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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Oct 30. 2018

밥 대신 눈물을 삼킬 때   

 누군가 차려준 따뜻한 밥 한 끼

"종민 씨가 음식 삼킬 때. 왜 남자들이 눈물 삼킬 때 목 따가운 거 있잖아요. 그 목 따가움이 계속 이입이 되는 거야."


"맞아요. 식사 중반부터는 맛도 못 느꼈을 거예요"


출처:연애의 맛


참 뻔한 컨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간 노총각 연예인과 예쁘고 젊고 똑똑한 것도 모자라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사랑스러운 일반인 여성과의 연애 리얼리티. 그런 그들이 1박 2일로 여행을 가고 그녀가 서프라이즈로 그의 생일상을 준비한다는 것까지. 심지어 연애가 상품처럼 소비되는 이 시대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뻔한 이야기에 어느새 나는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건 연애 리얼리티 프로에서 이미 몇 번이나 등장해서 조금은 식상하기까지 한 생일상 차리기 이벤트에 감동해서가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김종민의 반응 때문이었다. 늘 방송에서 가볍고 장난기 많은 '바보 형'의 이미지로 보였던 전문 예능인인 그가 막상 자신을 위해 차린 음식들 앞에서 거의 아무 리액션도 하지 못하고 먹고만 있었다.


아니 먹고 있었다기보다는 삼키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하지만 그가 정말 삼키고 있는 것이 음식이 아니라 눈물이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스튜디오에 있던 패널들도 모두 느꼈던 거 같다. 남자가 눈물을 삼킬 때 느낀다는 '목 따가움'에 여자인 나도 이토록 이입이 되어 정작 당사자는 참고 있었던 눈물까지 흘렸으니 말이다.


출처:연애의 맛


그가 여느 때처럼 호들갑을 떠는 리액션을 반복하며 이 생일상을 맛있 게 먹어치울(?) 거라고 생각했던 모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신 그의 침묵과 어느새 적셔진 눈동자 앞에 패널들도 잠시 말을 잃었다. 화면 속 그에게서 보였던 건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예쁜 여자 친구가 정성스레 차려준 생일상 앞에 감동하는 한 남자만은 아니었다.


그 순간 예능인 김종민이 아닌 허기진 영혼이 잠시나마 채워진 한 인간이 보였다.


출처:연애의 맛


그는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생일상이라고 했다. '친구들하고 나가서 밥 먹는 정도지'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서도 볼 수 있듯 누군가 그를 위해 차려주는 음식과 나가서 사 먹는 음식은 엄연히 달랐다. 자칭 '연예계 대표 자취생'이라고 하는 그는 생일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누군가 자신을 위해 차려준 정성 어린 밥을 먹어 본 지 오래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출처: 냉장고를 부탁해


실제로 김종민은 이전에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곰팡이가 자라나는 냉장고를 공개한 적이 있다. 그는 라면이 자신의 주식이라며 냉장고의 음식들 대신 상온에 보관하고 있는 각종 브랜드의 라면 묶음을 보여주었다. 자취 경력이 십 년이 넘는 그가 평소에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출처: 미운 우리 새끼


그는 '미운 우리 새끼'에서도 건강을 챙기기 위해 산삼을 먹고 10가지가 넘는 약을 복용하지만 첫끼부터 라면으로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매일 빼먹지 않고 각종 비타민을 복용하면서 매끼 식사는 라면으로 때우는 그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만은 않았던 것은 왜일까? 그건 그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해 먹는 게 사치 혹은 시간 낭비가 돼버린 사회에서. 알약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연애도 연애의 감정도 모두 소비되는 사회에서. 영원히 허기진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누군가 해주는 정성 어린 밥 앞에서 그가 눈물을 삼킬 때 느꼈던 '목 따가움' 또한 함께 느꼈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밥을 먹으며 음식이 아닌 눈물을 삼켜 본 적이 있기에


출처:연애의 맛


그랬기에 그가 평생 기억에 남을 거 같다고 했을 때 난 그의 말이 예능인 김종민이 하는 말이 아닌 인간 김종민의 진심이라고 느껴졌다. 저 둘의 연애가 스크린 밖으로 나가서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만약 이 둘이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을지라도 오늘 그가 눈물 대신 삼킨 저 밥은 오랫동안 기억되리라는 확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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