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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Dec 23. 2022

울다가 웃는 이유

혼자 살아서 좋은 점

 혼자 살아서 좋은 점은 TV를 보면서 펑펑 울 수 있다는 거다. 어디 가서 이런 얘긴 한 적이 없는데, 난 요즘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를 보면서 자주 운다. 사실은 미친 사람처럼 운다. 엉엉엉 하고, 낼 수 있는 만큼 크게 소리 내어서. 

한 번은 내가 왜 이럴까 고민해본 적이 있다. 나는 이제 어린아이도 아니고 서른을 훌쩍 넘었는데. 대체 왜 이러는지.

 

 어렸을 때 부모님은 내가 보는 앞에서 종종 싸웠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거의 전쟁과 맞먹는 공포로 느낀다는데. 나도 아마 그랬을 거다. 내 부모님은 서로의 집안을 저주했고 결혼을 함으로써 서로를 가문의 원수로 만들었다. 그건 내게 있어서는 결국, '나'라는 아이는 태어났으면 안 되는 거였구나.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나는 늘 유아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고 나서 화해하는 모습이라도 목격했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난 부모님이 화해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지지고 볶은 지도 20년이 다 되어갈 무렵,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져서야 그들은 비로소 화해할 수 있었다. 화해라기보다 일종의 '단절'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확하겠다. 엄마가 가까스로 수술을 마치고 깨어난 뒤 연령은 8세, 신체는 반신불수로- 20년 전 구급차로 실려간 이후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여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연인과 싸움을 하는 게 좀처럼 어렵다. 화해하는 것도 싸움의 과정이고, 싸우는 것보다 푸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해서 갖은 애교를 부려 상대방의 마음을 풀어줄 수는 있지만, 난 정작, 내 마음은 도통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염증이 생겨서 느닷없는 순간 상대방에게 모진 말을 해버리는 거다.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황당할까. 내가 아직 혼자인 이유에 대해 종종 생각해보곤 하는데 나의 이런 면이 한몫을 할 거라 생각한다. 


물론, 부모를 원망할 뜻은 전혀 없다. 난 나의 아빠 엄마를 사랑한다. 이건 이제 그들을 떠나서 내문제로 남았다.


뭐가 어찌 되었든 토요일 오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꿀떡꿀떡 마시면서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를 보며 세상 서럽게 엉엉엉 하고 나면- 가슴이- 한겨울 새벽 공기를 들이마신 것처럼 개운하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나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재즈를 틀고 빵뎅이를 흔들어가며 설거지를 하는 거다. 그럼 난 또 내가 웃겨서 한판 신나게 웃는다. 뭐가 되었든, 울다가 이렇게 다시 또 크게 웃을 수 있다면 그게 회복의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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