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앙스포 교환학생 일기 #4
시앙스포의 수업 수강 신청은 서울대와 비슷하게 선착순으로 진행되었다. '충분한 여유'라는 테마로 교환학생을 와서인지 시간표를 짤 때도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여유롭게 짜고 싶었다. 그럼에도 이것저것 흥미로워 보이는 수업과 언어 수업까지 넣고 나니 대략 권장 학점수가 나오기는 했다. 시앙스포의 수업의 종류에는 10 ECTS인 lecture 수업, 5 ECTS인 seminar 수업, 5 ECTS인 language course, 2 ECTS인 art/sport 수업들이 있다. Lecture 수업은 인정해주는 학점수가 큰 만큼 일주일에 2번, 각각 lecture과 conference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이번 학기에 선택한 수업은 총 5개.
- lecture: Introduction to Public International Law
- seminar: Sustainable Development Law, Global Europe? (물음표가 포함된 게 과목명이다)
- language: French A1
- art/sport class: painting workshop
이렇게 종류별로 골고루 5개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화요일에 수업 하나, 수요일에 수업 하나, 목요일에 수업이 다섯 개라는 사실이다. 화, 수, 목에 수업을 몰아놓고 금요일부터 월요일이나 화요일 오전까지는 여유롭게 여행을 다니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는 시간표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9월 한 달 동안 잡아 놓은 여행만 니스, 리스본/포르투, 뮌헨으로 3개이다.
그렇기에 공식 개강일은 9월 2일이었지만 내 개강은 9월 3일이었다. 8월 30일에 파리에 도착해서 며칠 동안 학교를 안 가다 보니 오후 5시에 있는 첫 수업을 가기 직전에는 새 학교가 어떨지 기대하는 새내기가 된 심정이었다. 설렘을 가득 안은 채로 첫 등교를 해보았다. 첫 수업은 French A1 수업. 즉, 프랑스어를 배운 경험이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 프랑스어 수업이었다. 수업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같은 강의실에서 막 끝난 수업을 가르치는 프랑스어 선생님을 마주쳤다. 프랑스어를 배우러 왔냐고 질문을 하시길래 반짝반짝한 눈으로 그렇다고 대답했고, 격려의 말을 들었다. 기분 좋게 앉아서 기다리다 옆에 앉은 중국 친구와 몇 마디를 나누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든 학생들이 왔고 선생님도 오셨다. 들어오자마자 선생님께서 수업은 프랑스어로 진행할 것이라고 하셨다. 프랑스어 수업을 프랑스어로 진행한다, 심지어 기초 프랑스어 수업을 프랑스어로 진행한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걱정이 앞섰다. 걱정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다들 '내 이름은 ~이다'와 '나는 ~에서 온 학생이다' 정도의 표현만 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모두의 자기소개는 비슷했다. 역시나 20명이 넘는 수업에는 스페인, 독일, 브라질, 미국, 뉴질랜드, 중국, 미얀마, 태국, 한국 등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다. 석사 과정에 유학을 온 외국인들과 나와 같은 교환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프랑스어를 프랑스어로 배우기 때문에 웃긴 에피소드가 꽤 많았다. 일단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때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공유하는 것은 기본, 모두가 눈치로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프랑스어로 '취미'가 무엇인지와 취미의 예시가 무엇이 있는지 수영 등 몇 가지를 칠판에 쓰신 뒤에 미국에서 온 친구 한 명에게 '너의 취미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셨다. 그러자 그 친구는 '아니긴 하지만 칠판에 쓰신 그거로 할게요. 저 수영 좋아해요.'라고 대답해서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웃은 친구들도 모두 다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긴장을 놓지 못했지만. 독일에서 온 친구와 자기소개를 서로 하면서 잡담도 나누고 수업이 끝난 뒤에 집에 오는 길에 또 수업에 있던 다른 중국인 친구와 프랑스어 수업을 프랑스어로 진행하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다. 다양한 친구들과 첫 만남을 가진 즐거운 날이었다.
그다음 수업은 수요일 오후 5시의 public international law (conference) 수업이었다. 이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까지는 옆에 앉은 스페인 친구와 small talk를 나누었다. 그리고 시작된 수업에 대한 인상은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수업은 아주 유익해 보였지만 노교수님은 굉장히 어려운 법률 용어들을 설명 하나 없이 말씀하셨고, syllabus에 있는 주제들 중 아는 국제법 주제는 단 한 개도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첫 수업부터 각자 발표할 주제를 정해야 했는데 아는 주제가 없으니 교수님께서 매우 흥미롭다고 하신 주제를 그냥 골랐다. 그 주제로 한다고 대답한 뒤 아차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기소개를 하면서 더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Law firm에서 일하다 온 학생, UN에서 일하다 온 학생, 본인 나라에서 law school을 다니는 학생, 그리고 나와 같이 그냥 정치/외교 공부를 하는데 법을 조금 접해본 친구들 등 다양한 범위의 법적 지식을 가진 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걱정이 되기도 했던 수업이었다. 당장 리딩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듣고 조금 부담도 되었지만 다른 수업들은 이 정도로 부담되지는 않겠거니 하며 빠르게 집으로 돌아가 함께 사는 사람들과 한식을 요리해 먹었다.
목요일은 대망의 5 연강이 있는 날. 연강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바짝 긴장했다. 물론 첫 주는 미술 수업이 없어서 4 연강이기는 했다. 순서는 sustainable development law-introduction to public international law (lecture)-global europe?-frech a1. 첫 세미나 수업이었던 sustainable development law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다. 교수님도 너무 좋았고 한 학기 내내 다룰 내용도 너무 알차 보였다. 일단 각자 출신 나라의 지속가능 발전법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고 이를 비교하는 토론을 한다고 했다. 나는 자동으로 한국에 대한 발표를 다른 학교에서 온 한국 친구와 함께 하게 되었다. 30명가량의 친구들이 있었는데 총 21개국. 숫자를 들으니 순간적으로 벅차올랐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이 모여있는 곳에서 비교법에 대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정말 생생하게 각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토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상 깊었던 말 중 하나는 국적은 중국인인 친구 한 명이 손 들고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 영국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저는 어떤 나라에 대한 발표를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이 외에도 press review,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 적지 않은 로드가 있는 수업이었지만 명쾌하고 밝으신 교수님 덕분에 앞으로가 기대되었다.
이다음 이미 conference를 진행한 수업의 lecture을 들으러 갔는데 다행히도 이 수업은 앞의 수업과 같은 빌딩에서 진행되었다. 느긋하게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옆에 앉은 미국에서 온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주고받았다. 이렇게 한국보다 자유롭게 옆에 있던 친구들과 한 두 마디씩 하는 게 small talk여서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새롭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내 마음에는 여유가 자리 잡았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많이 컸다는 생각도 양가적으로 드는 순간이었다. 곧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전날 conference수업에서 받은 충격보다는 덜했던 것이, 적어도 교수님께서 한 두 가지 concept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넘어가 주셨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다음 연강을 위해서 달려서 global europe?을 들으러 갔다. 오타가 아니라 물음표가 실제로 강의명에 포함되어 있는 수업이다. seminar 수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50-60명이나 있는 것 같았다. 이 수업은 서울대에서 함께 온 친구 한 명과 같이 수업을 듣기 때문에 옆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 전 모든 수업에서 한 자기소개를 똑같이 되풀이하고 수업은 시작되었다. 교수님은 유럽 정치와 관련해서 좀 유명한 분이시라고 했다. 정확히 어떤 면에서 유명하신지는 수업을 들으면서 공유해보도록 하겠다. 노트북은 이용하지 않고 손필기를 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 우리 과 교수님 중 한 분을 떠올리게 했다. 다들 노트북을 집어넣고 다시 아날로그 필기를 하며 수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전 학기에 유럽지역 연구 수업에서 '유럽연합이 어떻게 유럽 외 지역에도 유럽의 norm을 확산시켰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루었었다. 비슷한 질문을 교수님께서 중간에 던지셨고 입이 근질근질했던 나는 2-3번의 다른 친구들의 시도에도 정답이 나오지 않자 손 들고 아는 내용을 모두 발표했고 교수님께서는 정확한 예시라고 대답해주셨다. 앞으로의 수업들에서도 조금 떠들 자신이 생긴 순간이었다.
아쉽지만 수업이 끝난 뒤 마지막 수업을 들으러 15분 내내 뛰어 가까스로 도착했다. 확실히 일주일에 2번 듣는 수업은 친구들이 금방 익숙해지는 것 같다. 몇몇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또 새로 옆에 앉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프랑스어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수업에 대한 충격은 여전했지만 조금 익숙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프랑스어 수업을 끝으로 개강 첫 주는 마무리되었다.
다양함, 그 자체로도 순간순간 벅차오르는 순간들이 여럿 있던 한 주였다. 놀 생각으로 교환을 왔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하고 돌아가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공부가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긴장되고 바빴던 한 주가 모두 끝난 뒤 금요일 점심, 내 버디를 만나기로 했다. 한국의 학교에도 교환학생들을 만나는 동아리가 있는데 시앙스포에서도 학생들이 동아리 차원에서 버디를 교환학생들과 매치해주었다. 프랑스어로 수업을 안 듣는 나로서는 생각보다 프랑스 친구를 만나기가 어려웠는데, 이 프로그램 덕분에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이 친구와는 뤽상부르 공원에서 만나서 picnic의 형태로 의자에 앉아서 햇살을 받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친구의 고향, 시앙스포 입시 방법, 전공, 한국에 대한 이야기,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 아시아 이야기, 유럽 이야기, 프랑스와 다른 나라들의 비교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아름다운 뤽상부르 공원 같은 공원들이 도심 한가운데 많이 위치해있다는 사실이 너무 부러웠다. 꽃도 다양한 색깔을 뽐내고 있었고 뤽상부르 궁전은 정말 아름다웠다. 내 버디는 'Jardin du Luxembourg is one of my favorite places'라고 소개했었다. It's going to be one of my favorites, too.
It's going to be one of my favorites, t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