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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Nov 04. 2018

짐 아저씨와 에그 샌드위치

퇴근하고 동역에서 동생을 보러 독일 가는 기차를 타기 전 마트에 들려 기차에서 저녁 겸 간단하게 먹기 위해 에그 샌드위치를 샀다. 평소에는 결코 먹을 일이 없는 에그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는데 계란에 간이 전혀 안 되어있는지 싱겁기 그지없었고 빵은 팍팍했다.


‘이 팍팍하고 심심한 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지’ 하면서 속으로 불평하는데 아주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짐 아저씨가 떠올랐다.


짐 아저씨는 내가 스무 살 초반 워킹 헐리데이로 일 년 동안 호주에 가서 일했을 때 알았던 노숙자 아저씨다. 그를 알았을 때 나는 멜버른 한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다. 장사를 하다 갑자기 변호사 되겠다고 로스쿨에 다니기 시작한 삼십 대 아들을 대신해 연로한 한인 목사 부부가 대신 봐주고 있는 카페였다.


가게가 나갈 때까지만 맡아준다는 조건이었지만 생각보다 사겠다는 사람이 빨리 나타나지 않아 어느덧 카페는 목사님 부부에게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내가 거기서 알바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가게를 거의 다 맡기다시피 하였다.


가게의 일상은 단조로움과 동시에 부산했다. 아침에 나와 가게 문을 열고 저녁까지 거의 매일 혼자 가게를 지켰다. 이 카페에는 적지 않은 단골들이 있었는데 그들과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친해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안부를 묻기 시작해서 그들 일부와는 어느덧 제법 속 깊은 이야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딱 한 명, 짐 아저씨만 예외였다.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아직 정식으로 일을 하기 전 이 전의 아르바이트생에게 인수인계받고 있을 때였다. 한 키가 작고 깡마른 남자가 다가와 내가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빠른 영어로 뭐라고 했다.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듣고도 남을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내 얼굴은 이미 화끈하게 달아오른 후였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한 걸 느끼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 순간 나에게 인수인계해주던 알바 언니가 와서 재빠르게 그에게 에그 샌드위치와 코카콜라 한 병을 건넸다.


그 동시에 그의 고함은 고요로 변했고, 그는 손안에 있던 돈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유유히 나갔다. 순식간에 태풍이 일어났다 가라앉는 것 같았다. 알바 언니는 이런 일이 늘 일어난다는 듯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저 아저씨가 오면 에그 샌드위치와 코카콜라를 주면 돼.”


나는 그렇게 그가 '빅이슈(노숙자 자활지원을 위한 잡지)'를 판매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하루에 한 번씩 이 카페에 와서 에그 샌드위치와 코카콜라를 사 간다는 것을, 이 근처 노숙자 전용 숙소에서 대부분 밤을 보낸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그에게는 카페에서 원래 가격이 아닌 특별 할인가로 판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그가 카페에 나타날 때마다 나의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는 현상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거의 대부분 같은 것을 주문하기에 그가 오면 여느 때처럼 에그 샌드위치와 코카를 주었다가 하필 그 날은 그가 다른 음료수를 주문하려고 했던 날이라 호통을 듣기도 했다.


성인이 돼서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있는 장소에서 누군가에게 매번 큰 소리를 듣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 나는 그때마다 깊은 수치심을 느꼈고 여러 번 마음이 다쳤다. 어느 날은 너무 분해서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하루는 어느 때처럼 또 그러기에 큰 마음을 먹고 나 역시 화를 내며 말했다.


“이럴 거면 더 이상 오지 마세요”


하지만 그는 그런 나의 협박(?)을 귓등으로 흘려듣는 눈치였다. 다음 날도 언제 그랬냐는 듯 나타나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아직 이십 대 초반인 나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심지어 카페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까지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에게 이런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보기로 결심했다.




여느 때처럼 에그 샌드위치와 코카콜라를 사서 테라스에서 먹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지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나는 천천히 말했다.


저는 아저씨 때문에 매우 슬퍼요


그의 눈빛은 나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또 이전처럼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괜히 했나 싶었지만 그래도 진심을 말하고 나니 마음은 편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불쑥 꽃 한 다발을 내밀었다. 고개를 드니 바로 짐 아저씨였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지만 분명 그였다. 더이슈를 팔아 그날그날 생계를 유지하는 그에게 꽃 한 다발은 분명 큰돈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머쓱하다는 표정으로 꽃을 내밀며 웃고 있었다. 그다음부터 그는 변하기 시작했다.


카페에 올 때마다 내게 이유 없는 화를 내는 대신 내게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정치학을 공부한다고 하자 어느 날은 그날 팔고 남은 '더이슈'를 가져다주며 자신이 언젠가는 여기 글을 실은 적도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에그 샌드위치를 먹다 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짐 아저씨가 생각났다. 늘 에그 샌드위치의 딱딱한 가장자리를 남겨두고 먹던 그였다.


어쩌면 그의 삶은 이 샌드위치보다 더 퍽퍽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늘 화나 있었을지도. 그때 진심을 전하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화난 짐 아저씨로만 남아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을 때 진심은 생각보다 힘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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