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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Mar 01. 2023

안녕? 월급이 깎였습니다.

어디 가서 이런 말 하면, 아니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월급이 깎여요- 하겠지만. 드럽게 열받겠네- 하겠지만.


뭐. 난 그런 거 없다. 덕분에 브런치 글감도 생기고 얼마나 좋나.


간단하게 내 급여체계를 설명하자면 기본급이 있고 수당이 있다. 매달 거래처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고 그에 관련 의뢰가 들어오면 해결을 해주고 수당을 받는 식이다.


그런데 어느 화창한 아침, 대표가 그 수당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그 '문제해결'이라는 게 가능한 사람은 현재 200명 직원 중에 나뿐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너무나 귀찮고, 때로는 복잡하며, 준비해야 하는 서류의 양은 어마한 데 비해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 일에 관련된 두 직원은 견디지 못하고 중도 이탈을 했다. 따라서 남은 건 나뿐이다.


그런데도, 왜 월급이 깎였을까.



거래처에서 남의 물건을 사용하다가, 올해부터는 우리 물건을 사용하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S사의 물건을 사용했지만 S사에는 서비스 센터가 없다. 따라서 그동안 기술이 있는 B에게 따로 비용을 들여 AS를 맡겼다. 그런데 이제부터 B사에서도 이름만 다른, 같은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니 서비스도 B사에서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거지.


돈이 되는 물건이니 회사에서 제작을 감행했고, 따라서 주된 수입원이 '서비스'에서->'상품'으로 바뀐 것이다.


대신 타사 물건으로 일어난 문제에 더 이상 해결은 없다. 한 마디로 우리 물건만 쓰라는 것.


덕분에 회사는 이 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4배가량 오르게 생겼다. 아니, 그 이상도 오를 수 있겠지.


그럼 난?

꽤 액수가 되는 돈을 지불해야만 이용할 수 있던 서비스가, 끼워 팔기가 되어버렸으니. 일은 늘어나겠고 수입은 줄겠지.


아주 깔끔한 공식이다.


이건 마른하늘에 날벼락으로 커튼이 쭉 찢어진 것 같은. 심각한 일이겠지. 그러나 나는 이 상황이, 어째서 대표와 나 사이의 작은 게임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대표는 이 중대발표를 하기 전날, 내게 저녁식사를 하자면서 25년 일한 용 부장의 월급을 올해에도 동결하겠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그게 무슨 소리일까.


10일에 개봉하는 더 글로리 관련, 넷플릭스가 던진 조각조각의 스틸컷 만으로는 전혀 그 앞을 예측할 수 없듯. 나 또한 대표의 의중 따위는 1도 예측할 수 없었기에- 그저 천진하고 성실한 자세로 주어진 국밥을 쪼아 먹었다.


그러나 나는 여유를 즐길 사이도 없이, 바로 그다음 날 결말에 도달해 버렸다. 25년 일한 직원도 급여 한 푼 못 올린 실정이니 너는 조용히 닥치고 있으라는 밑밥이었겠지.


만일 내가 우는 소릴 했다면 대표는 이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작년 상반기에 유 실장, 허 주임 그만두면서 어부지리로 연봉 40% 올렸잖아요. 우리 회사에 그런 전례가 있었겠어요?


그건 그거고.


그래서 세 명치 일 혼자 다 하잖아. 넌 걔들 나가면서 얼마 굳었는데. 이건 엄연히 줬다 뺐는 거고, 돈은 그레이드고, 그건 곧 한 인간으로서의 쓸모이며 자존심인데.


그동안 대표는 앞으로 이 사업이 얼마나 번창할 것인지. 그럼 기쁨이 너 또한 얼마나 재미를 보겠으며, 성과 면에서든 가치에 있어서든 많은 발전이 있을 거라고. 그토록 하리보 곰젤리 같은 달달한 말들을 들이붓더니.


그게 다 농락이었다.


그 물건을 제작함에 있어서도 홀로 전전긍긍, 얼마나 개고생을 했었는지. 그 모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기쁨 씨, 그런 얘길 듣고도 가만히 있었어? 어이구. 하여간 사람 착해빠져서 원.


 가만히 안 있으면. 뭐 문동은처럼 칼춤이라도 춰요 어째요.


용 부장 입에서 착하다는 소리가 나오다니. 용 부장은 날 명랑하지만 못된 년이라고 생각했던 걸 다 아는데. 우리는 '급여 동결'과 '삭감'이라는 주제로 샤로수길에서 거나하게 한 잔을 때렸고, 그날 부로 우린 동료가 아닌 군대가 되었다.






대표는 월급을 깎고 내가 별 다른 응수 없이 오케이 했으니. 신이 나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 안을 명랑한 개새끼마냥 돌아다녔다. 수익을 늘리고 지출은 줄였으니 승리한 기분이겠지.


날도 좋은데 발로 걷어차 버릴까.




안녕? 월급이 깎였습니다.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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