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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어른이 건네는, 동그란 마음

크리스마스이브

by La Ver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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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매끈한 유리 벽면을 타고 겨울의 창백한 빛이 들어온다. 모든 직원들이 조기 퇴근을 서두른 자리, 윤이 흐르는 대리석 바닥 위엔 정적만이 내려앉았다.

사실 어른이 된 나에게 오늘이란, 산타를 기다리며 기도손을하며 밤을 지새우던 어린 날의 유난스러운 두근거림은 어디로 휘발된 것일까. 첨단의 기술과 금속성 엔진이 일상이 된 이곳에서 오늘이란, 그저 내일의 휴식이 보장된 '조금 긴 목요일'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몇 주 전부터 이상하게도 마음에 작은 동기가 일었다. 늘 금속을 마주하는 공간에서 매일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직장 동료들의 어깨 위로, 괜시리 오늘 하루만큼은 작은 조명 하나 켜주고 싶다는 생경한 마음이었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가 '기적'의 다른 이름이듯, 미니멀한 직선의 세계에 갇혀 사는 우리들에게도 아주 잠시 숨통을 틔워줄 작은 '틈'을 선물하고싶었다.

​지난 주말 붐비는 인파 속에서 백화점에서 꽤 오랫동안 고민해 작은선물을 준비했다. 사비를 들여 누군가의 취향을 고민하고 포장지의 결을 맞추는 일은 어쩌면 효율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행위다. 누군가는 이를 어수룩한 참견이나 오지랖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성으로 포장을 하는동안, 차갑게 식어 있던 마음이 기분 좋게 말랑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고심했던 것은, 나의 호의가 누군가에게 '부담스러운 숙제'가 되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나의 선물이 떠들썩한 과시가 되어, 준비하지 못한 이들이 미안함을 느끼거나 보답해야 한다는 부채감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보는 앞이 아닌 한 명 한 명의 자리를 조용히 찾아가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것은 "당신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 참 고생 많았다"는 담백한 위로이길 바랐기 때문이다.

​조용히 선물을 건넸을 때, 한 직원이 상자를 만지며 나직이 속삭였다.

"이런 선물, 태어나서 처음 받아봐요."

​그 떨리는 한마디에 가슴 한구석이 울렸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상자가 평생 잊지 못할 '처음'의 기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의 머쓱함을 녹여주었다. 퇴근길, 차가운 통유리 창너머로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이 뭉클해졌다.

​선물을 꼭 쥐고 미소 지으며 폴짝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보았다. 그것은 평소 봐오던 퇴근하는 직장인의 무거운 걸음이 아니었다. 유치원 하교 시간, 손에 쥔 선물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듯 폴짝거리던 어린아이의 움직임같았다. 무표정이라는 가면뒤에 숨겨져 있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동심이 미소위로 환하게 피어오른듯했다.

이를 목격한 나는, 내가 준비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선물은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저 그들이 잠시나마 짊어진 삶과 어른의 무게를 내려놓고,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작은 틈을 만들어주고 싶었을 뿐이다.

누군가가 보기엔 조금은 바보같고 미련하고 계산없는 행동일지 몰라도, 나는 오늘이 참 흡족하고 풍족하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어린아이를 깨워주고, 생애 첫 선물같은 기억을 남겨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의 진짜 의미이고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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