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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Oct 26. 2018

급식체? 아크로님(Acronym)의 습격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기 #13 줄임말 (Acronym)

한국 예능 프로그램과 인터넷을 볼 때, 간혹 혹은 자주 '어? 이게 뭐지' 하는 단어들이 나올 때가 있다.


'댕댕이', '갑분싸', 'ㅇㄱㄹㅇ', '빼박 캔트'......


무슨 의미인지 이해 못 할 때는 프로그램 분위기로 그 뜻을 유추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게 힘들 때는 뜻 유추를 포기하고 인터넷을 검색해 본다.


댕댕이가 강아지라고? 멍멍이랑 비슷해서 댕댕이 아...

갑분싸는 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그래 이건 줄임말 아...

ㅇㄱㄹㅇ은 이거 레알? 이것도 줄임말 같긴 한데... 초성만 적은 거구나.. 아...


하나하나 검색할 때마다 바보 도 터지듯 '아!' 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자괴감...

'내가 이렇게 트렌드를 못 따라가다니... 나 이제 늙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런 줄임말과 급식체같은 것이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쓰인다. 익숙하지 않은 아크로님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나도 많은 부분에서 줄임말을 쓰지만 정말 뜻 모르는 줄임말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질 때는 왜 멀쩡한 말을 줄여서 쓰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로컬리제이션(Localization)이 L10N이라고?


실무를 할 때에도 관리 업무에도 로컬리제이션 파트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스페인어로 일을 할 때에는 대부분의 의사소통, 그리고 보고서에도 스페인어로 Localización이라고 적었었다. 그런데 영어로 진행되는 업무가 많아지면서 언젠가부터 로컬리제이션이라고 들어가야 할 부분에 L10N이라고 적혀서 오기 시작했다.


'엘십엔'이 뭐지... 로컬리제이션을 의미하는 것은 알겠는데 숫자가 저기 왜 들어가 있는 걸까? 다행히도 메일을 보낸 직원이 친한 동료라서 따로 불러서 물어봤다.


나: L10N이 로칼리제이션인건 알겠는데, 왜 저렇게 10을 넣어서 써?

동료: 아~ 그거! 나도 미국팀이랑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건데 LocalizatioN의 L과 N 사이에 10개의 알파벳이 있어서 다 적는 것보다는 L10N이라고 적는다고 하더라고.

나: 아... 근데 굳이 그래야 해?

동료: 뭐 알파뱃 12개를 적는 것보다는 4개를 적는 게 시간적으로도 효율적이니까.

나: 아...


결국 또 바보 도 터지는 소리를 다시 내뱉으면서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업무용 줄임말 사전을 만들다.


나름 스페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약간씩 변형되어 사용하는 스페인어 혹은 줄임말들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어의 기본 줄임말들도 나름 잘 안다고 자부했었다.


나도 기본적으로 ASAP(as soon as possible), FYI(for your information), TBC(to be confirmed), TMI(to much information), AKA(as known as) 등 기본적인 줄임말들은 알고, 업무에서도 자주 사용했기에 아크로님이 이렇게 머리를 아프게 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미국 팀과의 의사소통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아크로님들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고, 새발의 피도 안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만난 미국 직원들만 그런 걸까? 그들은 정말 줄임말을 좋아하는 것 같다.


'GMS', 'PTO', 'IM', 'DM', 'FTE' 등등 가끔은 앞, 뒤 문장만로는 뜻이 잘 유추되지 않는 줄임말들의 습격이 시작되었고 일일이 인터넷을 찾거나,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 회사 내의 아크로님의 경우에는 알만한 동료들에게 묻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스페인 동료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나만 바보 취급을 받지는 않아도 되었다.(나 혼자 모르는 것보단 남도 모르면 뭔지 모를 동질감이 생긴다. ;;)


결국 계속 늘어나는 아크로님의 습격에 지친 팀원 중 한 명이 미국팀에 아크로님 리스트를 요청했고 거기에 우리가 아는 것까지 더해서 아크로님 사전?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 공유했다. 정말 그 리스트를 받았을 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같은 줄임말이라도 인터넷에서 찾으면 다양한 뜻이 나와서 여러 번에 걸쳐 확인해야 할 때가 많았는데 해당 리스트가 생기고 엄청 편해졌다. 내가 모르는 아크로님이 나올 때도, 팀원들이 물을 때도, 그리고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아예 회사 내 줄임말에 익숙해지라는 의미로 리스트를 넘겨준다. 그 뒤로도 새로운 줄임말들이 여전히 습격해 오고 있지만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사전을 업데이트시키면서 좀 더 원활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줄임말이 익숙해진 후에는 간단한 메일이나 공간이나 글자 수가 한정되어 있는 보고서를 쓸 때, 아크로님이 효율적이고 편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어로 친구들과 카톡으로 이야기할 때도 급식체 혹은 줄임말을 쓰면 글자를 좀 덜 적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든 것인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왜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줄이고 줄여서 줄임말을 쓰거나 급식체를 쓰는 것인지는 아직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아크로님을 외우고, 급식체를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by.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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