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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May 09. 2019

01. 5년 전 쿠바 여행을 마치고  

난 꿈을 꾼 걸까?

2014년 4월

한 달 반의 쿠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점점 이곳 생활에 다시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내가 그곳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그냥 꿈을 꾼 걸까? 한없이 밖을 바라보고 달리던 트럭도, 산티아고 데 쿠바의 즉흥 연주도, 아름다운 석양과 별들도, 길에서 끊임없이 들려 나오던 온갖 잡음에 섞인 음악 소리도.


모두 꿈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말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라고. 하지만 깨고 싶지 않은 꿈이 있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심지어 헷갈린다. 지금 이게 현실이고 그게 꿈인지 그게 현실이고 이게 꿈인지. 나의 존재적 기반을 흔들어놓고 내가 알던 모든 세계를 근원부터 의심하게 하는 그런 여행. 쿠바는 여행을 어느 정도 했다고 자부해 왔던 나에게 그 어떤 여행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충격과 동시에 황홀감을 선사했다.                


이곳 내가 다시 돌아온 세상은 한 달 반 동안 여행했던 그곳과 너무 달라 두 개의 이토록 다른 세상이 한 우주에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직까지 나에게는 충격이자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곳에는 늘 부족하거나 떨어진 것뿐이었지만, 이곳에는 모든 게 지나치게 많았다. 다시 돌아와 느낀 그 충격을 말하자 그는 나에게 물어봤다.

                    

"별은? 하늘의 별은 많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곳에는 수많은 가게와 넘치는 소비품들이 있지만 웃음도, 사랑도, 별도 그곳보다 훨씬 적다는 걸. 도착해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꿈을 꾸면 매일 밤 쿠바를 꿈에서 만난다. 꿈에서 만나는 쿠바가 너무 그리워, 매일 밤 아픈 가슴으로 잠에서 도중에 깨어난다. 그렇게 그리움으로 밤잠을 설친다. 쿠바는 나에게 이제 보고픈 연인임과 동시에 꿈이 되었다.


잠들 때만 만나는 꿈이 아니라 깨어 있을 때도 그리는 꿈.  


올드 아바나 거리 ⓒ 주형원

                                                                                 

이 여행 이후의 나는 그전의 나와 같지 않음을 느낀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특히 당연시 여겼던 많은 작은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함이 내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쿠바는 오늘내일 언제 변할지 모른다. 이미 많은 이들이 얼마 후 미국의 무역 봉쇄가 풀리면 이제 더 이상 지금의 쿠바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 예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본 쿠바는 죽는 순간까지 내 영혼 속에 남아 나를 인도할 것이다.                             


쿠바를 처음 발견하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쿠바를 가리켜 ‘인간의 눈으로 본 가장 아름다운 땅’이라고 했다. 나는 여행 한 달 반 동안 아바나에서 출발해 쿠바 전역을 횡단했다. 환상의 도시 아바나를 비롯해 쿠바의 서쪽에서는 황홀한 자연을, 쿠바 중앙에서는 쿠바의 건축과 예술을, 오리엔탈이라 불리는 쿠바의 동쪽에서는 쿠바의 음악과 혁명의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본 쿠바는 콜럼버스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하지만 내가 쿠바에서 가장 사랑했던 건 쿠바인이었다. 아이처럼 순진 난만함과 동시에, 그 누구보다 시니컬하고, 각종 고단수 사기를 치는가 하면 친절을 넘어 자신이 갖은 모든 걸 다 주려 하는. 각종 모순으로 똘똘 뭉쳐 니체의 말 대로나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들을 무엇으로 규정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모순은 있을망정 그 모순을 감추려는 가식은 없었다. 늘 부족하고 떨어진 거 투성일망정 공허하진 않았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남자보다 로맨틱함과 동시에 마초적인, 순수함과 동시에 냉철한, 최고의 연인이자 나쁜 남자인. 반전과 모순의 극치인 이 나라는 나를 여행 중에 몇 번이나 울고 웃게 했다.


어떻게 이런 쿠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쿠바는 외국인과 현지인이 이용하는 장소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어 원칙적으로 외국인은 외국인 전용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여행에 즐거움도 의미도 느끼지 못해, 쿠바인들,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이용하는 트럭으로 여행했다. 흘러가는 풍경에 눈을 맞기고, 트럭 천막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덜컹거리는 트럭 의자에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앉아 있으면 세상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행복했다.


산티아고 데 쿠바 이자벨리카 카페 ⓒ 주형원


물론 쿠바 여행은 쉽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과, 신나는 음악, 달달한 커피, 시가와 모히또 이전에 쿠바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한 국가다. 월급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낮고, 물가는 비싸다. 쿠바인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Hay que luchar (투쟁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이들의 일상은 하루하루가 투쟁이다.


지구 상에 5개 남아 있는 공산 국가 중 한 곳이라 정치적으로도 일상적으로도 제약이 많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목숨을 걸고 일으킨 혁명은 어디 있나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외국인과 현지인은 다니는 곳과 이용하는 운송 수단, 심지어 화폐까지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쿠바의 모습은 제대로 보지 않고 지나치기 쉽다. 그래서 열심히 발품을 팔며 최대한 현지인들과 섞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여행이 늘 쉬운 건 아니었다.


스페인어를 어느 정도 한다는 장점 덕분에 다행히 언어의 장벽은 없었지만, 이들과 섞이면 섞일수록 모순과 역설로 가득한 이들을, 이 나라를,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늘 헷갈렸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럼에도 쿠바는 모든 의미에서 이제껏 여행했던 그 어떤 장소보다 황당하며 황홀한 곳이었다. 쿠바가 나에게 미친 영향은 얼마나 강렬했는지, 쿠바를 다녀온 후 한동안 나는 여전히 영혼을 그곳에 남겨두고 온 사람처럼, 껍데기 만남은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쿠바가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다.


씨엔푸에고 라구나 국립 공원 ⓒ 주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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