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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탄다고 다 꽃 피는 건 아니다..나는 아이스크림을

봄을 핑계 삼은 현대인의 감정 소비

by La Verna

봄 탄다고 아이스크림을 삼키는 인간의 정교한 착각 .


봄이 지나고있다. 인간은 멈췄고, 벚꽃은 꽃잎을 떨구기 시작했으며,

나는... 정신을 떨구고있다. 몸도 어딘가 멍해진다.

해는 빨리 뜨고, 자외선도 강해졌고, 옷도 얇아졌지만... 정신은 '멍~!' 이것이 요즘 내상태다.

업무중에도 갑자기 뭔가 머리가 '딸깍'하고 꺼지는 느낌과 함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이거 뭐지? 무기력인가? 권태? 아니면..

나 봄타나?

생각을 정리한다. 이 무기력은 약간.. 자연산 느낌이다.

방목한 듯한 권태로움. 봄이니까. 꽃가루, 햇살, 그 낭만 앞에 실존은 그저 '멘붕'이다.

굳이 이름 붙이면 '정신적 멍'으로 딱히 우울하진 않지만, 어떤 권태로움과 함께 심각하게 일이 손에 안잡히는 상태다. 이 '멍~'이 내 두 다리를 어디론가 보냈다.

정신차려 눈떠보니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앞.

걸어간 기억은 없으나, 나의 무기력이 보냈다.

인간은 자동화가 빠르다.

[ 정신적 '멍'+ 무력감 →무인가게 진입 →소비 →섭취 →자기합리화 →행복(의 착각) ]


나는 속으로 되뇌인다.

“지금 나는 아이스크림을 섭취해야 한다.”


무인 아이스크림가게 냉동고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착란의 음성:

"너.. 오늘 힘들었구나... 국화빵 하나 집어. 넌 자격있어!"

어우, 난 냉동고에게 위로를 받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다정한 말이 냉동고에서 나왔다.

나는 기쁨을 집었다. 똑똑한 선택! 제로 아이스크림.

난 열심히 일했고 퇴근 후 운동마저 열심히 했으며, 명분이 생겼다. 기왕이면 제로칼로리나 저당을 선택해야 양심상 덜 부담된다. 어차피 먹을거라면 저당이나 제로 칼로리 정도로 자기기만정도는 해줘야지.


오, 섭취란 무엇인가? 위장을 채우는것이 아니라, 자아를 진정시키고, 정서를 달래는 예식이다.

저당 아이스크림은 현대인의 감정 진정제이며,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는 인간회복소이자 심리적 응급실, 감정의 냉동창고이다. 자아성찰의 동기를 부여하는 성지. 나는 언제부턴가 감정을 아이스크림에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 꺼내먹는다. 얼음처럼 차갑게, 머리를 식히고 일상도 다시금 reset한다.

찬 기운과 함께 눈앞이 맑아진다.

아이스크림 몇개를 고르며, 흡족함과 동시에 혼자 모두 섭취할 생각을 하니.. 벌써 살찌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괜찮다. 이건 음식이 아니라 명분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살짝 칭찬을 건넨다. 도파민이 분비된다.


“너는 진짜 잘해... 스스로도 너무 잘 챙겨.”

스스로를 속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의식있는 당류 소비.

"나는 진지하게 당류를 소비중이다."

무기력을 섭취로써 제거하는 일련의 과정.


제로 아이스크림을 들여다보니 양심이 속삭인다.

“넌 지금 제로 아이스크림을 보고 있어. 이건 살 안쪄!”

그러나 사실 제로, 저당 아이스크림이라 적힌 것들 다 일반 아이스크림이나 칼로리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간만큼은 스스로를 속이고 싶다.


계산대에 아이스크림들을 올려놓고 나는 인생을 정리했다.

누군가는 이시간 수면을 취하고, 누군가는 러닝을 하겠지. 그러나 나는 섭취한다.

정신적 유산소 운동! 난 이걸 '당운동'이라 부르기로 했다. 물리적 포만은 덤


가게를 나서며 중얼거린다.

"와.. 이거 진짜 치료네. 벌써 행복해!"

희열을 느낀다.


운동은 했다. 열심히 무용을 했고, 영상도 찍고 2시간 동안 기를 모았다.

"더! 더!" 외칠 때 나도 같이 으르렁했다.

약간의 대사량이 소모되었다고 믿는다. 난 야밤에 간식을 사러 간 걸 ‘파워 워킹’이라 여기며 정신근육 운동을 한다고 되뇌인 후, 이 모든 것을 '치밀한 자기 관리'라 세뇌시킨다.


어차피 인생은 착각 기반이다.

삶의 동력은 스스로를 '절제력 있는 인간'이라 믿는 불안 기반의 은근한 허세에서 시작된다.

감정은 장 속으로 정리하는 스킬. 뱃속을 통해 슬픔이 눌리고, 봄을 타느라 손에 잡히지 않던 모든 게 차분히 내려앉는다. 미세하게 나의 기쁨은 당분화된다.

집에 돌아오니 냉장고 속에 이미 아이스크림이 있다.

같은 구성. 국화빵, 라라스윗, 제로아이스크림. 헐, 이건 데자뷰다.

계속된 패턴으로 무의식이 기억해 버렸다.


난 그래도 괜찮다. 더 자주 괜찮을 것이다.

이건 비정상적인 세상에 맞춘, 내 최적의 생존 전략..

정상적 대응이다. 이름하여 [감정 냉동보관 시스템].


내 삶을 지탱하는 신조:

‘열심히하긴 싫지만, 무너질 땐 품위 있게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이는 내 아이스크림 구매 철학에 반영된다.

아이스크림은 꼭 종이봉투에 담는다.

급해도 포장만큼은 우아하게.

오늘도 샀지만, 내일도 산다.

왜냐. 반복학습은 안정을 준다.

'제로'라는 거짓말을 믿고, 스스로를 속이며

난 오늘도 내일도 행복해질거다.


나는 요즘 감정을 분해하지 않고 '섭취'로 덮는다.

가끔 내가 만든 논리에 감동받아 하루 세 개를 한번에 흡입할 때가 있다.

오늘 열심히 일했으며, 운동을 했다는 명분.

봄이니까 괜찮다는 계절성 면책 특권.

무인 가게라 눈치 안봐도 된다는 시스템적 혜택.

제로 칼로리라는 심리적 보증.

이 모든 걸 정교하게 엮어 ‘괜찮은 소비’를 해낸 내가 된다.


"난 정말 나자신을 위하는 데 진심인 사람같아 ^0^"


“어차피 내일도 퇴근하고 또 러닝할 거잖아?

그럼 뭐 어때. 자격있잖아. 더 사! 당장 pick해!”


인생을 진지하게 살면 살수록,

이상하게,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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