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작가를 포함한 여러 유명한 90년대생 작가들의 글쓰기 스승이자. 자신도 누구보다 훌륭한 작가인 어딘은 이렇게 썼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나는 종종 1주일에 한 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 이라고 말하곤 한다.'
3년. 지금까지 브런치에 글을 써온 시간이다. 삼 년 전. 독일의 작은 소도시에서 새해를 맞았다. 동생의 연주가 있던 낯선 도시에서 엄마와 동생과 함께 며칠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전날 밤, 한 해가 끝나고 어김없이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것에. 약간의 아쉬움과 많은 안도감을 섞어 스페인 와인을 마셨더니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지근지근 아팠다. 엄마와 동생이 아직 깨지 않은 틈을 타 세수도 하지 않고 조용히 거실로 갔다.
새해 결심은 하나. 글을 정기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쓰는 거였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 새해 첫날 눈을 뜨자마자 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새해발이 사라지면 이 결심도 눈 녹듯 녹을까 봐. 조금 더 누워있고 싶은 욕망을 이기고 몸을 일으켜 조심조심 커피를 탔다. 이른 아침. 처음 온 도시. 낯선 숙소의 식탁에 걸터앉아 브런치 응모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차분히 적어나갔다. 다음날 눈을 뜨니 메일 한 통이 와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 예상보다 빠른 답변에 조금 놀랬던 거 같기도 하고.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에 조금 설렜던 거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뛸 듯이 기뻤던 거 같지는 않다. 그랬다면 분명 기억을 할 테니. SNS 원시인인 내가 인터넷이라는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쓴다는 게 조금 두려웠고. 누가 내 글을 읽기는 할까, 라는 걱정도 살며시 들었다. 브런치 작가 승인은 어떤 출발점에 섰다는 걸 의미했는데.
이 출발점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 줄지도. 이 길을 얼마나 오랫동안 갈지도 알 수 없었기에. 막연한 설렘과 막연한 기쁨. 막연한 두려움 등의 감정으로 뒤범벅이 된 채, 파리로 돌아오는 그날 기차 안에서 브런치에 연재할 첫 글을 썼다. 첫사랑에 대한 글이었는데. 사랑에 대해 쓰고 싶다는. 그것도 아주 많은 이야기를. 늘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열망으로 쓴 첫 글이었다. 처음으로 발행할 글을 쓰며 첫사랑처럼 야릇한 설렘을 느꼈다.
목표는 단 하나였다. 일주일에 글 한편 써서 발행하기. 일주일에 글 한편도 안 쓰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외치는. 그런 부끄러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리한 목표를 잡으면 대부분 새해 계획이 그렇듯 얼마 안 가 와르르 무너질 수 있으니, 직장 다니면서 할 수 있는. 너무 부담이 가지 않은 선에서 잡은 목표였다. 계획을 세웠으니 시간과 공간 확보가 필요했다. 처음 육 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을 파리의 한 복층 카페에서 보냈다.
그 카페에는 토요일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두 대학생이 있었는데. 한 명은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었고, 다른 친구는 법학생이었다. 매주 거르지 않고 가다 보니 이 친구들과 제법 친해져서 한 친구의 한국어 숙제도 도와주고 다른 친구의 연애 상담도 하게 되었다. 토요일이면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글도 쓰고, 이십 대 풋풋한 친구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는. 그 재미가 쏠쏠해서 반년 가까이 쓸 수 있었다.
그 재미마저 없었다면 금방 포기했으리라. 반년 가까이 매주 꾸준히 한 편씩 쓰는 것에 비해 구독자는 전혀 늘지 않았다. 브런치 조회수 그래픽이 납작이 엎드려 있는 날들이 대부분이었고. 열명 언저리를 웃도는 구독자를 보며. 정작 작가 승인 때는 느끼지 못했던 브런치의 진짜 문턱을 실감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종종 찾아왔지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 계속 썼다.
그러다 그 해 하반기에 위클리 매거진 연재에 선정이 되고 구독자 수가 점차 늘어나며. 하트를 눌러주시는 분도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브런치에서 메인이나 다음 포탈에도 올려주셔서 가끔 조회수가 폭발하는 사건도 발생하고 구독자 수가 급증하기도 했으며. 위클리 매거진 연재로 출간 제안도 받아 두 번째 책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말하고 보니 브런치 덕을 많이 봤구나, 새삼 실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브런치 덕을 가장 많이 봤던 때는 작년이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삼 년째 되는 해였고. 일주일에 한 편 쓰기, 라는 그간 잘 지켜온 규칙을 가장 많이 어긴 해였다. 한 달. 두 달. 단 한 편의 글도 쓰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들이 자그마치 세 달이 넘었지만. 그럼에도 가장 진실되게 혹은 절실하게 썼던 해였다. 울지 않고 쓴 글들이 많지 않았는데. 슬퍼서도 아니었고, 자기 연민 혹은 동정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었다.
꽁꽁 언 얼음이 녹으며 물이 되듯. 글을 쓰면서 매번 내 안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녹는 걸 느꼈다. 그렇게 녹아가며 눈물이 되어 사라지는 과정을, 쓸 때마다 반복하며 알았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따뜻한 햇살이 될 수 있고. 얼어있는 마음 군데군데를 그 햇살이 비춰줄 수 있다는 것을. 봄이 와 녹은 땅에 푸르른 새싹이 자라듯. 쓰기 전에는 그 어떤 마음이었든지 간에, 글을 쓴 후 마음자리에는 어김없이 새순이 돋았다.
이 모든 것이 내 글만 쓰면서는 느끼기 힘들었을 것이다. 구독자분들이 남겨주신 고마운 댓글들을 읽으며. 그 댓글에 답을 쓰면서.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가도.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참으로 신기했다. 단지 단어와 단어가 만났을 뿐인데.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마음과 마음이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코로나와 함께 두 번의 국가 봉쇄를 겪으며. 만날 수 없어도 여전히 글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했다.
숙취에 커피 한 잔 들이붓고 낯선 도시에서 맞이한 새해 아침 브런치를 시작했던 삼 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내가 가지지 못했고 지금 내가 가진 가장 큰 다른 점은. 훗날 어디서 무얼 하든 평생 쓰겠구나,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다. 앞에서 언급한 작가 어딘은 말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나는 종종 1주일에 한 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 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곳이 도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는다.'
삼 년 전 브런치를 시작하며 어떤 출발점에 서있다고 느꼈다면. 삼 년이 지난 지금은 이제야 글쓰기의 진짜 출발점에 서있는 기분이다. 지난 삼 년은 어쩌면 도착지가 없을지도 모르는 이 길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 혹신 확신에 필요한 시간이었으리라. 모든 진정한 사랑의 길이 그렇듯. 큰 기쁨과 그만큼의 슬픔도 함께 할, 이 길의 출발점에 서서. 늘 함께 하고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