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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28. 2019

애플 헤이즐넛 파이와 미라벨 잼

프랑스 시댁 시골집에 오면 남편과 나는 우리 집에서는 잘하지 않는 요리를 한다. 바로 파이와 잼이다. 나름 시간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기에 평소에 안 하기도 하지만, 시댁 시골집에 오면 시골집 정원과 근처 밭과 농장에서 난 신선한 재료들로 만들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근처에 마트도 없지만, 정원에서 나는 과일을 통해 잼과 파이에 필요한 주요 재료를 모두 구할 수 있다.


ⓒ 주형원

멀지 않은 곳에 마을에서 공용으로 관리하는 밭이 있는데, 마을에 사는 누구나 그때그때 밭에서 나는 채소와 과일을 무료로 따올 수 있다. 모두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고 다른 이들을 위해 남겨둔다. 또 필요하면 이웃끼리 물물교환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곳에서 나는 농작물들은 천연으로 키운 것들이 대부분인데, 맛이 마트나 시장에서 파는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 토마토가 이토록 찐한 단맛을 품고 있는지 처음으로 알았고, 헤이즐넛 열매의 향기가 얼마나 진한지 알 수 있었다. 정원에서 나는 사과와 미라벨도 입에 넣는 순간 향기로운 달콤함이 몰려온다. 분명히 안다고 믿고 있는 맛이었는데, 내가 알던 맛이 진짜 맛이었나라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시골에 오면서 배운 또 한 가지 사실은 훌륭한 재료에서는 좋은 요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이것저것 가미하지 않아도, 재료 그 자체가 요리가 되기도 한다. 토마토에 올리브 오일만 살짝 뿌려도 감탄을 자아내는 전식이 되고, 정원에서 난 과일들로 향긋한 잼과 파이가 만들어진다. 며칠 이렇게 먹고 가면 몸뿐 아니라 왠지 마음도 조금 더 건강해져서 가는 느낌이다.


시골 밭


‘진짜 맛’을 누리는 행복은 기다림에서 온다. 정원과 밭에서 모두 제철이 돼야만 나오고, 근처 농장에서도 제철채소와 과일만 팔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과일이나 채소를 마트에서처럼 계절과 무관하게 골라서 먹을 수는 없다. 이곳 시골에서는 그 기다림을 당연하게 여긴다. 시어머니도 말했다. “모든 사람이 제철을 기다려서 먹는다면. 기다림 덕분에 먹는 기쁨이 두 배가 될 텐데.”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이라 모든 것이 조금 느려도 괜찮다.


시간이 흘러 나무에 탐스러운 사과와 미라벨이 열리고 헤이즐넛 열매가 정원에 떨어지면, 우리는 과일과 헤이즐넛을 바구니에 주워 담는다. 남편은 식사 후 디저트로 먹을 애플 헤이즐넛 파이를, 나는 만들어서 가져갈 미라벨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옆에서 레시피를 가르쳐 주었다. 이 잼 덕분에 파리에 돌아가서도 얼마 동안은 커피와 함께 행복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작은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만들고 있는 미라벨 잼


남편도 사과 껍질을 벗기고 자른 후 반죽 위에 얹으며 열심히 파이를 만든다. 파이는 어느새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오븐에서 나왔다. 오븐에서 이제 막 나온 파이에 뿌린 살짝 볶은 헤이즐넛의 달콤한 향이 사과의 상큼함과 섞이며 자연스레 파이에 스며 들어갔다. 모두들 감탄을 반복하며 먹었다. 남편의 손에 들어가면 그 어떤 재료도 훌륭한 요리가 되어 나오지만, 이제 막 떨어진 사과와 헤이즐넛으로 만들었는데 맛있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의 손에서 요리되고 있는 애플 헤이즐넛 파이

 

이곳에 오면 모든 게 시간이 걸린다. 요리를 하는데도 밥을 먹는데도. 도시와는 다르게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 우리도 자연스레 느린 리듬으로 살아간다. 자연의 ‘진짜 맛’을 음미하고, 정성과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하고. 드넓은 자연 속으로 긴 산책을 떠나기도 한다. 잠들기 전에는 모두 모여 앉아 코냑 한 잔과 함께 오랜 대화를 나눈다.


시간을 아끼는 법만 배우고 살았다가,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법을 배운다.


ⓒ 주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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