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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Feb 20. 2023

불면증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래서 내 20대는 꿈속처럼 몽환적이고, 밤길처럼 어두우며, 오래된 영화처럼 누르스름하다.


당시의 나에게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적이었다.


멍청하게도 나는 그러한 증세가 예술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 필수 불가결의 그것이라고 착각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불면증을 사용해 무수히 많은 창작물을 남기기도 하지만, 참으로 감사하게도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불면증 환자답게, 매우 정직하게- 다가오는 무기력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잠은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불을 끄고 누워 잠들라 치면, 꼭 이대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불길한 생각이 엄습하면 온 집 안에 있는 대로 불을 환하게 켜고 잠을 시도했다. 그 조악한 빛이 내 두려움을 조금 녹이고 잠이 다가올 때쯤, 다시금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속삭임과 함께, 번뜩. 누군가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와 같이 멀쩡한 정신이 되어, 그대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많은 훌륭한 사람들의 연구로, 잠을 자는 것으로 신체에서 여러 작용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제대로 자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해결되기도 하고 나아지기도 하고 예방되기도 한다. 그게 뭐든 말이다.


나는 십 년 이상 제대로 잠들지 못했으니, 반대로 말하면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했고, 나아지지도 못했고, 예방하지도 못했다는 뜻이 된다. 다른 말로 지금껏 살아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뿐이다.



왜 노력을 하지 않았냐고. 운동은 해보았냐고. 병원엔 가봤냐고.


그건 모르는 소리다.


노력은 했고 운동도 하루에 두 시간씩 했고, 내 말에 늘 성의 없이 대답하던 의사들도 줄줄이 만나봤다.


불면증이란 건 이를테면 원한을 품은 살인마 같은 것이다. 나를 죽이기 위해 작정을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결국은 그의 계획대로 나를 죽일. 그것을 나 따위가 감히 어떻게 막겠는가.


신경안정제를 먹었으나 얼마 가지 못했다. 그것은 내 몸을 따뜻하게 덥히고 또 무겁게 만들어 잠들게 하더니, 금방 내성이 생겨 뜨거워지는 것 같다가 다시 식어갔다.


수면제를 처방받아먹었으나 그것 역시 인간이 만든 불량품 중 하나였다. 그걸 먹고도 잠들지 않는 날이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고 다음 날이면 하루 종일 구름 위를 걷는 듯 몽롱해 일상을 영위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술을 많이 마셨다. 그건 내가 찾은 절대적이고 제대로 된 방법이었다. 블랙아웃이 될 정도로 마시면 그 어떤 살인마도 장사 없이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더없이 나를 망쳤다.

 

모든 면에서 그랬다.


그 살인마가 불면으로 나를 망치려 했다면 잠에서 술로- 도구를 바꾼 것일 뿐. 그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살면서 가진 나쁜 기억이나 상처는 모두 술에서 비롯되었다. 술을 마시기 위해 모인 인간관계에서 나는, 무엇하나 얻은 것이 없었다. 그 안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과 관계에 심취해 그것에서 군상들을 파악하려 무수히 머리를 굴렸으나 거기에 군상은 없다. 그저 다 같이 취했을 뿐이다.


그 수많은 블랙아웃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이미 죽거나 많이 다쳤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수많은 밤들. 그러나 경이롭게도 나는 멀쩡하다. 그게 우연일까.



지금은 40살이 다 되었다. 자아가 대부분 회복된 상태다.



불면증은 어떻게 되었냐고.


없어졌다.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만 그 기억만이 생생할 뿐이다.


그 비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다만, 신이 나를 찾아주었을 뿐이다.



서른한 살이 되던 해의 4월이었다. 밖에는 꽃잎이 흩날렸지만 나는 불면과 술에 제대로 비벼져, 머리카락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때였다.


언젠가는 누군가들이 찬양했던 깊은 눈빛도, 빛나던 피부도 모두 생기를 잃었던 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누추했던 날.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제가, 이렇게 더럽고 냄새가 나는 제가. 신의 자녀라고요······?


내가 무릎을 꿇고 그 말을 하는 순간 세계에서 가장 큰 Dove의 날개가 나를 안았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깨달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달게 잤었지.





이제는 더 이상 잠 못 드는 날이 없다.


실제로 그것은 얼마나 달달한지.


토요일에 낮잠을 세 시간이나 자고도 있지, 저녁에 잠이 오는 거야. 그런데도 일요일 아침 아홉 시까지 늦잠을 잤어.


예전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잠드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젠 내가 그러는 거 있지. 손에서 리모컨을 떨어뜨렸다니까. 놀라서 깼는데 그게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신은, 사랑하는 그 자녀에게 가장 처음, 단잠을 선물로 준다. 열왕기상 19장에서 우울증을 앓는 엘리야를 잠들게 하고 먹이고 어루만지어 그를 회복시키시는 장면은 실제로 유명한 이야기다.


묵묵히 죽음을 어루만졌던 것이 사실이다.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나를 쫓을 때, 괴로움에 어둠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 부모의, 나를 사랑했던 모든 이의 눈물과 분노가, 새로운 이름의 저주가 되어 세계의 공기를 떠돌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했듯, 삶은 카약을 타는 것과 비슷하다. 뒤로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배의 조종석에 다정한 신이 서있다. 우리들은 그가 말하는 방향대로 노를 저으며- 과거에 일어났던 이적들을 보다 선명히 바라보며, 


눈을 뗄 수 없는 시간의 풍경을 지나치면서.


그저 믿고 부지런히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검은 밤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면, 어느새 우리는 가장 좋은 곳에 가있다.


당신이 가장 누추한 삶에 놓여있다고, 세상에서 가장 비루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당신이 신의 자녀라는 증거다.


오늘 밤 잠들지 못해 괴롭다면 눈을 감고 그의 이름을 불러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꿈속에서 당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그 손이 당신을 건져내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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