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열리는 문이 아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고, 누구에게나 쿨하고 열린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마음속에 작은 자물쇠 하나정도는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람의 내면은 누군가 가볍게 발을 담가 물장난치고 놀다 나올 수 있는 얕은 웅덩이가 아니다.
오히려 고요하고 깊은 호수처럼, 발끝부터 천천히 젖어들며 신중하게 다가가야 비로소 입장할 수 있는, 섬세한 영토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관계가 아무리 가볍더라도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던진 말 한마디에 흘려보낸 감정의 잔해가 상대에게 어떤 잔상을 남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면이 하나의 터전이라면, 생각보다 예민한 땅이고, 그만큼 존중받아야 할 공간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때때로, 마음을 무겁게 여기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여기저기 곳곳을 떠돌며 관심을 갈구하고, 누구에게나 가벼운 손짓으로 감정을 흘린다. 그 모습이 사소한 관심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허기진 하루를 대충 떼우듯, 타인의 존재를 일회용품처럼 소비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접근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얄팍하고, 감정이라는 걸 장난처럼 깐족거리며 가볍게 건드린다. 진심은 없고, 깊이도 없다. 얕은 관심으로 툭 치고는 금세 흥미를 잃고 돌아선다. 그렇게 스쳐간 자리엔 공허만이 남는다.
허무와 허전함, 그리고 따뜻한 온기를 잃은 정서적 빈곤.
문제는 그들이 이런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건드리고 떠나는 걸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정작 그들 자신이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허기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감정에 가볍게 기대고, 가볍게 흘리고, 또다시 다른 감정의 파편을 찾아 떠돈다. 그것이 자신의 유일한 정서 위안인것 같다. 그러나 그 허기는 아무리 훑어도 채워지지 않기에, 또 다른 감정의 뒷 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맴돌게 된다. 외로움에 쉽게 부서지고, 쉽게 흔들리고, 누구라도 붙잡아 기대고 위안을 얻으려는 본능에 가까운 그 얕은 행동은 대화 몇마디로도 자신의 전부를 드러낸다. 깊이를 모르거나 원하지 않기에 감정의 무게도 없고, 쉽게 다가오는 만큼 늘 쉽게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타인의 내면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볼 줄 모른다는 반증이다. 이들은 사람을 장난감처럼 다루거나 오락거리로 여긴다. 그런 모습은 상대에게 천박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한다. 관계를 소모적인 것으로만 여기니, 그 언행에서조차 소모적인 기운이 짙게 배어난다.
언행이 신중한 사람은 어떤 말을 흘려도 그 속에 깃든 사람의 깊이와 무게가 있다. 그렇게 뿌려진 말과 행동에는 힘이 있기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사람을 존중하는 전제에서 나오는 고요한 내공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람의 감정을 값싼 물건처럼 여기고, 사람을 일회용품처럼 소모하려는 이들과는 다른 차원의 위엄이 느껴진다.
이름없는 얼굴들 사이에서 무심히 다가오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그 극도로 피상적인 접근 너머에 감춰진 얄팍함이 어쩐지 그대로 드러난다. 마음을 쉽게 여기는 사람들은 결론적으로 타인의 마음도 천박하고 가볍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렇게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들과의 길을 어떠한 경로로든 피하고, 깊이 관여되지 않길 바란다. 마음을 다룰 줄 아는 사람과 마음을 가지고 노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가볍게 기웃거리는 일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것으로 타인을 가볍게 여기는 순간 그것은 무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무례한 자유는 방종이지, 존중이나 쿨함이 아니다. 타인의 내면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은 사실 인간 사이에 기본이다. 타인을 오락거리처럼 대하려는 마음은, 그냥 혼자 웃고 넘기는 선에서 끝나는 편이 좋은 것 같다.
누군가와 나누는 자리는 가볍더라도 어느 정도 진심이란 것이 드러난다. 그 선을 인지하지도, 지킬 수도 없다면ㅡ 잠재적 고객처럼 돈이나 이해관계로만 얽힌 거래관계가 아닌이상, 애초에 거리를 두는게 서로에게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