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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Nov 09. 2018

예쁘다고 믿는 순간 일어나는 기적

영화 <아이 필 프리티>

그런 날이 있다


별다른 일 없었는데도 기분이 처지고


오늘따라 스스로가 유달리 초라해 보이는


딱히 이유는 없지만 나 자신이 굉장히 하찮게 느껴지는


그런 감정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빈둥빈둥 있다가 갑자기 '신나는 영화 한 편을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코믹 영화보다는 예술 영화를, 대중 영화보다는 인디 영화를 즐겨보는 편인데 이런 날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어 우연히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스스로가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생각하며 자신감이 땅을 치는 르네를 보며 브리짓 존스의 다른 버전이 아닌가 걱정했다. 먼저 내용을 알고 싶지 않아 요약을 전혀 보지 않은 상태에서 보기 시작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는 전혀 다른 매력과 재미를 선사했다.



비록 쭉쭉빵빵 몸매와 완벽한 얼굴은 아니지만 주인공 르네는 늘 유쾌하고 즐겁다.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의 온라인 판매부에서 일하지만 그녀는 차이나타운 지하실에서 일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언젠가 뉴욕 중심의 본사에서 일할 수 있기를 꿈꾼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꿈꾸는 본사의 리셉셔니스트 공석이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그녀를 가로막는 건 단 하나 그녀의 뚱뚱하고 볼품없는 외모이다(적어도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늘 아름다운 여자를 동경하고 외모 때문에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그녀는 단 한 번만이라도 아름다워질 수 있기를 꿈꾼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난다. 헬스장에서 실내 바이크를 하다 떨어져서 머리가 다치는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절세미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360도 변하기 시작한다.




이제 막 얻은 미모로 인해 자신감으로 무장한 그녀는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들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세탁소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전화번호 교환을 제안하고, 본사 리셉셔니스트 자리에 지원하고, 비키니 콘테스트에 나간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녀가 시도하는 모든 일들은 이루어진다.


그토록 원하는 본사 취직에 이어 그녀는 CEO의 눈에 들어 세컨드 라인 론칭이라는 중대한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다. 그녀가 꿈꿨던 것들 뿐 아니라 꿈꿔보지도 못했던 엄청난 일들이 현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멋진 남자 친구도 있는데 훈남인 사장 동생의 데시까지 받게 된다. 이제 르네는 세상 그 어느 여자도 부럽지 않다.  



그녀는 이 모든 변화들이 그녀의 갑작스러운 미모 덕분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한 번도 자신감을 가져본 적 없던 그녀는 이제 당당하다 못해 교만해진다. 친한 친구들을 외면하고 심지어 멋진 훈남의 유혹에도 살짝(?) 넘어갈 뻔한다.


그렇지만 신은 언제나 가혹하다.


그녀가 그녀 인생에 절정의 순간에 이르게 되자 가차 없이 운명의 막대기를 휘둘러 그녀로 하여금 다시 예전의 외모로 돌아가게 한다. 빛나는 미모를 잃은 그녀의 자신감은 순쉽간에 땅으로 곤두박칠하고 그녀는 자신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도망치려고 한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면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으며.


하지만 이건 그녀의 완벽한 착각이다.




그녀의 외모는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헬스장에서 사고가 나면서 머리에 이상이 생겨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얼굴과 몸매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믿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녀를 원래부터 알던 주변 인물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외모 부심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도 처음에는 '뭐가 변했다는 거지'하며 의아해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 작가가 천재가 아닌가 싶었다. 만약 주인공의 외모가 실제로 변해 스크린에 쭉쭉빵빵 미인으로 나타났다면 아마 그 식상함에 영화를 바로 중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혀 변한 게 없는데 사고 후 자신이 최강 미인이 됐다고 착각하는 주인공을 보며 처음에는 그 간극이 재밌어서 마냥 낄낄거렸다.


그러다가 그런 믿음으로 얻어진 자신감이 그녀의 삶에 일으킨 기적들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반한 건 그녀의 외모가 아닌 그런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 자신감과 자기 긍정의 힘이었다.


자신이 예쁘다고 믿는 순간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같이 자고 일어나면 체중의 눈금이 올라가 있을 때. 더 이상 맞는 바지가 없어 옷을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그리고 이런 외모로 '내가 자기 관리도 못하는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 거울을 보며 나의 예쁜 모습보다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만 먼저 보일 때. 우연히 본 이 영화를 통해 공감하며 빵빵 터졌다.


남편 장뤽도 르네의 남자 친구처럼 "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라고 하루에도 몇 번을 말해주지만 나는 "내가 뭐가 예뻐?"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늘 불만스러운 얼굴로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나오다 못해 흘러넘치는 뱃살을 원수처럼 쥐어짜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나의 그런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외모에 관한 이야기지만 결코 외모에서 그치고 있지만은 않은 이 영화는 현재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나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만이 다른 이들의 사랑도 받을 수 있기에.


자신이 형편없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때, 르네가 마지막에 했던 이 말을 주문처럼 외쳐보면 어떨까.


어린 소녀일 땐 세상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치죠.
배가 나오든, 춤을 추든 놀든, 엉덩이가 팬티를 먹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의심하게 돼요.
누군가 중요한 것들을 규정해주고 그 울타리에서 자라죠.
그리고 수도 없이 자신을 의심하다가 결국은 자신감을 모두 잃어버려요.
갖고 있던 자존감과 믿음까지 모두
그런 순간들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것보다 강했다면 어땠을까요?

-영화 <아이 필 프리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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