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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Dec 13. 2020

밥벌이와 글쓰기의 줄다리기

'로봇이 아닙니다'를 클릭하자 내가 로봇이 아님을 확인했다고 초록색으로 체크가 된다. 안도도 잠시. 화면은 여전히 넘어가지 않은 채 다음 메시지가 뜬다. '카카오 계정 혹은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입력한 내용을 다시 확인해 주세요.' 웬만한 비밀번호를 다 넣었지만 벌써 열 번도 넘게 브런치 접속에 실패하고 이 메시지만 야속하게 계속 뜨고 있다. 한 달 가까이 쓰지 못했던 공백의 시간은 기억의 공백이 되었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거나 독자분들이 남겨주신 댓글에 답할 때는 주로 휴대폰에 설치된 브런치 앱을 사용하기에 비번을 따로 입력할 일이 없다. 반면 글을 쓸 때는 노트북에서 접속하기에 비번을 매번 입력한다. 한 달 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접속을 시도하는데 비번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기존의 모든 비번을 넣어봐도 안 되자 해킹당했나, 라는 황당무계한 생각도 잠시 머리를 스쳤다.


지난 한 달 가까이 브런치에 새로운 글을 쓰지 못했다. 일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너무 바빴다. 바쁘다는 말은 어쩌면 핑계이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현재 제작 중인 다큐의 촬영이 프랑스와 한국에서 동시에 있었고, 그 와중에 이사까지 하게 되었다. 몇 주째 하루도 쉬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육체적으로 피곤한 만큼 정신적으로도 예민해지는 걸 느꼈다.


그중에도 쥐어짜듯 쓸 수는 있었겠지만,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음을 느끼는 상태에서 쓸 용기가 없었다. 그럴 때 쓰는 글들은 푸념과 하소연이 되기 십상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푸념과 하소연이라면 이미 주변에 충분히 하고 있기에 굳이 글에서 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기도 하고 실제로 감사할 일들이 훨씬 많다는 것도 안다. 이 시국에 바쁜 것도, 안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모두 감사한 일이다.




이럴 때는 글쓰기가 밥벌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글쓰기가 밥벌이 었다면 선택의 여지없이 쥐어짜서라도 써야 했을 테니까. 사실 대한민국에서 글쓰기로 밥벌이로 할 수 있는 작가는 손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 어차피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주제 파악을 진즉에 했고, 혼자가 아니기에 열심히 밥벌이를 하지만 몇 주 째 쓰지 못하니 글쓰기가 너무 그리웠다. 글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꿈꿔보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시간도 많아서 글을 쓰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다면. 그럼 나 같은 사람도 걸작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꿈에 잠겼다가 곧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경제적인 여유는 아직 가져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경험으로 비춰볼 때 남는 시간과 에너지가 넘친다고 좋을 글을 썼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문학 장르와 달리 에세이는 결국 삶에서 나오기 때문에 쓰는 이의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글에 담기게 되는데. 밥벌이는 삶의 그 어느 현장보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이익관계로 얽히고설키며 충돌하고 타협하고 협력하는. 수없이 부서지고 깨지며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과 천국을 경험하는. 울고 웃으며 성장하고 성숙하는. 여태껏 본 적 없는 돌아이도, 살면서 보기 힘든 좋은 사람도 만나며 싫으나 좋으나 함께 해야 하는 곳.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하고 예상치 못한 이로부터 도움도 받는 곳.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


지금 하는 일은 여태까지 중 하고 싶은 분야와 가장 맞닿아 있기에 밥벌이 훨씬 이상이지만, 그간 여러 직장을 전전하는 동안 일은 밥벌이었다.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했지만, 이상을 꿈꾸던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나 자신의 밥벌이를 하잖게 여기는 얄팍한 마음도 숨어 있었다. 먹고살아야 하기에 일을 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을 꿈꾸곤 했다. 그러다 잠시 일을 쉬며 좋아하는 일만 하려고 하면 정작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생존과 꿈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멈춘 삶에는 긴장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긴장감이 빠진 글은 마치 펑크 난 타이어 같았다. 펑크 난 타이어로 먼 길을 가기란 불가능했다. 하루 종일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을 때, 정작 삶의 이야기는 빈약했고. 빈약한 삶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훌륭한 작가님들은 글만 써도 얼마든지 좋은 이야기를 하실 수 있지만, 나는 그분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에 밥벌이를 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밥벌이를 하며 여러 상황을 겪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글감이 떠오른다. 글을 쓰는 순간 역시 노동의 순간이 아닌 유희의 순간이다. 글로 돈을 벌어야 했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글만 쓴다면 글로 조만간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생각에 자주 초조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게다가 여러 번의 이직을 거쳐 현재는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니, 밥벌이와 꿈의 거리가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셈이다.


그럼에도 종종 아쉬운 마음이 들고는 한다. 왠지 시간이 더 많으면, 덜 피곤하면, 경제적 부담이 없으면. 좋은 글을 마구마구 써낼 수 있을 것만 환영에 사로잡히는 순간이다. 물론 그런 순간은 어쩌면 인생에서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설령 온다 하더라고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로또라도  당첨되어 그럴  수 있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때도 과연 지금처럼 간절히 쓰고 싶을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고 소중한 까닭이 글만 쓸 수 없어서라는 역설적인 이유라면. 밥벌이가 좋은 이유가 그 덕분에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라면. 먹고사는 게 지긋지긋하다며 거기서 이야깃거리를 건져내고. 또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먹고사는 게 단지 고달프지만은 않다면.


밥벌이와 글쓰기 사이의 이 팽팽하고도 건강한 줄다리기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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