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댁 시골집에 오면 남편과 나는 우리 집에서는 잘하지 않는 요리를 한다. 바로 파이와 잼이다. 나름 시간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기에 평소에 안 하기도 하지만, 시댁 시골집에 오면 시골집 정원과 근처 밭과 농장에서 난 신선한 재료들로 만들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근처에 마트도 없지만, 정원에서 나는 과일을 통해 잼과 파이에 필요한 주요 재료를 모두 구할 수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마을에서 공용으로 관리하는 밭이 있는데, 마을에 사는 누구나 그때그때 밭에서 나는 채소와 과일을 무료로 따올 수 있다. 모두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고 다른 이들을 위해 남겨둔다. 또 필요하면 이웃끼리 물물교환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곳에서 나는 농작물들은 천연으로 키운 것들이 대부분인데, 맛이 마트나 시장에서 파는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 토마토가 이토록 찐한 단맛을 품고 있는지 처음으로 알았고, 헤이즐넛 열매의 향기가 얼마나 진한지 알 수 있었다. 정원에서 나는 사과와 미라벨도 입에 넣는 순간 향기로운 달콤함이 몰려온다. 분명히 안다고 믿고 있는 맛이었는데, 내가 알던 맛이 진짜 맛이었나라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시골에 오면서 배운 또 한 가지 사실은 훌륭한 재료에서는 좋은 요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이것저것 가미하지 않아도, 재료 그 자체가 요리가 되기도 한다. 토마토에 올리브 오일만 살짝 뿌려도 감탄을 자아내는 전식이 되고, 정원에서 난 과일들로 향긋한 잼과 파이가 만들어진다. 며칠 이렇게 먹고 가면 몸뿐 아니라 왠지 마음도 조금 더 건강해져서 가는 느낌이다.
‘진짜 맛’을 누리는 행복은 기다림에서 온다. 정원과 밭에서 모두 제철이 돼야만 나오고, 근처 농장에서도 제철채소와 과일만 팔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과일이나 채소를 마트에서처럼 계절과 무관하게 골라서 먹을 수는 없다. 이곳 시골에서는 그 기다림을 당연하게 여긴다. 시어머니도 말했다. “모든 사람이 제철을 기다려서 먹는다면. 기다림 덕분에 먹는 기쁨이 두 배가 될 텐데.”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이라 모든 것이 조금 느려도 괜찮다.
시간이 흘러 나무에 탐스러운 사과와 미라벨이 열리고 헤이즐넛 열매가 정원에 떨어지면, 우리는 과일과 헤이즐넛을 바구니에 주워 담는다. 남편은 식사 후 디저트로 먹을 애플 헤이즐넛 파이를, 나는 만들어서 가져갈 미라벨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옆에서 레시피를 가르쳐 주었다. 이 잼 덕분에 파리에 돌아가서도 얼마 동안은 커피와 함께 행복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작은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남편도 사과 껍질을 벗기고 자른 후 반죽 위에 얹으며 열심히 파이를 만든다. 파이는 어느새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오븐에서 나왔다. 오븐에서 이제 막 나온 파이에 뿌린 살짝 볶은 헤이즐넛의 달콤한 향이 사과의 상큼함과 섞이며 자연스레 파이에 스며 들어갔다. 모두들 감탄을 반복하며 먹었다. 남편의 손에 들어가면 그 어떤 재료도 훌륭한 요리가 되어 나오지만, 이제 막 떨어진 사과와 헤이즐넛으로 만들었는데 맛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 오면 모든 게 시간이 걸린다. 요리를 하는데도 밥을 먹는데도. 도시와는 다르게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 우리도 자연스레 느린 리듬으로 살아간다. 자연의 ‘진짜 맛’을 음미하고, 정성과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하고. 드넓은 자연 속으로 긴 산책을 떠나기도 한다. 잠들기 전에는 모두 모여 앉아 코냑 한 잔과 함께 오랜 대화를 나눈다.
시간을 아끼는 법만 배우고 살았다가,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