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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쓰 Sep 11. 2019

니스 여행 (1): 모나코 몬테카를로

시앙스포 교환학생 일기 #5

1. 정띠이에서 샤를 드골 공항으로

내가 사는 gentilly 역에서 샤를 드골 공항 터미널 2까지는 RER B노선을 타면 약 45분 걸린다. 아주 편리한 이동 방법이다. 함께 여행을 간 두 명은 cite universite 역에 살기 때문에 gentilly와는 한 정거장 차이다. 하지만 소통 문제로 샤를 드골 공항 역까지는 따로 가게 되었다. 여행 가는 아침부터 몸이 좀 안 좋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지고 샤를 드골 공항 전 역을 지나고 있을 때쯤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워졌다. 나는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병이 있는데 가끔 이유 없이 메스꺼워지면서 순간적으로 2-3분 정도 쓰러진다. 고치는 방법은 없고 쓰러질 신호가 왔을 때 예방하는 방법으로 장소가 어디든 누워야 한다는 것을 병원에서 들었다. 파리에 온 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옆 자리가 비어있던 덕분에 상체라도 누워서 더 심각한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시작이 안 좋은 것은 액땜이라고 생각하며 이번 여행은 즐거울 것이라고 스스로 되뇌며 정신을 차리고 공항으로 가 함께 갈 친구들과 조우했다. 


2. 에어프랑스 타고 니스로

에어프랑스는 처음 타본다. 휴가철 막바지라 그런지, 우리가 3일 전에 티켓을 끊어서 그런지 한화로 약 30만 원가량의 비행기 값이 들었다. 시작부터 럭셔리한 여행이었다. 그래도 햇빛 쨍쨍한 니스가 아니면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공통된 의견이 있었기에 비행기와 에어비앤비 값을 더해 약 41만 8000원을 들이고 여행을 떠났다. 아침, 점심 모두 못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기내에서 준 작은 레몬 케이크를 맛있게 먹고 늘 그렇듯이 비행기에서 푹 잠에 든 후 곧 니스에 도착해서 눈을 떴다. 니스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니스 내 버스/트램 이용 10회권. 1회 이용 당 1.5유로이기 때문에 10회권을 산 것이 빛을 발하려면 7회 이상 타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이때의 계획과는 다르게 우리는 많이 걷고 모나코 가는 데에도 기차표를 따로 샀기 때문에 총 4번밖에 못 탔다. 하루 숙소에 티켓을 두고 온 내 친구는 2번 썼다. (ㅎㅎ) 표를 사고 나서는 트램을 타고 jean medecin역으로 지상에서 풍경을 감상하며 20분가량 이동했다. 건물들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한국에서는 본 적 없던 바다의 빛깔이 환상적이었다. 


3. 니스에서 기차 타고 모나코 몬테카를로로

에어비앤비 주변에는 약 3시쯤 도착했는데 방 키를 주신다고 한 분이 3시 30분까지 오신다고 했다. 30분을 때워야 하지만 짐이 굉장히 많은 상황이었다. 근처 coffee-to-go라는 곳에 가서 과일 요구르트와 파니니를 주문해 먹었다. 바닷가 근처인데 하나도 습하지 않고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고 햇빛이 비치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간식을 먹는 기분은 최고였다. 하나도 습하지 않은 바닷바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곧 에어비앤비 키를 받고 방에 짐을 놔둔 뒤에 (버스로 이동하려고 했으나) nice ville 기차역에서 몬테 카를로로 가는 표를 끊었다. 12-25살 사이 나이는 할인을 받아서 6유로대에 왕복 기차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최대한 빠른 차를 바로 타고 몬테카를로 역에서 내렸다. 

도착해서 처음 본 풍경은 '와...'라는 감탄사를 절로 내게 했다. 너무 아름다운 상아색 건물들과 파란 하늘,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부는 따스한 날씨에는 파리라는 아름다운 대도시를 잊게 만드는 황홀함이 있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도시더라도 휴양지를 이길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나코 왕국은 프랑스가 아니기 때문인지 잘만 되던 유심의 데이터가 모나코에 있는 동안은 하나도 안 터졌다. 그리고 관광안내소에 가서는 여권에 모나코 왕국과 여행 날짜가 적힌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4. 걸어서 성당까지

그레이스 캘리가 결혼했다는 성당까지 걸어갔다. 약 30분 넘게 걸은 것 같은데 막상 성당은 미사를 보는 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도 아름다운 외관을 구경할 수 있었고, 내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만족스러웠다. 믿음이 있는 같이 여행을 간 친구들은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때문에 좀 힘들긴 했다.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서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 명은 사실 친구가 아니라 다른 과 언니고 다른 한 명은 같은 과 동기였다. 과 동기는 원래도 친했지만 다른 과 언니는 시앙스포에 함께 오게 되며 처음 만났는데도 우리 셋은 너무 좋은 여행 메이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깊은 얘기들까지도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며 걸은 시간은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어딘가를 꼭 가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여행을 다녔고 가는 길에 있는 예쁜 상점에는 들어가서 구경도 충분히 했다. 

그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다는 느낌

오기 전부터 블로그를 뒤지며 맛집을 찾는 과정 없이 도장을 받으러 들른 곳의 현지인에게 맛있는 곳을 추천받아서 저녁을 먹을 장소도 정했다. 내 친구도 조금씩 이런 여행이 끌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괜히 내가 더 뿌듯한 순간이었다. 아름답다는 말보다 더 잘 표현하기가 힘든 항구를 높은 곳에서도, 바로 옆에서도 보고 많이 걸어서 허기진 상태로 추천받은 식당에 갔다. 


5. Brasserie de Monaco에서 저녁 후 몬테카를로 카지노

분위기는 클럽 뺨치는 곳이었다. 야외 테라스가 날씨가 좋아서인지 꽉 차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안에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널찍하고 좋은 노래가 나오는 시원한 내부도 충분히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정말 기억에 남는 음식은 라비올리!!!!!! 라비올리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게 친구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만두 같은 음식이라는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안에는 친구가 많이 좋아하는 바질과 모차렐라 치즈가 듬뿍 들어가 있었다. 베어 무는 순간 향긋한 바질과 쭉 늘어나는 짭조름한 모차렐라 치즈가 따라 나와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신 자아냈다. 말도 안 되게 맛있는 맛! 그리고 또 맛있던 것은 스테이크와 함께 나온 얇은 감자튀김. 두꺼운 감자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너무 바삭하고 딱 알맞은 감자튀김이었다. 피자는 원래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내 기준으로는 많이 먹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정말 맛있는 피자였던 것 같기는 하다. 신나는 레스토랑 분위기를 수제 맥주와 언니의 와인으로 한껏 즐기고 나와서 맡은 바람 냄새, 모나코의 공기 냄새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어두워진 항구의 야경을 보며 돌아온 곳은 몬테카를로 카지노. 낮에도 궁전 같은 외관을 뽐냈었는데, 야경은 그보다 더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드레스코드가 있는 줄 알고 입장을 망설였지만 카지노에 들어가 보는 게 소원(?)이었던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다 함께 들어갔다. 더 다양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은근 strict 한 드레스코드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슬롯머신이 있는 곳까지밖에 못 들어갔다. 하지만 카지노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었던 건물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압도했다. 아름다운 벽면과 건축물 자체를 흠뻑 즐기다가 나올 수 있었다. 


6. 기차 타고 다시 니스로

긴 하루 끝, 슬슬 지친 몸을 안고 기차를 다시 타서 니스로 돌아왔다. 빠르게 에어비앤비에 도착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례로 씻고 잠들었다. 낮까지만 해도 그다음 날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지만 비 소식은 온데간데없고 맑음이라는 표시가 떠 있었다. 날씨의 여신임을 자부하며 설렘을 가득 안은 채 잠에 푹 들었다. 해가 떨어진 니스는 은근히 추웠다. 자면서 얇은 이불이 너무 추워서 두어 번씩 친구와 번갈아 가면서 깼다. 그래도 즐거웠던 모든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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