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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운전을 못 믿는 게 아니야~

by La Verna

가끔 누군가가 먼 길을 달려 나를 만나겠다고 하면, 내 심장은 격렬하게 뛰기 시작한다. 한때, 바쁜 일상 속에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일로 소진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가까운 친구였던 한 남자사람친구는 내 지친 기색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곤 했다. 유난히도 배려와 의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고마웠고, 우정의 결로 받아들였다. 몸살로 드러눕는 날이면 과일 박스와 고기를 집앞으로 보내고, “힘내라”라는 짧은 문장으로 말을 건넸다. 무뚝뚝한 위로였지만, 그 안엔 온기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백인지 아닌지 모를 모호한 말을 남기고 돌아섰던 그에게 나는 생계를핑계 삼아“먹고살기 바쁘다”는 상투적인 이유로 마음의 여지를 열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오지 마, 괜찮아”라는 내 여러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무시하고 그는 금요일 퇴근 후 자차로 다섯 시간을 무언의 질주 끝에 달려오다, 고속도로에서 3중 추돌 사고를 당했다. 그 시각은 새벽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정말 간만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뒤늦게 아침에 일어나 사실을 알고,

병원을 찾은 나를 맞이한 것은, 처음 뵙는 그의 어머니였다. 긴 생머리에 차분한 원피스를 입은, 기품있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당혹스러운 눈빛 속에 담담한 냉기를 띠고 서늘하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한평생 운이 좋은 아이였어요. 큰 탈 없이 대학도 잘나오고 좋은 직장도 다니고 너무 잘 자라고, 잘 살아온 아이였는데... 얼마나 운이 없는 사람을 만나려 했길래, 이런 사고를 겪었을까요.”

이 말을 듣고 순간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모든게 정지됐다. 온몸이 굳어버렸다.


속으로 ‘오지말라고 했는데..’라는 말을 백 번을 넘게 되뇌었지만, 그 어머니의 눈빛이 너무 무서웠고.

그 앞에서는 한 마디 변명조차 용납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상하게, 나는 엄마 아빠 뻘 되는 분들에게 유난히 예쁨을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 어른들은 내 실체를 모른채, 자주 순하고 속이 깊다는 말을 했고, 나도 그 시선들에 조심스럽게 화답했다. 그래서였는지 그날 그녀가 내게 보낸 그 무서운 눈빛은, 내 마음 한켠을 아프게했고 그 날선 시선은 내 안의 무언가를 찢었다.

살면서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어른의 얼굴로부터 나를 단시간에 그토록 싫어하는 눈빛으로 쏘아보거나, 원망섞인 노골적인 기운을 본적이 없었다. 연배가 많은 분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 순간에는, 낯선 세상에 툭 떨어진 듯, 혼란스러웠고, 마음은 큰 돌에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었다.


그 사고 원인은 자율주행 시스템의 오작동이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고, 그는 일주일 만에 퇴원했지만 반년 가까이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다른 이의 손이 운전대를 쥐고 있으면, 나는 끝내 무언의 불안을 거두지 못한다. 어렴풋하게 걱정과 긴장이 밀려오고, 누군가 “내가 운전해서 갈게”라고 말하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한두 번은 말리게 된다.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사람이, 더없이 반갑다.


누군가 “내가 운전해서 그쪽까지 갈게”라고 말하면, 고속도로의 기억이 심장을 무리하게 끌어올린다. 그런데도 나 역시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면허도 19살때 바로 땄고, 미국에서 1시간 거리의 직장을 무사고로 오가던 시절도 있었다. 직접 운전할 땐 제법 '운전을 잘한다'같은 얘기를 종종 듣고 실제로 즐기면서 침착하게 운전하는 편이다. 내가 운전했으면 했지, 누군가의 손이 운전대를 잡으면 걱정이 밀려온다. 그렇게 누군가의 차에 올라 타면, 속으로 되뇐다.


"네 운전 실력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야.

다만 그날의 기억이, 억울하게도 아직 남아 있어서."


삶은 본래 예측 불가한 변수로 가득하고, 예기치 못한 복잡한 상황과도 맞부딪히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내가 지닌 기억의 작은 편린 하나하나가,

나를 이토록 건드린다. 그 불완전한 찰나들 덕분에 때로는 얼어붙은 이성의 논리로, 때로는 말없는 온기로.

그리고 낯선 이에게 어떤 형태로 나의 태도가 되어 잔잔한 울림이 되어 드러난다.

그 이후, 우리는 단 한 번도 그 사고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연락을 멈췄고,

그 침묵이 우리 사이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구두를 오래 신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쉽지만.

발걸음이 주는 느림을 신뢰하고, 바람이 스치는 소리, 발아래 닿는 땅의 울림이 오히려 좋다.

그 작은 확실성들.


운전보다는 Bike, Metro, Walk

BMW. 더 멀리, 더 안전하게 얼마나 좋아?

가보자고오

걸어보자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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