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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May 16. 2019

02. 아바나, 추억으로 돌아가는 길

아바나행 비행기를 탔다. 정확히 오 년 만에 다시 쿠바로 돌아가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쿠바에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자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마치 어렸을 때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야. 잊고 살고 있었던 그곳에서의 추억들과 마주하는 게 설레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하거든.”


남편에게 이 느낌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가 다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쿠바가 내 인생 전체에 있어 얼마나 강렬한 경험이었는지. 나는 5년이 지난 후 다시 그곳에 돌아가기 며칠을 앞두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5년 전 나는 혼자 커다란 빨간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쿠바 현지인들이 타는 트럭 위에 올라 쿠바 전역을 여행했으며, 여행 중 많은 친구를 만나고 또 많은 사랑을 했다. 약 오십일 간의 시간 동안 참 많이 웃었고 또 그만큼 많이 울었다.


반짝반짝 빛나던 찬란한 시간들이었다.


ⓒ 주형원


두 달이 채 안 되는 시간을 보냈지만 마치 몇 년을 보낸 것만 같았다. 돌아와서도 한참 잊지 못하고 매일 밤 꿈을 꿨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곳에서 갔던 곳들. 깨어나서는 더 이상 쿠바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리움으로 가슴이 저며왔다. 돌아와서 한동안 나는 내가 쿠바라는 꿈에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할까 두려웠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 동안 그 기억들을 글로 담았다. 그 글을 출판사에 보냈고, 그토록 꿈꾸던 첫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 후 삶은 계속되었고, 나는 어느새 쿠바를 까마득히 잊었다. 어떻게 보면 짧지도 또 그리 길지도 않은 5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 역시 삶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그때는 자유로운 싱글이었다면 지금은 행복한 유부녀이며, 그때는 다가오는 서른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모르겠던 20대 후반이었다면, 지금은 서른이라는 말에 더 이상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삶의 무게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서른 중반이다.


인생이 지금 당장 드라마틱 한 방식으로 변하기보다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을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 나갈 수 있기를 꿈꾸며, 새로운 만남의 떨림보다는 나와 남편과의 지금 이 충만한 사랑이 평생을 통해 매일매일 깊어지기를 희망한다. 여전히 많은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그 꿈을 계속해서 간직하는 것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나도 이렇게 변했는데, 쿠바는 그때와는 또 얼마나 다를까?


ⓒ 주형원

올해 혁명 60주년을 맞는 쿠바 또한 밖에서만 봐도 그때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떠난 후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 및 오랜 경제 봉쇄 완화로 개방의 시대를 맞이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도중 혁명의 상징이자 장기 집권으로 '독재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피델 카스트로도 세상을 떠나고,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도 권력에서 물러났다. 또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과의 열리고 있던 교류의 문 역시 다시 닫혔다.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있는 쿠바 친구들과도 그때는 인터넷이 되는 곳이 거의 없어서 연락이 힘들었다면, 지금은 메일과 메신저로 쉽게 연락이 닿는다. 5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불과 일주일 전에 사상 초유의 토네이도가 아바나를 덮쳐 네 명의 사상자와 이백 명에 가까운 부상자를 냈고 아바나의 일부 거리와 건물이 훼손되었으며, 단 며칠 전에는 그토록 평화스럽던 비냘레스에 엄청난 규모의 운석이 떨어졌다.


얼마나 변했을까, 내가 알던 쿠바는?


언제나처럼 곧 다시 돌아온다고 말하며 떠났던 쿠바지만, 나는 오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엄마와 함께 말이다. 너무도 사랑했던 곳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 마치 아주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을 재회하는 것처럼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그건 잠자고 있던 내 감각 세포가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위험(?)과 동시에, 잊고 있던 강렬한 감정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수 있다는 걸 의미하고 있었다.


나는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씨엔푸에고 말레콘의 석양 ⓒ 주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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