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한 달 전 브런치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지방 출장 중이었고 낯선 방에서 밤을 보내야 할 때면 늘 그렇듯 쉬이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야 했지만 멀뚱멀뚱한 정신으로 휴대폰을 들여보고 있었다.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초저녁에 도착해서 내일 촬영할 장소를 먼저 가보고 오느라 깜깜해져서야 도착한 호텔이었다. 촬영을 하는 곳은 산속 마을이라 그곳에서 차로 삼십 분 정도 걸리는 공업 단지에 호텔을 잡았는데, 우리처럼 출장을 오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호텔이라 어딘가 모르게 차가웠다.
백여 개의 객실이 있는 결코 작지 않은 호텔이었는데 국가 봉쇄 중이다 보니 어쩌다 우리는 그 호텔의 유일한 숙박객이 되었다. 우리의 체크인을 위해 일부러 잠시 출근한 호텔 직원도 돌아가고 텅 빈 호텔에 덩그러니 남게 되자 기분이 묘했다. 국가 봉쇄 중에 이렇게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한 호텔에 있는 것도. 그 호텔의 유일한 숙박객이 돼서 밤을 보내는 것도. 비현실적이었다.
조금 두려웠지만 방으로 들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앉자 따뜻한 물 덕분에 풀린 피로와 긴장 덕분인지 두려움이 눈처럼 녹었다. 밤나무로 유명한 아름다운 지방에 와 있었고, 내일은 그토록 고대하던 방혜자 화백님의 촬영이었다. 그때 메일 알람이 떴다.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습니다'
삼 년 가까이 브런치를 하다 보니 벌써 몇 번 같은 제목의 메일을 받아보았다. 그중에는 출간 제안 메일도 있었고 그 메일은 <사하라를 걷다>의 출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부분은 물론 출관과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이 메일도 출간은 아니지만 뭔가 반가운 소식을 담고 있을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제 찾았네..나 00여고 Y이야..기억나지?
고3때 강원도 여행 같이갔던 이후로 한 십칠년만인가?
근데 그때가 아직도 엊그제같다는 거?ㅋ
근데 구글검색으로 너를 찾아낼만큼 유명인이 되어 있다니!
여튼 지구반대편 어딘가에서 너가 잘 살아가고 있어서 정말 좋다..
기억속에 너랑 같이 했던 일상이 가끔씩 떠올라서 그립더라구..
난 졸업후에 스위스계 제조회사에서 해외영업하면서 불친절한 유럽사람들을 고객으로 모시고 있는 그렇고 그런 월급쟁이야!
너의 생생한 이야기는 앞으로 글로 만나볼게~
추운겨울 항상 코로나 조심하고 행복하렴 멀리서 응원하마.
ㅡY
Y는 나의 고등학교 단짝이었다. 그녀와 나는 정말 달랐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성격의 그녀는 반에서 항상 일위를 다투던 모범생이었지만. 나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이상적이었으며 다른 길을 가겠다고 스스로 선포하고 좋아하는 공부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 우리는 둘 다 고등학교 삼 학년 일 학기에 수시로 대학을 붙었다. 그녀는 우수한 내신으로 나는 특기자로. 수시 일 학기를 합격하자 학교에서는 우리에게 더 이상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마 수능을 준비하는 다른 친구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의 업무를 보조했다. 주로 행정 업무였다. 선생님들과 같이 점심시간에 짜장면을 비벼 먹으며. 더 이상 학생도 그렇다고 학생이 아니지도 않은 채로 한참 수능 준비로 힘들어하던 친구들에게 알게 모르게 미안하던 그런 시기였다.
그때 그녀가 제안을 했다.
"함께 강원도 여행가지 않을래?"
그렇게 우리는 속초로 떠났다. 내 생의 첫 속초 여행이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속초로 떠났지만, 그때 그녀와 열여덟 그 풋풋했던 시절에 떠났던 강원도 여행이 가끔 떠오르고 그리웠다. 아직 스마트 폰이 없던 때라 우리는 지도를 보며 찾아다녔는데, 그때 어버이 순대도 처음 먹어보고 송혜교와 송승헌이 출현했던 가을동화 촬영지도 찾아갔다. 지도를 보다가 '떡마을'이라는 이름을 보고 떡 먹을 생각에 혹해서 제안했다.
"우리 여기 가자"
그렇게 버스를 타고 내려서 떡마을에 도착했다. 떡 먹을 생각에 그저 신이 나있던 우리에게 동네 슈퍼 아주머니는 청전 병력 같은 소리를 하셨다. 속초로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가 방금 전에 떠났다는 것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 다니는 버스가 하루에 몇 대 되지 않고 그것마저 빨리 끊길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한 탓이었다. 당황하던 우리에게 그곳에서 떡을 먹고 있던 한 그룹이 자신들도 속초로 돌아가니 태워주겠다고 했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그들의 검정 봉고차에 타자 검은 정장을 입고 있던 이들은 영화에서 보던 조직 폭력배를 연상케 했다. 이러다 어디로 팔려가는 거 아닌가 싶었다. 이미 차는 출발했고 위기의 상황에서 어떻게 친구와 함께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우리의 불안을 감지했느지 그들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지금은 없어진 금강산 관광 배의 출국 심사를 위해 출장 온 출국 심사원들이었다.
금강산 관광 배가 정기적으로 출항하던 때라 그들은 속초 출장이 잦았고 주변 맛집을 꿰뚫고 있었다. 무서웠던 첫인상과는 달리 재밌고 유쾌했던 그들과 저녁 식사도 함께하며 대화를 나눴다. 한참 사회생활을 하던 이십 대 후반의 그들에게 열여덟의 우리는 아이처럼 보였겠지만 진지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 와본 지방의 낯선 호텔에서. 자정 가까운 시간에 받은 메일 한통으로 열여덟의 그때로 돌아간 것이다. 나의 과거 혹은 현재와도 전혀 무관한 이토록 비어있는 공간에서 그때를 떠올린다는 게 조금 이상했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이후 그녀와의 연락은 대학에 들어간 후로 서서히 뜸해지다 결국 끊겼지만 그녀를 잊지는 않았다. 그녀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가끔 궁금했었는데, 그런 그녀에게 십칠 년 만에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말처럼 유명인도 아니고. 그녀도 그녀가 말한 것처럼 그렇고 그런 월급쟁이는 아닐 것이다. 그런 건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고 그녀와 함께 한 시간들을 엊그제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거였고. 그녀 또한 마찬가지라는 거였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그녀가 나를 찾아 연락을 해주었다는 것. 그게 고마웠다.
- Y에게
찾아주고 연락 줘서 정말 고마워
나 역시 종종 너랑 함께 했던 시간들과 강원도 여행을 떠올리며 그리웠어
우리가 친해졌던 고등학교 일 학년 제주도 수학여행도
야자 시간에 운동장에 다 같이 모여 폭죽을 터트렸던 이학년 때 너의 생일도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체육복 바지를 입고 달려가던 급식소도
모두 정말 너의 말대로 엊그제 같아
언젠가 얼굴 보며 이 모든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너 역시 이 추운 겨울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