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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쓰 Nov 12. 2019

파리 근교: 지베르니, 오베르 쉬르 우아즈, 베르사유

시앙스포 교환학생 일기 #22

“Actually, Paris is the most beautiful in the rain”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오는 대사. 가을, 겨울의 유럽은 생각보다 많이 흐리고 비가 자주 온다. 런던만 피하면 될 거라고 믿었던 스스로가 한심해질 만큼 일기예보는 틀린 경우가 많고 비가 잦게 내린다. 그럼에도 파리는 아름답다. 그 아쉬움과 아름다움을 한 번에 담아내는 대사인 것 같다. 


지베르니는 내가 너무 가고 싶었던 곳이다. 오랑주리의 <수련>도 지베르니에 방문한 후에 가고 싶어서 아직까지 아껴두고 있다. 나는 모네의 그림이 좋고 내 환상 속 지베르니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이런 곳에 엄마를 모시고 갈 수 있게 돼서 너무 감사했다. 꽃이 거의 다 지고 정원이 닫기 직전인 10월 말에 갔기 때문에 꽃이 만발한 봄의 기운은 느끼지 못했다. 엄마는 그래서 좀 아쉬워하셨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모네의 집 속 내 마음에 쏙 드는 인상주의 그림들, 아기자기하고 예쁜 벽지와 가구들로 꾸며진 방들, 집을 둘러싸는 엄청난 양의 꽃, 그 사이로 난 길, 연못, 그리고 수련. 이런 곳에 살면 저절로 멋진 그림이 나올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 나중에 파리에 봄이나 여름에 오게 된다면 무조건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좋은 공간이었다. 

꽃은 많이 시들고 졌지만 여전히 그 색감은 기억에 남는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에 70일 간 머문 여관이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죽기 전까지 머물면서 고흐는 무려 8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들이 생겨난 곳곳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던 마을. 하지만 고흐의 인생 이야기는 우울하고 마음이 먹먹했다. 모네의 삶과 너무 비교되는 탓에 같은 예술가여도, 현재 모두가 유명하더라도, 살아생전의 인생은 그렇게 다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한 아이러니. 


고흐 동상의 손을 잡으면 예술가가 된다는 말을 듣고 나도 사진을 찍어보았다. 나는 예술가를 동경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직업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이나 경력을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생각, 감정, 느낌, 감흥 등을 어떠한 매체로 표현해서 상대에게 전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흥이 고스란히, 혹은 증폭되어 전달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잘 전달하기 위한, 그리고 꼭 전달하지 않더라도 더 잘 표현하려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이 날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베르사유. 가장 기대가 없던 베르사유 궁전은 개인적으로는 더 큰 만족감을 주는 곳이었다. 지베르니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가 아름다웠음에도 불구하고 날이 흐리고 추웠어서 그런 것일까. 야외인 정원과 마을보다는 내부 궁을 둘러보는 게 더 쾌적했던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베르사유보다 오페라 내부가 화려하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베르사유 궁도 충분히, 넘치게 화려하다. 엄마와 곳곳을 구경하면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당 떨어질 때쯤 베르사유 안의 Angelina에서 몽블랑을 먹은 게 너무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일까. 혹은 다른 기념품샵들에 비해서 특이하고 궁의 장식을 활용한 예쁜 물건들을 오랜만에 마음껏 골라 사 올 수 있었어서일까. 어린 시절로 돌아간 착각이 약간 들기도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세 군데를 방문하고 파리에 돌아오니 오후 6시 반쯤 되었다. 다행이었다. 몽생미셸 투어를 했을 때는 새벽에 도착해서 엄마도, 나도 피곤했다. 하지만 오후 6시가 좀 지난 뒤에 도착하니 함께 여유롭게 에펠탑도 구경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갈 수도 있었다. 이 날 에펠탑 앞에서 엄마의 사진을 많이 찍어드리고 함께 맛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갔는데, 그 만족감을 잊을 수 없다. 엄마는 여전히 아름다우셨다. 어릴 때부터 나는 어떤 여자 연예인보다도 엄마가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컸다. 최근 몇 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엄마도 나와 동생을 키우면서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를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다.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아름다운 사진을 많이 간직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어딜 가더라도 엄마 사진을 많이 찍어드렸다. 그 사진들 중 엄마가 마음에 들어하는 사진이 있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른쪽 사진은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새로운 관점에서 본 에펠탑이다. 이 야경도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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