 흘러내리는 길고 고운 코트는,

내 생활 반경에선 그저 거추장스럽다.

나는 고상함을 원한다.

남들과 차별화된, 독보적인 품격을 원했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멋스러움이라고 각인된 것이 아닌,

새로운 결을 가진 길을 개척하고 싶었다. 나는 세계일주를 했다. 그리고 제3국들에 학교를 지었다. 제3국 여러 지역에, 교육 인프라가 전무했던 마을들을 골라 학교를 지었다. 9천만원 규모의 사업프로포절을 직접 기획·작성했고, 그 제안은 매번 승인되었다. 펀딩을 유치해 정식 사업을 착수했고, 정부와 NGO의 협력을 끌어냈다. 고생끝에 인가를 받은 학교는 자립했다. 운영 주체없이 무너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해 자립시켰고, 현지 교사들을 양성했다. 그리고 지금 —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 아이들은 여전히 그 학교에 간다.

내가 땀 흘려 만든 공간과 구조 안에서, 누군가는 처음으로 책상에 앉고,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우며,

자신의 이름을 태어나서 처음 쓰고 있다. 그 무(無)에서 ‘처음’들이 집합하는 장면들 속에 나는 고상함과 기품의 원천을 보았다. 이것은 내가 정의한 고상함과 기품의 시작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서사로만 남진 않았다. 아프리카의 무심한 모기, 아디다스 로고처럼 세 줄씩 그어져있는 무서운 모기가 내 다리를 물어 뜯고 간 그 상처들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너무 선명하게 남아있다. 속상하다.


나는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이다. 친가쪽은 모두 재미교포다.

내가 사랑하는 사촌언니. 그녀는 L사의 디자이너고, 친가 쪽도 대부분 그쪽 계통에 있다.

그녀는 세계적인 패션스쿨을 나와

럭셔리 브랜드 본사의 디자이너로 있다.

가끔, 그녀가 일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을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내게 건넨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들기보다 팔았다.

SSD를 더 장착한 업그레이드된 노트북을 샀다.

조용한 자리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는 박자감이 더 행복하다.

'탁탁. 탁ㅡㅡㅡㅡ탁.’

그 소리안에서, 나는 뤼비텅보다 더 우아하다고 착각한다.

나는 갖지 않음으로써, 내 취향을 지킨다.

멋이란,

보여주는 게 아니라

쌓이는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가장 나다운 생각으로 글을 새긴다.

한 땀 한 땀.

실루엣없는 자수같은 문장들로

고상한척하며.

그래서 아직 멀었다.

나는 멋있고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 아직 글렀다.


나는 꿈꾼다.

화려한 차보다, 기어가 뻑뻑한 중고차,

신발은 비 오는 날에도 땅을 잘 붙잡고 미끄러지지 않는 단화. 실용이라는 미학을 사랑한다.

미끄러지지 않음은 기품이다.

남향의 집이면 좋지만, 햇빛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

나는 자외선을 극혐한다.

주름을 만들고, 들키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을 자꾸 들춰낸다.

빛이 없어도 괜찮다.

나는 주름을 거부하고, 내 안의 영롱함을 믿는다.

바깥의 태양보다, 내 눈동자에서 나오는 은은한 허세의 광선..

그게 나를 비춘다.


나는 안다.

꼭 높은 집에 살지 않아도 된다.

낮은 천장도 괜찮다.

단, 머리를 너무 자주 부딪치지만 않으면 된다.

중요한 건 '고급짐'이고,

그 고급짐은 실내등 아래서도 가능하다.

내 고상함은

은은한 LED 조명과 함께 자란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조용하게, 단정하게, 튀지 않게,

모든 걸 원하면서도.

아무것도 소란스럽게 가지지 않는 방식으로.

나는 안다.

이런 소박함 뒤에 감춰진 나는 -

돈을 존나게, 미친 듯이 벌고 싶은 사람이다.

다만,

그 욕망을 누구보다 잘 숨기며,

멋있고 근사하게 감추고픈

허세 금욕주의자이고 싶다.

나는 바란다.

욕망을 '고상하게 싸발라서',

티 안 나게,

아주 조용하게

미친 듯이 돈을 벌고 싶다.


세상은 말한다.

“요정도는 있어야~"

" 요정도 옷, 요정도 집은 갖춰야지.”

" 요정도 브랜드는 입어줘야~ 보는 눈이 있는데.”

하지만 그 ‘요정도’는

야망을 과잉 포장하고, 실직을 슬쩍 숨기며, 기름 낀 머리를 광택으로 덮고,

대출을 은밀하게 묻는다.

구린 내 얼굴 위엔 로고 마크 하나를 얹는다. 그걸로 마음을 가린다. 눈가리고 아웅.

로고로 나의 위치와 존재감을 계산하게 만들고,

그 헛헛한 쾌감을 은밀히 숨긴다.

'이거 입었으니까. 나 요정도 돼.' 라고 생각하며, 그 로고 안에 묵살된 자신이 발악하는 줄도 모른 채.


그 '요정도'는 우울을 가리고,

사람을 마블링된 고기처럼 따져 등급매기며, 고기화시킨다.

난 그걸 거부한다.

왜냐. 나는 아직, 스스로 숙성 중인 인간이다.

냉장고도, 포장지도 필요없다.

나는 나로 이미 로고다.

그래서 나는 '요정도'가 아니라 ‘나 정도’로 살기로 했다.

...그런데, 망할... 나도 요정도 인간이었더라.

가슴에 손을 얹는다.

나도, 가끔은 로고를 사랑한다.

가끔 허세에 취한 인간이지만, 지금은 깼다.

카페인으로.


진짜 멋은,

미쳐가며 멋을 사랑하는 것.

허세없이 모든 걸 갖고,

없는 척하며 모든 걸 조율하는 것.

스프레이로 고정한 '꾸안꾸' 머리카락들의 무심함 위에,

향수의 작은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

나는 멋있고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허세없이 아주 많이 벌고, 쓰지만

사치없이 살아가는 사람.

이제는 안다.

멋이란, 가질 수 있어 이미 가졌지만

안 가진듯 보이는 절제와 여유에서 오고,

때때로

나사가 살짝 풀린 듯한

은근히 계산 다 된 광기에서 온다.

나는 모든 것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질 때조차

허세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시선을 허리에 찼다가,

필요 없으면 벗어던질 수 있는 유연함.

그리고 휘청이지 않는

멋의 등뼈.

그것은 곧,

내가 고정시킨 자세, 내 안의 척추다.

나는 멋있고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아직, 서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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