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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Dec 12. 2019

촉촉한 솜사탕 하루  

일주일째 파리 지하철은 파업 중이다.

오전 세 시간, 오후 세 시간.

그것도 네 대 중 한 대만 운영한다.

평소 출퇴근 길도 지옥철이었지만

지금은 지옥철이 아니라 그냥 지옥이다.

누구 하나 깔려 죽거나 호흡 마비로 졸도한 사람이 없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일주일째 이런 상황이니 모든 지하철 승객의 얼굴에는 피로와 짜증으로 가득하다.

갑자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 지하철의 종점은 천국의 섬입니다."

"다음 정거장은 보라보라섬이고요."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푸른 바다와 뜨거운 태양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하철에 있던 나를 비롯한 지하철 모든 승객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이런 안내 방송에도 짜증을 낼 수도 있었다.


'아니 지금 누구 놀리는 거야! 한 겨울에 비도 오는데.. 이 추위에 지하철도 안 다니고.

하루 종일 힘든 일에 치이고 들어가는 길인데, 너무 끼어서 숨도 못 쉬겠는데 말이야.'

 

하지만 승객 누구의 얼굴에도 짜증이 아닌 미소가 번졌다.

나도 그랬듯 아마 이 순간만큼은 모두 다 정말 보라보라 해변에 있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반짝이는 해변과 따뜻한 햇살. 단지 상상만 한 것뿐인데도 행복해졌다.

유독 힘들고 고단했던 오늘 하루가 잠시나마 솜사탕처럼 달디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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