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짙푸른 파도로 덮칠 때가 있다.
슬퍼야 할 이유는 없는데
정체 모를 상실감에 짓눌려,
온종일 허우적거린다.
인정사정없이 밀려드는 파도에
붕 떴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며,
연거푸 온몸으로 들이마신다.
눈감으면 툭하고 떨어질 방울에 매달려,
부르지 않아도 찾아오는 너를 생각한다.
슬퍼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슬픔을 반기지 못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파도처럼 물거품으로 사라질 텐데.
네가 내 안에 머무는 동안은
불청객 취급을 잠시 멈추기로 한다.
너에게 몸을 맡기고 풍덩 빠져보지만
생각보다 깊게 가라앉지는 못한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몸이
파도를 뚫고 고개를 쑥 내밀더니,
반짝이는 은빛 바다를 유유히 가로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