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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나

by La Verna

삶에는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이라도
기억 깊숙이 박혀 평생을 따라다니는 경우들이 있다.
새벽 다섯시의 정적 속에서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순간의 미세한 떨림, 햇살이 먼지 입자 하나하나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찰나의 아름다움.
그런 순간들 앞에서 나는 멈칫하게된다.
이런 경험을 마르셀 프루스트는 '무의지적 기억'이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기억은 그보다 더 내게 깊은 의미가 있다.
존재 자체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떠나올 때 마주하게 되었던 갑작스런 병이 내게 준 것은 사실 헤어짐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육신의 속박이 깊어질수록 정신은 더욱 자유로워졌고, 고통이 날카로워질수록 사유는 더욱 섬세해졌기 때문이다. 병상위에서 하얀 찬장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다. 그 순간 나는 무한을 사유했고, 한 줄 한 줄의 문장 속에서 치유의 길을 걸었다. 언어의 신비가 나를 도와주는듯했다.
새벽이면 세상은 완전히 고요해졌다.
새벽 정적 속에서 필사를 위해 펜촉이 종이를 가로지르는 소리만이 내 우주의 전부였다. 한 글자씩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와 손끝을 통해 흘러갔고 그 안에서 나 자신과 진정으로 대화를 했던 것 같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때로는 침묵 자체가 가장 웅변적인 표현이 될 때가 있다.
어느 날 창밖에서 들어오는 첫 햇살을 보며
나는 느꼈다. 내가 찾던 것은 영원불멸한 무엇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완전함이었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빛, 종이 위에 흘러가는 볼펜의 길, 고요 속에서 들리는 조용한 호흡과 나지막한 목소리들까지도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아름다웠고 우주였다.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삶의 본질에 대한 나자신을 만들어갔던 것 같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 슬픔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 절망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손. 그것들은 모두 고요한 새벽들이 내게 가르쳐준 소중한 지혜였다.
지금은 다른 풍경 속에서 그 시절의 기억을 덮고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고있다.
도심 속 창문을 활짝 열고 하루를 시작한다.
햇살이 들어오는 평범한 아침들이지만,
그안은 늘 분주하다. 하지만 그 분주함을 가득 채운 평범한 일상에서도 여전히 그때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다.
작은 찰나들안에서 나름 형이상학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보통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들안에서 깊은 의미를 읽어내는 시선을 놓지않으려 기억을 더듬는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도 내안에 살아있다.
커피향이 감도는 카페에서,
때론 창가에 번지는 노을을 바라볼때,
어리시절 그때의 내가 다시금 조용히 다가와 속삭인다.
더 깊이 느끼고,
더 단순하게 살아가며, 더 사랑하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하라고.

나는 아직도 새벽 정적을 좋아한다.
그 시간만큼은 세상과 나 사이의 장벽이 사라지고,
가장 순수했던 시간 속의 나와 마주하게 되기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아직도 내안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다.
기억을 말로 꺼내면 그 시간들이 흐려질 것만 같았다.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설명하지않아야만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어떤때는 설명해서는 안되는 것들도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침묵의 서약을 자주 내렸다. 그 침묵 속에서만 그 시간은 온전히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일곱 해라는 시간.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절망을 끝까지 견뎌낸 사람만이 희망의 값진 무게를 느낀다고들 한다. 그래서 지금도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에 그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감사하려고 한다.

가끔 기억이 떠오르면, 그 경험들이 앞으로의 내 삶을 조금 더 깊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길 바라본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끝내 놓지 않았던 한줄기 희망.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그 무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내게 건네준 보이지 않는 손에게 감사한다. 아마 그손길 덕분에 앞으로의 나와,
내가 살아갈 세상도 조금씩 더 깊고, 아름답게 이어져 가지않을까 싶다.

ㅡD에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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