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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May 15. 2020

80일 만에 만난 세상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그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세계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렇게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어도, 80일 동안 강제로 집에만 있을 날이 오리라고는 꿈도 꾼 적이 없다.

국가 봉쇄가 풀리는 첫날.


새벽에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온갖 이유 모를 두려움과 걱정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거리에는 세상을 다 잠길 듯 비가 세차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저 비가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모든 코로나 바이러스를 깨끗이 청소해 주면 좋겠다.’

월요일은 여전히 재택근무였다. 정부는 5월 말까지는 재택근무를 권장했고, 회사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출근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다. 일어나서 우중충한 날씨를 보니 되려 기분이 우울해졌다. 그동안 아침마다 들리던 새소리 대신 차 소리가 들렸다.

둘째 날.


남편과 집에서 4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한인 마트에 걸어서 다녀오기로 했다. 80일 만에 처음으로 집에서 1킬로미터 이상을 벗어나는 거였다. 왕복 두 시간을 걸어야 하는 거리지만, 우리는 걷는 것에 굶주려 있었다. 동네를 벗어나자 마음의 보이지 않던 옥쇄가 풀린 것처럼 엄청난 해방감이 몰려왔다.


거리에는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있었다. 두 달 만에 문을 연 상점들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도로에 차들과, 거리에 사람들을 보는 게 신기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것은 소리였다. 거리의 차 소리, 오토바이, 자전거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 누군가의 차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지난 두 달 동안 나가지 못하는 게 힘들지 적막이 힘들다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이 일상의 소음들이 눈물 나게 반가웠다. 꿈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내가 아는 세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한인 마트에 가서 우리는 순대와 떡볶이 그리고 막걸리와 소주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왕복 8킬로미터, 두 시간 가까이 걸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게 실망스러웠다. 순대와 떡볶이를 차려 놓고 봉쇄 해지를 축하하며, 남편은 웃으며 막걸리로 토스트를 했다.

“봉쇄에서 살아남은 우리의 사랑을 위해”

장난기 많은 남편의 말은 농담이었지만, 실제로 봉쇄 이후 프랑스 열 커플 중 한 커플이 거리를 갖고 싶어 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사회적 거리가 아닌 사랑의 거리였다. 80일 동안 24시간을 한 공간에서 보내는 것보다 더 확실한 사랑 테스트가 어디 있을까.


지난 두 달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했다. 남편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내가 우울해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남편은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며 늘 기운 나는 말들만 해주었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도. 못 나가는 갑갑함도.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도. 고스란히 남편에게 전달됐지만.


남편은 항상 부정적인 것들도 긍정적으로 바꿔서 반사하는 힘이 있었다.


두 달 만에 출근을 하는 셋째 날.


설레서 새벽 일찍 저절로 눈이 떠졌다. 출근이 이토록 설레고 두근거리는 일이라는 걸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지하철을 타로 가는 길이 마치 처음 비행기 타던 때처럼 설레었다. 파리 대중교통에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고, 한자리 건너서 한자리에는 ‘모두의 건강을 위해 이 자리는 앉지 마세요’라고 써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모두 다 완벽하게 이 규칙들을 지키고 있었다. 사실 당연한 거지만, 신호등 빨간 불도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는 프랑스에는 놀랄만한 일이었다. 두 달 동안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지하철이 흔들릴 때마다 속이 조금 울렁거리는 거 같았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들리던 카페는 닫혀있었다. 카페와 바는 여전히 영업 금지이고 식당은 테이크 아웃 혹은 배달만 가능하다. 예전처럼 단골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려면 아직 멀었을 것이다.


회사에 도착하니 나와 상사밖에 없었다. 의무가 아닌 자발적으로 출근하고 싶은 사람만 나오라고 해서인지 거의 대부분 재택근무를 택한 거 같았다. 우리는 마치 사막에 불시착한 사람들처럼 사무실에서 외쳤다.


“아무도 없어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두 달 동안 하루에도 서너 번씩 통화를 하며 많은 일을 진행하고 안부를 물으며 서로 용기를 주던 상사이자 친구인 그녀를 보자 감격스러웠다.


점심시간에 회사 앞 단골 초콜릿 가게를 들렸다. 아주머니는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며 말했다. “손님들을 다시 보니까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두 달 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지냈어요. 마치 두 달이 하루처럼 갔어요. 이제까지 하고 싶었던 것들도 하고요.”

나 역시 봉쇄 동안 이것저것 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 절반도 못하고 이 기간을 보낸 거 같아 아쉬웠었다. 초콜릿 가게의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며, 하고 싶은 걸 원 없이 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그녀가 부러웠다.


봉쇄 초기에만 해도 이럴 때 글도 더 쓰고, 사진 앨범도 만들고 해야지 하며 야심 찬 계획들을 세웠지만. 정작 일하는 시간 말고 많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대신 원 없이 자고, 몇 년 만에 드라마 정주행도 하고, 남편과 저녁마다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생산적인 활동이라고는 일과 브런치 빼고는 한 게 없지만. 긴 시간을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버틸 수 있었다는 것.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감사한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한 시간 넘게 걸었다. 모든 게 다시 보이고, 새롭게 들렸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가도 새삼스럽게 느껴졌고, 원 없이 걸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했다.


지난 80일간의 격리 기간도 오랫동안 잊지 못하겠지만, 80일 만에 만난 지금 이 세상은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이제 세계 여행은 안 해도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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