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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못 보는 게 있다

by La Verna

나는 못 보는 게 있다.

공포영화, 야한 장면,

피 나오는 장면, 폭력적인 장면. 이 네 가지는 내 삶에서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다.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정말 못 본다.

물리적으로, 본능적으로 몸에서 반응한다.

공포영화는 왜 그런지 잘 안다.

그날 이후로 생겼다.


열다섯 살.

학교에서 과학 선생님이 과학실 커튼을 전부 닫았다.

교실 안은 비현실적으로 어두워졌고,

선생님은 말없이 TV를 켰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와서

처음에는 실험 영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주온’이었다.


토시오가 기어 나오는 순간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다.

호흡은 가빠졌고, 손끝은 차가워졌고,

눈을 감아도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토시오가 내는 이상한 소리가 너무 무서웠다.

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

그날 이후로 나는

공포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 삶의 공포영화는 토시오로 끝났다.

그뒤로 공포영화를 못봤다.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밤마다 불을 켜고 잤고,

화장실을 갈 땐 불이 있는 곳까지 소리를 내며 걸었고,

집 안의 모든 문을 닫고 확인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야한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연습삼아 의지를 가지고 본 적 있다.

너무 야해서, 그냥 꺼버렸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위험하다고 느꼈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보지?

나는 그런 쪽으로 체질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모든 ‘위험한 영상’을 피했다.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는 감각으로 살아왔다.

야한 장면을 보면 숨이 막히고, 죄짓는 것 같고,

피가 나오면 내 맥박이 먼저 멈춘다.


그리고 폭력적인 장면도 못 본다.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1화를 겨우 보다가 피가 흐르는 장면, 사람을 죽이는 장면에서 멈췄다. 숨이 막혔다.

나는 고통스럽게 그것을 보고있었다.

트라우마 생길 것 같아 반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봤다.


아버지는 의사다.

어릴 때부터 늘 말씀하셨다.

“피는 보다 보면 괜찮아진다.”

“의대가면 다 극복된다.”

“피는 그냥 체액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의대에 가지 않았고,

피를 보면 아직도 무릎이 풀린다.

손끝부터 저리다.

눈앞이 하얘지고, 속이 울렁거리고, 소름돋는 정도가 기절할 정도이다.


예전에 친한 친구의 설득으로 한 영화를 보러 갔다.

내용은 다 잊었는데, 하나만 또렷이 기억난다.

‘눈깔을 파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화관밖으로 나갔고, 곧바로 직진해

택시를 탔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폭력적인 영화 관람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나는 끝까지 보지 못한 사람이다.


주온의 토시오는 아직도 가끔 밤이면 생각난다.

밤에 자다가 괜히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드는 상황에서.

그래서 귀를 막거나 블루투스 이어폰을 두고 잔다. 화장실 갈 때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고 가곤 한다.

혹시라도 문틈 사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놀라곤한다.

이상한 기척이 들리면 심장이 벌렁거린다.

음악을 들으면 조금 나아진다.

클래식을 틀 때도 있고, 재즈를 틀 때도 있다.

한 번은 베토벤 소나타를 들으며 치약을 짰다.

괜히 무서운 날엔 음악 속에서 평온을 얻는다.


사람들은 겁쟁이라고 할지 모른다.

예민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답답하다ㅎ

내가 나를 보호하며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나는 언젠가 볼 것이다.!

끝까지.

눈 가리지 않고, 손으로 귀를 막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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